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서』에서는 절고가 당나라 이래로 아악의 등가에 사용되었다고 하며, 부휴혁(傅休奕)의 〈절고부(節鼓賦)〉에 “종이 울리는 가운데 노래하고, 구소(九韶)에 맞추어 춤추니, 절도가 맞지 않으면 입으로 노래하지 않고, 절도에 맞지 않으면 손으로 두드리지 않는다.”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여 그 기능을 설명하였다. 또한 『당육전(唐六典)』을 인용하여, 절고가 축(柷)ㆍ어(敔)와 함께 악현(樂縣)에 진설되어 등가악을 시작하고 그치게 하는 용도로 쓰였으며, 오채색의 이중 덮개로 장식되어 청악부(淸樂部, 당나라 십부기(十部伎) 중 하나)에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결국 절고는 남북조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청악에 편성되어 음악의 절주를 조절하였기 때문에 ‘절고(節鼓)’라 불렸다. 이 시기의 절고 형태는 『세종실록』 「오례(五禮)」와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에 그려진 절고와 유사하다. 당나라 이후에는 아악의 등가에 편성되어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문묘제례악》에서는 매 악구의 끝(노랫말 한 구를 이루는 네 글자 중 마지막 글자)에 절고를 두 번 쳐서 악구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종묘제례악》에서는 각 악곡의 악구 처음과 악곡의 종지에 치며, 몇몇 악곡에서는 종지 부분에서 편종(編鐘)ㆍ편경(編磬)의 동음 반복 음형에 맞추어 세 번 연달아 치기도 한다. 이러한 절고의 기능은 헌가에서의 진고 역할과 유사하다.
○역사적 변천 우리나라에서는 세종대 이후 문헌에 등장한다. 『세종실록』 「오례」와 『악학궤범』에 그려진 절고 형태는 『악서』에 그려진 것과 유사하다. 현재까지 제례악의 등가에 편성되어 사용되고 있다.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