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사전

양주별산대놀이

  • 작성일2014-11-16

【정의】중요무형문화재로 제2호로 지정된 경기도 양주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

【유래 및 역사】옛날 서대문 근처 녹번동, 아현동에서 놀던 산대놀이가 본래의 산대이다. 양주 지역에서는 사직골 딱딱이패를 초청하여 산대놀이를 하였는데, 이후 관아에서 일을 하던 하급 관리들이 사직골 딱딱이패를 본 따 산대놀음을 한 것에서 양주별산대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 양주는 동서남북 모두 통하던 교통요지로서, 남쪽으로는 서울 장안으로 통하는 길목이 되어 주막이 즐비했고, 양주목사가 주재하던 곳으로 한강 이북 지역에서는 가장 큰 고을이었기에 별산대놀이가 연행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수 있었다.

별산대놀이는 4월 초파일, 5월 단오, 8월 추석이나 여러 명절 및 기우제를 지낼 때 연희되었다고 한다.

【내용】양주별산대놀이는 양주군에서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로 별산대라는 것은 별도의 산대놀이라는 뜻이며, 산대란 말은 탈놀음 등을 포함한 여러 잡희를 노는 무대나 무대 배경을 말한다.

별산대놀이는 단오, 명절 등에 연희하는데 보통 밤 10시 경에 시작하면 다음 날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길놀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영기(令旗)를 앞세우고 양주 사직골 당집에서 의상과 가면을 내려다가 갖춰 입고 마을을 돌며 길놀이를 한다. 놀이 장소에 이르면 놀이꾼 중에서 제관과 집사를 정해 고사를 지낸다.

 탈놀이는 모두 7과장(科場: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과장은 ‘상좌춤’이다. 상좌는 스님을 뜻하는데 흰 장삼을 입은 상좌가 나와서 춤을 춘다. 제2과장은 ‘옴중놀이’로 상좌의 춤이 끝날 무렵 옴중이 박대기와 제금을 들고 오면 상좌가 이를 빼앗자 옴중은 상좌를 물리친 후 춤을 춘다. 제3과장은 ‘먹중놀이’로 먹중이 등장하여 옴중의 옷과 용모를 가지고 재담을 한다. 재담이 끝나면 둘이 함께 춤을 춘 후 퇴장한다. 제4과장은 ‘연잎놀이’이다. 연잎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하늘을 보고 나타나고, 눈끔적이는 땅만 보고 나타난다. 옴중이 연잎과 눈끔적이의 얼굴을 보려고 갔다가 놀라서 돌아온다. 먹중들도 이들을 보고 놀라서 물러난다. 제5과장은 ‘팔먹중 놀이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경은 ‘염불놀이’이다. 완보가 먹중들에게 명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가 먹중들이 엉터리 중들임을 알고는 염불을 가르치려 하나 결국 먹중들을 염불을 하지 않고 장난을 친다. 이어 <백두타령>을 부르고 춤을 춘 후, 모두 덕담을 부른다. 제2경은 ‘침놀이’로 말뚝이가 아들, 손자, 증손자를 데리고 나오는데 아이들이 음식을 사 먹은 후 사경에 이르게 되어 완보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한다. 완보 재담을 하다가 <백구타령>으로 병을 풀어주려 하나 듣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의원 신주부를 불러 차례로 침을 놓으니 아이들이 벌떡 일어난다. 제3경은 ‘애사당 법고놀이’이다. 먹중들이 나와 춤을 추고, 이어 왜장녀가 애사당을 데리고 들어온다. 왜장녀는 몸짓과 시늉으로 애사당을 자기 딸이라 하고 먹중들과 흥정하여 돈을 받는다. 애사당이 먹중과 완보가 들고 있는 법고를 치며 춤을 춘다. 이후 먹중 하나가 애사당의 법고채를 빼앗아 자기가 법고를 친다. 이때 완보가 다시 달려들어 법고를 빼앗고 먹중과 재담을 나누며 놀다가 나간다. 제6과장은 ‘노장놀이’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경은 ‘파계승 놀이’로 먹중들이 부채로 얼굴을 가린 노장을 보고 고갯짓을 한다. 먹중들은 노장을 연평 바다에서 잡아온 고기로 보고 재담을 한다. 먹중들이 춤을 추며 나 후 노장은 정신을 차리고 등장한 두 소무와 춤을 추는데, 소무들이 싫다고 하자 노름도 하고 공기도 놀아본다. 소무들이 다시 노장을 불러 춤을 추며 논다. 제2경 ‘신 장수 놀이’에서는 노장이 신 장수에게서 두 소무의 신발을 외상으로 사는데, 외상값을 받으러 간 원숭이는 소무를 희롱만 하고 그냥 온다. 제3경은 ‘취발이 놀이’로 취발이가 잔뜩 취한 모습으로 등장해서 소무 하나를 유혹해서 아이를 얻는다. 제7과장은 ‘샌님 놀이’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경 ‘의막사령놀이’에서는 말뚝이가 샌님, 서방님, 도련님을 모시고 등장한다. 의막, 즉 임시로 거처할 곳을 정하는데, 샌님이 말뚝이를 시키자 말뚝이는 친구 쇠뚝이에게 부탁하고, 재담 끝에 돼지우리로 양반들을 몰아넣는다. 제2경 ‘포도부장 놀이’에서는 늙은 샌님이 젊은 소부를 데리고 사는데 젊은 포도부장이 이를 넘겨다보고는 결국 샌님에게서 소무를 빼앗는다. 제8과장은 ‘신할아비 놀이’이다. 신할아버지가 산대굿을 보러 나온 미얄할미에게 이별하자고 박대를 하니 미얄이 죽는다. 아들 도끼를 시켜 누이를 불러오게 한 후 누이가 무당이 되고, 신할아비가 장구치고, 도끼도 춤을 추며 미얄할미를 위해 진노귀굿을 한다.

이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양주별산대놀이는 파계승이나 몰락한 양반에 대한 현실 폭로와 남녀 간의 문제, 서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민간의 탈놀이임을 알 수 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과거에는 종이나 나무탈 등을 사용했으나 현재는 바가지탈을 주로 사용한다. 탈놀음 반주는 삼현육각(즉 피리 둘, 대금, 해금, 장구, 북) 편성에 꽹과리와 태평소를 추가하기도 하며, 피리와 장구만으로 간략하게 진행하기도 한다.

【필자】이진원

【참고문헌】[重要無形文化財解說 演劇篇]. 서울: 文化公報部 文化財管理局, 1986.

정형호, 서헌강, 문화재청.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 서울: 화산문화,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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