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사

[작은 창극] 화용도 타령을 보고

1년에 한번도 안보게 되는 적벽가와 관련된 공연 (판소리, 창극, 민요/잡가)을 올해 벌써 4번이나 보았다. 적벽가를 현대화한 '적벽가 1950'(국립국악원 '금요공감'), 작은 창극 '화용도' 공연에 앞서 적벽가와 연관된 민요와 잡가를 골라서 보여준 '赤壁' (국립국악원 '목요풍류'), 서울돈화문국악단에서 봤던 윤진철 명창의 판소리 적벽가. 모두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파생된 작품으로, 이 소설이 당시 양반 사대부와 민중들에게 얼마나 있기가 있었는지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도 삼국지의 인기는 시들지 않은데, 적벽가를 주제로 한 공연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게창이나 소리를 통해서 들려주는 적벽가는 지금의 세대에게는 어딘가 맞지 않을 수 있다. 의미 전달이 쉽지 않은 국악 형태의 소리도 장애요소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은 창극 '화용도'는 판소리의 장점을 살리되, 현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판소리의 장점은 살렸다는 점은 판소리 적벽가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오롯이 배려한 것을 말한다. 화용도는 전쟁의 박진감 넘치는 남성적 소리보다는 소리 전달의 호소력이 좋은 여성 창자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국립국악원과 국립민속국악원의 명창들이 조조의 신하로 화공의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하고, 화용도에서 패한 조조 군사를 기다리는 관우가 되어 조조를 꾸짖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공연의 백미는 새타령. 새타령은 1명이 했을 때 드러나는 처연함, 슬픔보다 4명의 각자 군무를 하듯이 하모니를 이루어 새타령의 메시지인 죽은 장수의 원통함을 잘 드러내었다.

지기학 예술 감독의 '화용도'는 전통 판소리에 녹아있는 삼국지연의 조조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제시한다. 지감독은 조조를 악인으로 보는게 아니라, 우리와 같이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에 되는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즉, 100만대군이 몰살당하고 전투에서 패한 후 자신마저도 죽음을 앞두고 겪게되는 조조의 삶과 최고의 삶에서 바닥까지 떨어질 수 있는 우리네 삶의 인생무상을 돌아보도록 하였다.

작은 창극 '화용도'는 기존 적벽가에서 지나치게 조조를 희하화하는 내용을 중화시킨다. 장승 타령은 장승에게 겁을 먹고, 이 장승들에게 벌을 내리라고 허풍떠는 장수가 아니다. 조조의 허풍 대목은 줄이고,장승이 만들어진 내력에 촛점을 맞췄다. 또한, 조조가 패하고 곳곳에서 조조를 맞이하는 조자룡이나 장비 등에게 빼하지만 비굴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적벽가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목인 군사점고 내용도 뺐다. 전체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맞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화용도는 시작과 끝을 군사들의 원혼이 전장을 떠도는 것을 상징하여 새가 날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무대는 선계의 노인들이 중심인 도원과 적벽가의 무대로 나뉜다. 선계에서는 노인이 인간의 세계를 비꼬기도 하면서 우리의 삶이 수천년의 세월속에서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말하고자 한다.

적벽에서 몰살되어 새가 된 군사들을 보며, 전쟁의 허무함을 느꼈을 조조. 그리고, 우리들은 도원에서의 두 노인의 대화를 통하여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인간사를 되돌아본다. 자신의 뜻과 달리 전쟁터에서 죽었을 군인, 군인이 아니어서 더 피해가 컸던 민간인들. 우리는 이러한 전쟁의 피해를 멈출 수 없는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은 병사가 怨鳥가 되어야 전쟁을 멈출 것인가?

선계와 인간계를 나누어서 전달하고자 했던 연출의 의도가 얼마나 고객에게 어필했을까? 연극이라면 모를까, 적벽가의 창이 아닌 새롭게 썼다면 모를까. 전통 전벽가의 사설을 그대로 가져오되, 도원에서 두 노인과의 대화를 삽입한 새로운 적벽가 화용도의 연출 의도가 전달되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네 삶을 돌아보기엔 적벽가의 이미지가 나에겐 너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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