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사전

관습도감

  • 작성일2014-11-16

【정의】조선 태조 대에 설치된 국가 음악기관의 하나.

【유래 및 역사】조선을 건국한 1392년(태조 1) 7월 조선의 관제를 선포할 때에는 고려조의 전통을 계승하여 전악서(典樂署)와 아악서(雅樂署)를 조선의 음악기관으로 설치하였다. 관습도감(慣習都鑑)은 전악서와 아악서에 이어 건국 이듬해인 1393년(태조 2)에 예조 소속 음악기관의 하나로 설립되었다. 이들 기관은 악학(樂學)과 함께 건국 초기 조선의 궁중음악과 관련한 제반 업무를 담당하였다. 세조대에 이르러 전악서와 아악서는 장악서로, 악학과 관습도감은 악학도감으로 개편되었다가 이후 1470년(성종 1)에 장악원(掌樂院)으로 모두 일원화 되었다.

조선의 음악기관이 성종대에 장악원으로 일원화되기 이전에는 궁중음악과 관련된 업무가 이처럼 여러 기관에 분할되어 맡겨졌으며 각각 담당하는 일이 달랐다. 그 중에 전악서는 제향, 행행(行幸) 등에서 향악과 당악 연주를 담당하였고 아악서는 아악 연주를, 악학은 악서 편찬을 비롯한 연구 및 악공의 시험 및 음악 연습과 관련된 업무를, 관습도감에는 주로 연향에서 쓰이는 향악과 당악을 익히는 일과 관련된 업무가 주어졌다. 조선 건국 초기 이들 음악기관은 장악원으로 일원화되기 이전까지 조선의 궁중음악을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내용】

관습도감에서 주로 담당한 일은 연향에서 쓰이는 향악과 당악을 연습시키는 것이다. 특히 맹인 악사인 관현맹인(管絃盲人)과 무동(舞童)의 춤, 악공들의 악기 연습 및 여성 음악인인 여기(女妓)들의 음악 익히는 일을 주로 담당하였다. 조선 전기 궁중 연향에서 연주되는 음악의 실력은 관습도감의 역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향악과 당악을 악보에 따라 제대로 연주할 수 있도록 했고 그와 함께 궁중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및 의물, 관복을 관리하는 일과 음악행정 업무도 담당했다. 관습도감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설립된 전악서와 아악서가 궁중의 의례에서 필요한 음악을 모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설립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궁중 음악인들의 실력 향상과 궁중음악 보존과 전승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역대로 관습도감의 제조를 지낸 인물 가운데에는 음악에 뛰어난 인물이 많았는데 맹사성, 유사눌, 수양대군 등이 관습도감의 제조를 지낸 바 있다.

【필자】송지원

【참고문헌】

송방송, [악장등록연구],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1980

이혜구, [한국음악논총], 수문당,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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