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사전

명창

  • 작성일2014-11-16

정의】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내용】판소리 소리꾼 중에서도 특별히 소리를 잘 부르는 사람을 ‘명창(名唱)’이라고 한다. 명창이라고 부르는 데는 일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사람마다 거명하는 명창이 다르다. 판소리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흔히 8명창 시대, 5명창 시대라는 말을 한다. 이는 특정한 시기와 명창을 연결 지어 일컫는 말로 대개 19세기를 전기 8명창 시대, 후기 8명창 시대로 구분하고, 20세기 전반기는 5명창 시대로 구분한다.

 8명창 시대 이전의 명창은 판소리의 시창자로 여겨지는 영정조대의 최선달(崔先達), 하담(河漢潭), 우춘대(禹春大) 등이 꼽힌다. 그리고 송만재(宋晩載, 1788~1851)가 지은 ??관우희(觀優戱)??에는 우춘대(禹春大), 권삼득((權三得), 모흥갑((牟興甲) 등 명창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전기 8명창 시대는 19세기 전반에 해당된다. 이 시대에는 판소리가 12마당으로 완성되고, 훌륭한 명창들이 등장하여 판소리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시기이다. 전기 8명창으로는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신만엽, 김제철, 주덕기, 황해천, 송흥록 등을 꼽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발하여 주요한 장기로 삼은 더늠으로 이름을 날렸다.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은 양반 출신의 광대, 즉 ‘비가비’이다. 그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덜렁제(설렁제, 권마성제)를 만들었다. 송흥록(宋興綠, 1801~1863)은 흔히 ‘가왕(歌王)’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북 남원 출신이다. 그는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이기도 하며, 진양조장단을 개발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산유화조(메나리조)라고 하는 경상도의 음악 어법을 판소리화 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춘향가>의 ‘옥중가’에 나오는 귀신이 우는 소리라는 ‘귀곡성(鬼哭聲)’으로 유명하다. 염계달(廉季達, ?~?)은 경기도 여주 또는 충남 덕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경기도 음악 어법인 경드름(경조)와 추천목을 개발했다. 모흥갑(牟興甲, ?~?)은 전북 전추 출신으로 강산조로 유명하며, 평양감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잔치인 <평양도(平壤圖)>에 대동강의 능라도에서 소리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수관(高壽寬, ?~?)은 충남 해미 출신으로서 목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딴청 일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만엽(申萬葉, ?~?)은 전북 여산 출신으로 석화제를 잘 불렀다고 한다. 김제철(金齊哲, ?~?)은 충청도 출신으로 석화제를 잘 불렀다고 한다. 주덕기(朱德基, ?~?)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송흥록과 모흥갑의 수행 고수 노릇을 하다가 소리 공부를 해서 명창이 되었다고 한다. 송광록(宋光綠, ?~?)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송흥록의 동생이다. 송흥록의 고수 노릇을 하다가 제주도에서 소리 공부를 해서 명창이 되었다고 한다. 송흥록과 송광록 형제에 이어 송광록의 아들 송우룡, 손자 송만갑, 증손자 송기덕까지 이르는 동편 소리는 흔히 ‘송판(宋判)’이라고도 한다.

 후기 8명창 시대는 19세기 후반에 해당된다. 이 시대에는 앞 세대에 이어 판소리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술적인 더늠을 만들었다. 대원군과 고종 앞에서 판소리를 불러 ‘국창(國唱)’이란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후기 8명창으로는 박유전, 박만순, 이날치, 김세종, 송우룡, 정창업, 정춘풍, 김창록, 장자백, 김찬업, 이창윤 등을 꼽는다.

