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사

두번째 만난 '꼭두', 새로 알고 느끼게된 것들

공연, 영화, 책을 한번보다는 두번째 보게 되면 더 많이 알고, 못보던 것이 보인다. 국악공연 중에서 같은 내용으로 두번 본 것이 국립극장의 '트로이의 여인들'과 국립국악원의 '꼭두'이다. 두 공연 모두 첫번째 봤을때 '뭔가 새롭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받았다. '트로이의 여인들'을 통해서는 그리스로마의 신화가 창극화 될 수 있고, 트로이 여인들이 가진 恨이 우리의 소리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꼭두'를 처음 봤을때도 내가 영화를 보았는지 창극을 보았는지 모를 정도의 '쟝르의 파괴'에 대한 신선함과 놀라움을 크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두 공연을 혼자 보고 난 뒤 다음해에 재공연 안내가 있었을때 나는 아내와 그 감동을 다시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고, 꼭두를 두번째 보며 나는 첫번째 공연에서 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우리 조상이 가졌을 '죽음'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공연을 보기 전까지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여행을 가서 본 '상여'에 대하여도 왠지 무섭거나 비과학적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하물며, 상여에 꼭두를 장식한 것도, 꼭두가 길잡이 꼭두, 시중꼭두, 무사꼭두, 광대꼭두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몰랐다. 오히려 예전 '전설의 고향'을 통해서 망자를 데려가는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라는 이미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동민이가 할머니와 이승에서 작별할때 시중꼭두가 나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는 장면, 수민이 꼭두에게 편지로 할머니를 모실때 유의할 점 등을 쓰고, 꼭두에 매다는 장면은 우리 조상들이 망자들의 평안한 여정길을 바랬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 친지가 돌아가신 집에 가서 슬픔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떠들썩하게 망자와의 기억을 공유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저승길 여정이라는 측면에서 단테의 '신곡'이 떠오르게 한다. 단테가 지옥 ·연옥 · 천국을 경험하는 동안 동행한 인물은 그가 존경하던 (로마에 대한 서사시 '아이네이아스'를 쓴) 베르길리우스이다. 그리고, 지옥으로 가기 위하여 건너가는 곳이 카론이라는 뱃사공이 있으며, 한번 건너가면 되돌아오지 못한다는 아케론강이다. 지옥에 도착한 후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지옥의 의미를 설명하며 보호해 주는 엄격한 스승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반면 수민과 동민을 안내하는 것은 꼭두이다. 그리고,꼭두가 갈 수 있는 곳은 이승세계와 저승세계의 경계에 흐르는 강인 삼도천까지이다. 삼도천을 건너게 된 수민과 동민은 흑암지옥으로 휩쓸려오고, 꼭두(무사호위)들은 수민과 동민을 구하려고 노력한다. 공연에서는 저승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는 꼭두는 어딘가 허툴고 친밀하고 존재로 그려진다. 실제로 상여에 매달려 있는 꼭두의 모습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우리 조상들은 친구가 데려다 주듯이 망자를 편하게 모실 수 있는 사람으로 꼭두를 그렸으리라.

첫번째 공연을 볼때는 느끼는 못했던 것이 창극에 존재하는 다양한 국악적 요소들이다. 첫번째 공연이 스토리 따라잡기에 급급했다면, 두번째 공연에서는 각 Scene마다 배치된 국악공연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인상적인 것이 5번째 Scene '할머니의 세계'에서 남도민요 흥타령과 서도소리 수심가이다. 저승세계로 가는 할머니가 가는 길을 보여주는 영화의 롱테이크샷으로 보여주면서 나오는 남도민요 '흥타령'과 서도민요 '수심가'. 두 곡을 따로 따로 들은 적은 있어도 같이 들으니 공연의 분위기에 더 잘 맞은 것 같다. 흥타령만 있었다면 죽은 망자를 보내는 길이 슬픔의 감정으로 압도했을텐데, 수심가를 통하여 너무 감정이 과도하게 흐르지 않도록 잡아준 느낌이었다.

삼도천에서 나오는 강강술래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강강술래는 밝은 보름달에서 부르는 흥이 있는 노래이며 춤가락이다. 그리고, 국립극장에서 그동안 보와왔던 것은 화려한 한복이 주는 칼러의 하모니였다. 하지만, 삼도천에서의 강강술래는 흰옷을 입은채 빠른 군무로, 수민이와 동민이를 지옥으로 빨이들이는 역할을 한다. 기존의 강강술래에서 차용하되, 삼도천의 이미지를 춤으로 형상화하였다. 그동안 강강술래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춤사위이자 집단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양한 형태로 변경된 춤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아서 기분이 좋았다.

두번째 공연을 보니 안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3번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시고. 국악공연을 보면서 같이 모시고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시기를 놓치거나, 마땅한 공연을 없다는 핑계로 같이 가지 못했다. 어머님들이 이 공연을 보면 내가 지나온 삶의 무게보다 많아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공연은 여러번 봐도 감흥을 새롭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 공연은 잘 보여주었다. 국립국악원이 앞으로도 다양한 연출가, 음악가와 협업을 통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국악에 관심을 같도록 좋은 공연을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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