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사

정중동과 여백,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영산회상을 기대하며...

평소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연주를 즐겨 들으며 국악의 멋을 만끽하던 관객으로서 몇 가지 언급하려고 한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정기공연 ‘영산회상’이 3월 28일과 29일 양일간 공연되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정기연주회는 정악을 즐겨듣는 사람으로서 정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에 다망한 중에도 매번 기대와 설렘을 안고 국립국악원을 찾는다.

첫째 날 관악영산회상과 현악영산회상이, 둘째 날 관악영산회상(첫째 날과 같음)과 평조회상이 공연되었는데, 두 공연의 온도 차가 너무 컸다. 국립국악원이 제공한 공연프로그램 소개에 따르면 정악단은 계승 차원의 음악과 함께 풍류음악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과 연주자들의 음악적인 교감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동을 공유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관악영산회상은 피리2, 대금1, 해금1, 장구1, 좌고1의 삼현육각 편성으로, 현악영산회상은 현악파트의 음량을 풍성하게 표현하고자 가야금과 거문고를 복수로 편성하여 색다른 느낌을 선사하려 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이번 영산회상은 그동안 정악단만이 보여주던 자유롭고 멋스러운 정악이 아닌 마치 정형화된 서양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관악영산회상은 각 악기의 특성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삼현육각 특유의 세련된 멋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었고, 마치 피리 선율에 끌려가는 듯하여 편안한 음악을 들려주지 못했다. 현악영산회상 또한 관악기는 시간에 쫓기듯 급하게 선율을 이어갔고, 현악기는 서로의 호흡을 고를 여유도 없이 관악기의 선율을 쫓아가느라 바빴다. 또한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영산회상이 이렇게 빠른 음악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문고가 빠르게 연주하더니 아홉 개의 곡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마치 서양음악에서 각 악장을 끊어서 연주하는 것처럼 다음 곡으로 넘어갔다. 이러다 보니 아홉 개의 모음곡이 자연스럽게 한 곡의 영산회상으로 완성되는 멋과 운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거문고의 강렬한 소리로 인하여 음악이 한층 더 빨라져 여유롭지 못했고, 이 때문에 가야금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각 악기가 서로 호흡하는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대편성 관악영산회상과 섬세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현악영산회상의 멋을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웠다.
한편 자유로운 풍류 음악에 반해 자유롭지 못한 등장과 퇴장, 프로답지 못한 커튼콜도 아쉬움이 남는다. 연주뿐 아니라 공연 전후 인사 또한 매우 중요함을 실감한다.

둘째 날 관악영산회상은 첫날과 같은 구성으로 다를 것 없었으나, 관현악 대편성으로 구성한 평조회상은 첫째 날 현악영산회상과 달리 관악과 현악이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호흡하면서 어우러져, 여유로우면서도 풍성함이 돋보이는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보러오는 관객들은 자유로움과 느림의 미학이 사라진 정형화된 음악이 아닌 서로 호흡하면서 멋과 운치가 있는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기를 기대한다. 음악은 시대에 따라 변하겠지만 그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주변환경과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통음악을 올곧게 전승하는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정악, ‘정중동(靜中動)’과 ‘여백과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정악으로 힐링하고 싶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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