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사전

신민요

  • 작성일2014-11-16

【정의】1860년 개항 이후 우리나라의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크게 유행하였던 새로운 형태의 민요.

【유래 및 역사】

신민요라는 명칭은 1931년 발매된 김영팔 작사, 홍난파 작곡의 <방아 ?는 색시의 노래>와 윤복진 작사, 홍난파 작곡의 <녹쓴 가락지>를 수록한 콜럼비아 축음기 음반에 기록된 음악 갈래명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후에 이 명칭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전래 민요와 다르게 새롭게 등장한 민요라는 의미로 대중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내용】넓은 의미의 신민요는 개항 이후 변화하는 시대 상황을 묘사한 새로운 노랫말을 지닌 작사, 작곡자 미상의 민요를 말하는 것으로 <도라지>, <신고산타령>, <경복궁타령> 등이 있다. 이들은 개항 이후 교통이 발달하여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서 널리 불리게 된 것으로, 각 지방의 전래 민요가 고유한 기능을 지니며 전승된 것과는 달리 비기능요로서 전승되었다.

 좁은 의미의 신민요는 작곡가나 작사가에 의해 창작된 가락이나 노랫말을 쓴 것만을 일컫기도 하는데, <나운규 아리랑>,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 <노들강변>, 왕평 작사, 김교성 작곡 <능수버들>, 편월 작사, 형석기 작곡 <조선팔경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나운규 아리랑>의 경우는 나운규가 이전에 고향에서 들었던 <아리랑>을 편곡하게 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신민요이며, 다른 세 노래는 모두 작사, 작곡자가 있는 새로운 창작곡이다.

 1930년대 이후 신민요는 음악적으로 전통적으로 전승되는 전래 민요의 음조직을 바탕으로 외래 음악으로서 서양 대중음악과 일본 대중음악의 영향 아래 창작되었으며, 내용적으로는 국토를 예찬하거나, 자연을 찬미하는 등 기쁨과 흥겨움을 표현하거나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나 슬픔을 표현하였다. 신민요는 해방 이후 차차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쇠퇴하였으며 신민요 가수가 배출되지 않는 등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신민요들은 아직도 생명력을 유지하며 전래 민요의 위치를 차지한다.

【필자】이진원

【참고문헌】이진원. ?新民謠 硏究(1)?, [한국음반학] 제7호. 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1997.

장유정. [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오빠는 풍각쟁이야]. 서울: 민음i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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