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채록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19. 최경만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19. 최경만』, 서울: 국립국악원, 2015.

 

07 발간사 
08 연보 
13 채록일지 
14 일러두기 

 

제1장 1차면담 
18 7남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죠 
19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많이 봐왔고 정말 개구쟁이 였죠 
25 저는 어려서부터 우리 음악이 참 좋았어요 
28 어려서부터 소질은 있었나봐요 
30 피리는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불었죠 
31 조삼산 어른은 묵계월 선생님이 오빠라고 그럴 정도의 실력자죠 
32 제대로 배운 건 고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지영희선생님께 공부했죠 
34 악기는 얻어 쓰기도하고 사서 쓰기도 했죠 
36 어려서 버들피리 불었던 게 많이 도움이 되었죠 
37 처음엔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친구들한테 틈틈이 배웠죠 
39 지영희선생님은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죠 
41 전공도 피리 부전공도 피리… 피리만 했어요 
41 국악예술학교에서 수줍음도 많아서… 
46 중학교는 지금은 없어진 광문중학교를 다녔죠 
49 선생님 몰래 굿 집에 갔다가 들켜서 혼쭐나고… 
50 어머니께는 항상 감사하고 죄송하고 불효했어요 
51 음악만큼은 욕심을 많이 부렸죠 
55 선생님 입모양만 봐도 피리로 따라 불 수 있었죠 
57 학교행사뿐 아니라 여러 행사에서 공연했었죠 
60 학교다닐 때 전국에 유명한 선생님은 다 모셔다가 배웠죠 
62 정악이든 민속악이든 한 가지만 해야 더 정통성을 가지지 않나 생각해요 
63 국악 한다고 놀림도 많이 받았죠 
66 때론 자부심을 갖기도 했어요 
68 어릴 때 마음잡고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건 가족들 덕분이죠 

 

제2장 2차면담 
72 문화공보부장관상을 탔어요 
74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교에 들어갔죠 
76 군대는 군악대를 갔어요 
80 서울시립국악단에 재입단 했어요 
82 미국 하와이에서의 새로운 시작 정말 힘들었어요 
84 돈을 벌기위해 무작정 뛰어들었죠 
90 LA로 건너가서 결국 기술자가 됐죠 
92 한인 2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죠 
95 이제는 한국에서 국악해도 먹고살 만하다고… 
99 첫 음반이 반응도 좋고 해서 연습실도내고 강습도 다니다 결국 국립국악원에 들어가게 됐죠 
101 국악원에 들어와서 소개로만나 재혼을 하게 됐죠

 

제3장 3차면담 
104 그 당시 국립국악원은… 
107 1년 후에 악장되고 낙하산이란 말을 들었어요.. 
109 예술감독이 되어 뭔가 만들어놓고 나가야되지 않겠나… 
115 우는 소리를 표현하려고 4도를 전조시켰죠. 
116 민간대풍류는 지영희선생님께 배운 가락을 복원한 것이죠 
121 국립국악원 퇴임 후에 충남국악단으로 가게되었죠 
124 《서동의 노래》를 힘들게 만들었는데 대성공을 거두었어요 
129 부여의 농요 <산유화가>를 주요 레퍼토리로 만들었고 
131 여러 가지 어려웠지만 백제 오악사 복원도 그때 했었죠 
132 경기음악, 서도음악 뭐 차례차례 음반으로 만들어 냈죠 
135 무용하시는 분이 “피리대신 구음으로 해주십시오” 했어요 
138 음반하고 악보가 같이 있으면 배우는 사람들에게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나.. 
139 하하하… 실수도 있었죠 

 

제4장 4차면담 
142 아리랑은 ‘솔라도레미’음계고 당연히 ‘도’가 주음이죠 
143 한국음악피리연구회를 시작으로 여러 단체를 조직해서 활동중입니다 
148 2014년도에 삼현육각으로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4호로 인정 받았죠 

 

제5장 5차면담 
156 사진은 많이 없어요… 
175 지금서부터래도 내가 많이 베풀고, 도움을 받는 거 보담도 내가 줄줄 아는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이제 나이가 철 드는 모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