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사

나례, 전통의 구슬을 꿰어 보석을 만들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경험치와 고정관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눈과 귀와 마음을 열면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창이 보이지만 그 한 치의 벽이 태산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험의 소중함이 부각되는 것 같다. 좋은, 특별한 경험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렬하다.

일제강점기 이래 지난 백 여년 간 우리 문화의 전통과 아름다움은 외래문물의 화려함과 세련됨에 밀려 입지가 점점 좁아져 왔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율배반적이게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전통문화에 정서적 낯섬이 생겨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좋은 작품이나 공연을 접하면 참 뿌듯하고 반가운 이유다.

인류는 오랜 시간, 인간이 겪는 행 불행과 고통의 원인에 대하여 끊임없이 탐구해왔고 그로부터 벗어나길 소망해 왔다.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다양한 종교적 신념과 예식이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어왔다. 이것은 본능에서 출발하였으나 역사와 문화로 정착되어왔다. 한 해를 보내며 지난 해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의식으로 이 땅의 선인들이 믿고 행했던 소박한 소망과 의식들은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고난을 이겨내고 신산한 삶을 이어가는데 최소한의 위안이고 희망의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나례’는 이러한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공포를 잘 다듬어 놀이로 승격시킨,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천여년 이어졌던 나례를 재구성하여 무대에 올리는 것은 옛 것이 오늘에 어떻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지 시금석이 될 것이다.

‘나례’는 시작부터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다. 국악공연은 다소 지루할 것이란 고정관념은 처음부터 여지없이 깨진다. 무대 전면, 고즈넉한 창덕궁을 감싸는 적막에 하나씩 촛불과 횃불이 켜지며 서서히 긴장감이 오르기 시작하고 하늘에 고하는 의식을 마치자마자 관객 옆에서 사방신들이 불쑥 불쑥 등장하며, 의외성에서 나오는 극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어 흥겨운 연희패들의 한판 놀이, 정악단의 연주와 학무, 처용무 등 전통무용과 방상시무, 역신무, 십이지신무, 진자무 등 창작무들이 이어지는데 그 모두가 하나의 줄거리와 서사 속에서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녹아 든다.

이 공연의 힘은 나례라는 옛 전통을 뿌리로,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이라는 상상력을 더해 하나의 줄거리로 꿰어내며 현재에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장르의 평면적 나열 또는 선악이 대비되어 대립과 투쟁이 거칠게 묘사되는 단층구도를 탈피하고 극적인 얼개와 각 장르별 공연을 구조적으로 엮어 작품화 했다. 인간을 괴롭히는 역신들을 얼르고 달래 쫓아보려 하지만 점점 거세지는 역신들과 마침내 일전을 벌이고 결국 미래의 상징인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역신들을 몰아내며 희망을 담보한다는 스토리텔링 속에 전통적 영역의 음악과 춤이 구슬을 꿰어 보석을 만들 듯 형상화된 것이다.
희망을 비춰주며 화합을 염원하는 만큼, 공연에서는 서로 다른 이질적 요소들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사자무와 광대들이 해학을 펼치는 마당놀이의 흥겨움과 풍자에 대비되는 정악의 정교함, 그리고 궁중무, 학춤과 처용무 등 전통무의 우아함과 대비되는 창작무들의 예술적 생동감, 횡포한 역신들과 구태에 대비되는 아이들의 앳된 동요소리, 그리고 구중궁궐과 민간이라는 대비된 공간이 섣달 그믐 ‘나례’ 속에서 하나가 되어 아름답고 흥겨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연말이 되면 호두까기 인형이라는 발레 작품이 크리스마스의 시그니처 공연이 되어왔다.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그 즈음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시그니처가 된 것이다. 공연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그니처 공연이라면 볼거리가 풍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국악계에서도 국악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나례를 관람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관례를 만들어, 연말 국악계의 시그니처 공연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좋은 공연은 관객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 부족하고 아쉬운 것들은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며 성장해 나가리라 믿는다.

공연을 마무리하며 창덕궁 창공에 터지는 화려한 불꽃놀이는 새 희망과 염원을 상징하는 카타르시스였고, 뜻밖에 받아 든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창덕궁을 밝히는 촛불과 횃불이 하나 둘씩 꺼지며 다시 찾아온 적막 속으로 묵은 시간이 빨려 든다. 이 신비로운 시공간의 체험은 또 하나 연출과 무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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