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사전

성현

  • 작성일2014-11-16

【정의】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악학궤범]의 저자.

【내용】성현(成俔, 1439~1504)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숙(磬叔), 호는 용재(?齋), 부휴자(浮休子), 허백당(虛白堂)이다. 예조판서, 지중추부사 예문관수찬,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성현은 [악학궤범(樂學軌範)]의 저자로 특히 음률(音律)에 밝았다. 성종 24년(1493), 성현이 경상도 관찰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무렵, 당시 장악원 제조였던 류자광이 성현을 장악원 제조로 추천하였다. 악공이나 악생의 연주 시험을 볼 때 장악원 제조가 음률을 잘 알고 있어야 그들의 음악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추천을 받았고 당시 경상 감사를 하고 있는 성현은 한 달 만에 서울의 예조판서로 불려 올라와 장악원 제조를 겸직하였다.

성현은 그의 나이 55세인 1493년(성종 24)에 예조판서 겸 장악원 제조로 있으면서 조선의 악서(樂書)로 대표되는 [악학궤범]을 편찬하였다. 자신을 장악원 제조로 추천한 류자광과 함께 이룬 업적이었다. 당시 장악원의 의궤와 악보가 오래되어 헐었고, 남아 있는 것들도 모두 소략하고 틀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악학궤범]을 펴낸 것이라 하였다. 음률을 제대로 아는 인물이 장악원 제조로 임명되어 핵심적인 역할을 해 낸 것이다. 성현이 쓴 [악학궤범] 서문에 있는 편찬 이유를 보면,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귀를 스쳐 지나가면 곧 없어지고, 없어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러한 이유에서 소리를 시각적으로 기록하여 악보를 만들면 음악이 느린지, 빠른지, 선율이 어떠한지 알 수 있게 되고, 악기의 모양과 특성 등을 그림으로 남겨 놓으면 그 형상을 분변할 수 있게 되므로 [악학궤범]을 만들었다고 했다. 결국 성현이 지은 [악학궤범]에는 당시 사용하고 있는 음악과 음악이론·악기·복식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음악 내용을 모두 기록하였다. 책의 규모는 9권 3책이며 조선의 악서 가운데 이보다 더 정밀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성현의 음악업적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곧 [악학궤범]의 편찬이라 할 수 있다.

 

【필자】송지원

【참고문헌】[허백당집] [용재총화] [악학궤범]

송지원, [한국음악의 거장들], 태학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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