 박유전(朴裕全, 1835~1906)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서편제의 시조이다. 대원군의 총애를 입어 선달 벼슬을 받기도 했다. 박만순(朴萬順, 1818~1886)은 전북 정읍 출신으로 주덕기와 송흥록에게 소리를 배워 동편제의 수령으로 군림했다. 이날치(李捺致, 1820~1892)는 전남 담양 출신이다. 그의 본명은 경숙(敬淑)인데, 몸이 날쌔다고 ‘날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줄광대를 하다가 고수가 되고, 이후에 명창이 되었다. 수리성(판소리 창법에서 쉰 목소리처럼 껄껄하게 내는 목소리)에 성량이 아주 컸다고 한다. 김세종(金世宗, ?~?)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그의 소리는 정응민을 통해 ‘보성 소리’로 이어졌다. 송우룡(宋雨龍, 1835~1897)은 전남 구례 출신으로 송광록의 아들이다. 송만갑, 유성준, 전도성, 이선유 등의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동편제 소리의 토대를 이루었다. 정창업(丁昌業, 1847~1919)은 전남 함평 출신이다. 정춘풍(鄭春風, ?~?)은 충청도 양반 가문 출생의 비가비(조선 후기에 학식 있는 상민으로서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이다. 김창록(金昌綠, ?~?)은 전북 무장 출신으로 <심청가>는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장자백(場子伯, ?~?)은 전북 순창 출생으로 가곡성 우조에 특히 능했다. 김찬업(金贊業, ?~?)은 전북 흥덕 출신으로 명창 김수영의 아들이다. 이창윤(李昌允, ?~?)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이날치의 제자이다.

 5명창 시대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해당된다. 이 시대에는 급변하는 사회에 맞는 새로운 창극(唱劇)이 발전되었다. 또한 유성기가 보급되어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판소리가 사랑받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기 위해 소리가 슬픈 가락으로 변화하는 계면화의 과정을 밟는다. 일제강점기에는 기생을 교육시키는 권번(券番)을 중심으로 여류 명창이 배출되기도 한다. 5명창으로 일컬어지는 명창은 박기홍, 김창환, 김채만, 전도성,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유성준, 정정렬 등이다.

 박기홍(朴基洪, ?~?)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가신(歌神)’으로 일컬어진다. 김창환(金昌煥, 1854~1927)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임방울의 외삼촌이다. 1903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의 주석을 맡았으며 ‘협률사(協律社)’라는 전통 공연 단체를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고종의 총애를 받아 의관직을 받았다. 김채만(金采萬, 1865~1911)은 전남 화순 출신으로 나중에 광주 속골에 살아서 ‘속골 명창’으로 일컬어졌다. 전도성(全道成, 1864~?)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고종에게서 참봉 교지를 받은 ‘어전 명창’이다. 송만갑(宋萬甲, 1865~1939)은 전남 구례 출신으로 송우룡의 아들이다. 고종으로부터 감찰직을 받았으며, 궁내부 별순감을 역임했다. 단단한 소리인 철성(鐵聲)으로 유명하며 경드름을 장기로 삼았다. 이동백(李東白, 1867~1950)은 충남 서천 출신으로 최고의 미성과 고음을 자랑하는 소리꾼이었다. 고종의 총애를 받아 소리꾼으로서는 가장 높은 관직인 정3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김창룡(金昌龍, 1872~1935)은 청남 서천 출신으로 중고제 소리의 정통으로 여겨진다. 유성준(劉成俊, 1874~1949)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동편 소리의 가장 뛰어난 소리꾼으로 여겨진다. 정정렬(丁貞烈, 1876~1938)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조선성악연구회를 중심으로 창극계의 유명한 소리꾼이었다.

 해방 후에는 판소리가 쇠퇴기로 접어든다. 해방 후의 명창으로는 임방울과 김연수를 들 수 있다. 임방울(林芳蔚, 1904~1961)은 천성의 아름다운 목으로 일제강점기에 <쑥대머리>를 불러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명창이다. 김연수(金淵洙, 1907~1974)는 조선성악연구회 시절부터 창극 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해방 후에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사설을 정리하고 가락을 새로 짜서 ‘김연수제’ 판소리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기생 양성기관인 권번(券番)을 통해 여류 명창들이 배출되었다. 여류 명창은 이화중선(李花仲仙, 1898∼1943), 김소희(金素姬, 1917~1995), 박초월(朴草月, 1913~1983), 박녹주(1906~1979), 박귀희(朴貴姬, 1921~1993) 등을 들 수 있으며, 1960년대에 중요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되면서 판소리가 제5호로 지정되고, 가야금산조및 병창이 제23호로 지정되어 예능보유자로 지정받기도 하였다.

【필자】이용식

참고문헌정노식. [조선창극사]. 서울: 조선일보사 출판부, 1940.

조동일 · 김흥규. [판소리의 이해]. 서울: 창작과비평사, 1978.

판소리학회. [판소리의 세계].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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