교육·행사

'재인청 춤의 연리지' 관람 후기

국립국악원이 주최하는 수요춤전 ‘재인청 춤의 연리지’를 보기 위해 ‘풍류사랑방’을 찾았다. 아내의 강권에 못 이겨 국악 공연장을 찾은 적은 있지만 서초동 국악원은 처음이었다. 처음 본 ‘풍류사랑방’은 아주 훌륭한 공연장이었다. 단아함과 정갈함, 그리고 따뜻함이 전해왔다. 관객이나 스탭, 심지어 출연진 모두 신발을 신지 않으니 마치 사랑방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일체의 음향기기나 촬영기기 사용을 차단해 잠시나마 문명의 이기로 인한 소란함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좌석은 의외로 편안했다. 무엇보다도 무대와의 거리가 가까워 무용수의 표정은 물론 떨림까지 느낄 정도였다. 누군가 이 공연장을 두고 ‘예술가의 민낯이 드러나는 공연장’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수긍이 갔다.

공연이 시작되자 과거 천대받던 광대들의 삶에 대한 소개의 글이 나오고 이내 두 명의 무용수가 등장했다. ‘태평무’였다. 사회자는 재인청 춤의 으뜸이라고 소개했는데, 관복인 듯한 전통옷을 차려 입은 무용수들은 무대를 넓게 쓰면서 호흡을 맞췄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이루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춤은 빠른 듯하면서도 유장했고, 느리면서도 섬세했다. 그리고 ‘엇중몰이 신칼대신무’가 이어졌다. 한지로 만든 신칼을 든 두 명의 무용수는 소복을 차려 입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선은 슬펐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 영혼을 위로하고, 망자의 맺고 맺힌 한을 풀어 혼령이 훨훨 자유롭게 떠나기를 염원하는 듯했다. 타악기와 아쟁, 거문고 소리 위를 타고 오르는 구음은 애절한 춤과 뒤섞이며 조용하게 흘러갔다.

공연장은 잠시 숙연했다. 세 번째로 등장한 남자무용수는 쇠(꽹과리)를 들고 나왔다. 악단의 좌장 역시 쇠를 잡았다. ‘진쇠춤’이다. 무관복을 입은 무용수는 독무로 무대로 휩쓸었다. 휩쓸었다는 말이 적절했다. 날카로운 꽹과리 소리는 공연장을 뒤덮었고, 악단 좌장과 소리로 호흡을 맞추면서 춤을 췄다. 혼자 무대를 감당하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선은 진지했고 몸짓은 가벼우면서도 섬세했다. 역동적이면서도 세밀한 동작이 도드라졌다. 후반부에 가서는 금속성음이 공연장을 채웠다. 하지만 소란스러움은 전혀 없었다. 춤이 마무리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팔박 타령춤’과 ‘팔박굿거리춤’이 이어졌다. 조금은 단순해 보였다. 그런데 섬세했다. 무용수들은 방향을 바꿔가며 춤사위를 이어갔다. 원형무대가 적합해 보였는데 ‘팔박’이 역학의 팔괘와 상통한다면 한 쪽으로만 열려있는 무대가 조금은 불편하리라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무용수들의 몸짓은 물 흐르듯 유연했고 그 춤은 장단 위에 있는 듯했다. 어쩌면 장단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순서는 창작무였다. 장사익의 ‘꽃구경’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된 작품이라 했다. 악사들의 장단과 구음이 이어졌고, 정화수를 받쳐든 어머니의 절절함이 펼쳐지고 군무 속에는 어머니의 근심과 자식들의 활발함이 표현되었다. 절정은 마지막 파트였다. 젊은 남자무용수가 무대 옆에서 간절한 음색으로 가사를 읊기 시작했고, 악단 쪽에서는 기타와 타악이 어울렸다. 음악의 조합은 대단했다. 무용수의 독무 속 가슴 아픈 대사, 그리고 현대와 전통이 뒤섞인 음악이 서사가 있는 춤을 만들었다. 객석에서 눈물짓는 이들이 적잖이 보였다. 아, 전통무용이 이야기를 담을 때 관객과 이렇게 만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공연이 끝났다. 악사들은 퇴장하지 않고 커튼콜이 이루어지는 내내 잔잔한 음악을 연주해 공연의 감흥을 유지토록 했다. 대단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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