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사

2021 국립남도국악원 토요상설 국악이 좋다 김영길 예인 초청공연 귀향

2021년 4월 3일 토요일 오후 5시, 진도(珍島) 남쪽 바다마을 임회면 귀성리 여귀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珍樂堂), 서울에서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보람은 넘쳤고 온 가슴은 행복으로 빈틈없이 꽉꽉 채워졌다.

진도 도심지에서도 멀리 떨어진 외딴 작은 마을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국악애호가들도 잘 알지 못하는 국립남도국악악원 진악당에서 찬란한 보석같은 훌륭한 공연이 펼쳐진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표현하여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쟁명인 김영길이 고향 진도를 떠난 지 40년 만에 아쟁 명인으로는 공식적인 첫 귀향공연이었고, 국립남도국악원이 김영길을 초청하기 위해 들인 심혈과 뛰어난 기획, 표 나지 않는 엄청난 노고가 만들어낸 커다란 감동의 놀라움을 체험하며 더없는 칭찬을 한없이 한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팔각빗살 창호 하나가 스크린에 떠있다. 창호를 통해 은은한 달빛이 조용히 내려와 오른손에 활대를 잡고 비비며 왼손으로 아쟁 줄 농현 노님에 혼을 심는 김영길을 포옹한다. 포옹의 따뜻함이 애잔하게 우는 백인영류 풍류아쟁소리에 빨려들며 나를 몽환의 세계로 불러들였다. 노란 배추꽃 위에서 살랑거리는 흰나비의 날개 짓처럼 부담 없이 편안하게 밀려드는 장구가락이 아쟁 줄 가닥 가닥을 넘나들며 토해내는 신비로운 소리에 감흥을 더하니, 아련한 과거 속 알 수 없는 아픔까지도 찾아내야 할 것 같이 울어대는 아쟁소리가 가슴 저미게 파고들며 아쟁산조의 맛을 저절로 깨우쳐주었다.

왼손으로 징 안쪽을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징채를 가볍게 두드리며 액막이 축원 소리를 한다. 손을 비비며 빈다하여 ‘비손’이다. 비손을 진도에서는 무당이 징을 두들기며하기도 한다. 엷은 징징거림의 징소리와 축원 소리를 타고 넘으며 넘실거리는 풍류아쟁의 여리면서도 거칠고 깊은 슬픈 울음이 장대하게 울려 퍼지며 하나가 된다. 어느덧 스스로 빌고 있다. 무병장수를, 병환쾌차를, 사업대박과 자식성공을, 미묘한 아쟁소리의 마력에 빠져 넋을 놓았다 깨어났다.

풍류아쟁과 향피리가 만나 시나위를 펼쳤다. 기악을 독주하는 산조, 산조 악기들이 모여 각각 다른 소리와 즉흥적인 가락으로 어우러지는 합주가 시나위이다. 진도 씻김굿에서는 피리와 아쟁은 꼭 들어가기에 애잔함이 돋보이는 풍류아쟁과 어울리는 향피리가 함께 시나위를 펼쳐 숨소리마저 조심스럽게 하였다. 아쟁명인과 피리명인이 만나 관악기 피리소리와 찰현악기 아쟁소리가 어우러져 토해내는 화려함과 아름다움, 가슴 가득히 밀려드는 벅참, 이런 명품 연주를 즐기다니, 엄청난 행운이었다. 또 다시 맞이하기 어려운 큰 기쁨이었다.

이 공연의 끝을 장식한 강강술래 주제에 의한 시나위에 온 관객은 음률 따라 박수를 쳤고 어느 순간에 눈물을 흘렸으며, 우리 전통소리의 훌륭함과 매력에 더 없는 행복을 누렸다. 김영길 명인은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 자랐다. 지금은 계시지 않는 할머니를 그리며 아쟁선율을 중심으로 악곡을 창작하여 거문고, 대금, 장구 반주에 두 판소리꾼이 아니리와 육자백이, 흥타령과 강강술래로 엮어 한 편의 창극과 같이 펼쳐냈다. 촉촉하게 가슴을 적시면서도 따뜻함이 담겨 있었고, 애틋한 서러움과 고통스런 한을 풀어내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 가득 채운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
거문고, 대금, 아쟁, 장구 각각의 독주에 구음시나이가 이어졌고, 아니리 뒤에 육자백이가 흥타령 따라 강강술래, 강강술래 소리가 돌고나면 육자배기가 흐르고, 강강술래, 강강술래 그리고 독백같은 아니리... 이렇게 김영길의 할머니는 한 세상을 사셨다. 막은 내려졌지만 아이고 데고 허허나 허 성화가 났네, 헤~ 소리가 귓가를 맴돌며 진한 여운이 아직도 먹먹하다.

이 땅의 가장 남단, 표 나지 않은 공연장에서 유명 인사나 화려한 관객 없는 외부의 관심을 벗어난 공연이었지만, 큰 뜻이 담겨 알차고 소담하게 펼쳐졌다. 판소리 대통령상에 빛나는 최영인, 소민연 두 명창/ 국립남도국악원 단원인 국악경연대회 최고상 수상자 대금 황지민, 거문고 노택용, 장구 김주원연주자, 피리 나영선명인 그리고 박성훈 진도씻김굿 이수자 등 최고의 팀이 함께 한 김영길 예인 초청공연 귀향을 1회로 끝내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좀 더 큰 무대,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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