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僧舞)
조선 후기에 연행된 극 형식의 춤으로, 한량ㆍ색시ㆍ승려가 등장하는 4~5인의 춤극(舞劇).
조선 후기 교방에서 연행된 극 형식의 춤으로, 한량ㆍ색시ㆍ승려의 삼각관계를 통해 남녀애정 관계를 서사(敍事)적으로 표현한 춤이다. 본래 기생들이 역할을 나누어 맡아 연행하던 춤이었으나, 현재는 남녀 무용수 4인~7인 구성되어 이야기가 있는 춤극이다. 진주에서 전승된 한량무와 한성준 계열로 서울에서 복원한 한량무가 대표적이다.
한량무에 관한 기록은 조선후기 문인들의 시문에 남아있다. 임수간(任守幹, 1665~1721)의 『동사일기(東傞日記)』(1711)에 의하면, 의성에 머물면서 종사관과 함께 문소루에 올라 풍악을 베풀었는데, 이때 객사에서 기생 윤매와 봉매가 중춤을 추었고, 이를 〈승무〉라고 하였다. 이우준(李遇駿, 1801~1867)의 『몽유연행록(夢遊燕行錄)』에는 의주에 머물 때 월야에 연향을 베풀었는데, 〈고무〉ㆍ〈포구락〉ㆍ〈발도가〉ㆍ〈항장무〉ㆍ〈승무〉를 연행하였고, 그중 〈승무〉가 볼만했다는 기록이 있다. 홍순학(洪淳學, 1842~1892)의 『연행가(燕行歌)』에서는 선천부사가 의검정에서 베푼 연희에서 한량무를 가리켜 ‘우습도다 승무로다’라고 하였으나, 극형식의 춤인지, 홀춤(독무)인지 알 수가 없다.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의 『교방가요(敎坊歌謠)』(1872)에서는 한량무를 〈승무〉라고 칭하면서 기생ㆍ풍류랑ㆍ노승ㆍ상좌ㆍ소기 등 다섯 명이 등장하여 기생, 풍류랑, 노승 사이의 애정을 표출한 춤극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량무의 유래는 크게 남사당패 기원설, 산대놀이 기원설로 구분되는데, 남사당패 기원설은 조선 중기 이후 남사당패들이 전국을 돌면서 연희할 때 일종의 여흥으로 한량무를 추었다는 설로, 성경린, 김온경, 김정녀 등이 주장하였다. 산대놀이 기원설은 산대놀이의 주 종목인 탈놀음의 중과장이 교방에 유입되어 한량무가 되었다는 설로, 김온경, 허동성, 이세기 등이 주장하였다.
○ 개요 관직 없이 놀기만 좋아하는 호탕한 성격의 한량,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파계한 승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조 없는 색시 등 세 인물의 애정행각을 무언(無言)의 몸짓으로 표출한 전통 춤극이다. 이들의 삼각관계를 통해 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바른 가치관에 대한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 구성 한량무는 서사 구조를 지닌 춤으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니는데, 기(起)에서는 주로 기생과 한량의 만남, 승(承)에서는 기생이 한량을 배신하는 내용, 전(轉)에서는 기생과 한량의 갈등, 결(結)에서는 기생의 반성을 통한 기생과 한량의 화합으로 진행된다. 현재 무극 한량무는 진주 한량무와 서울 한량무가 있는데, 진주 한량무는 9과장으로 한량ㆍ색시ㆍ승려ㆍ주모ㆍ상좌ㆍ별감ㆍ마당쇠 등 일곱 명이 등장하여 서로 마주 보고 추는 대무(對舞)형식으로 진행된다. 진주 한량무의 각 과장은 다음과 같다.
| 과장 | 과장 명칭 | 내용 |
| 제1과장 | 주모ㆍ마당쇠마당 | 게으른 마당쇠가 약삭빠른 주모를 쫓아다니며 골탕을 먹인다. |
| 제2과장 | 한량ㆍ색시마당 | 색시의 고운 자태에 반한 한량이 색시를 유혹하는 과정으로 한량은 색시와 한바탕을 춤을 춘 후, 색시에게 줄 꽃신을 사러 나간다. |
| 제3과장 | 승려ㆍ색시마당 | 상좌를 앞세우고 나타난 승려가 색시에게 반해서 색시와 어울려서 한바탕 춤을 추고, 색시에게 줄 꽃신을 사기 위해 퇴장한다. |
| 제4과장 | 별감ㆍ색시마당 | 고을을 순찰하던 별감이 색시를 보고 반하고, 색시는 권력을 지닌 별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함께 사랑의 춤을 춘다. |
| 제5과장 | 한량ㆍ색시마당 | 한량은 색시에게 꽃신을 신겨주고 색시와 사랑의 춤을 춘다. |
| 제6과장 | 승려ㆍ색시마당 | 꽃신을 들고 온 승려가 한량이 신겨준 꽃신을 버리고, 색시에게 꽃신을 신겨준 뒤 사랑의 춤을 춘다. |
| 제7과장 | 한량ㆍ주모마당 | 색시가 승려와 함께 떠난 것에 화가 난 한량은 술을 마시면 화를 삭인다. 주모는 한량을 유혹하기 위해 꽁당춤을 추면서 접근하나 한량은 주모에게 관심이 없다. |
| 제8과장 | 한량ㆍ승려ㆍ색시마당 | 갈등 구조의 클라이맥스로서, 색시의 배신에 화가 난 한량과 승려는 서로 색시를 떠밀면서 용서를 하지 않자. 색시는 구석에서 슬퍼하며 운다. 이때 측은한 마음이 생긴 한량이 색시를 용서하고 화해의 춤을 춘다. |
| 제9과장 | 대동마당 | 그동안 배신ㆍ분노ㆍ갈등의 감정을 해소하는 화합의 장으로 일곱 배역이 모두 출연하여 함께 춤을 춘다. |
| 과장 | 과장 명칭 | 내용 |
| 제1과장 | 한량ㆍ색시마당 | 한량과 색시가 만나서로 사랑의 춤을 추다가, 색시 환심을 사기 위해 한량이 꽃신을 신겨보고 치수를 확인한 후 다른 한 짝을 가지러 퇴장한다. 이때 무대 뒤에서 먹중이 한량과 색시의 모습을 지켜본다. |
| 제2과장 | 먹중ㆍ색시마당 | 먹중이 색시 앞에 나타나서 염주를 주면서 유혹한다. 염주가 마음에 든 색시는 먹중과 사랑의 춤을 춘다. 먹중은 한량이 준 꽃신을 벗겨 던진다. |
| 제3과장 | 한량ㆍ먹중ㆍ색시마당 | 한량이 꽃신 한 짝을 들고 등장한다. 색시가 먹중과 바람이 난 것을 알고 꽃신을 던져 버리고 먹중과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놀란 색시는 염주를 던져 버리고, 먹중을 밀친다. 색시는 다시 꽃신을 신고 한량에게 가나, 화가 난 한량은 색시를 외면한다. |
| 제4과장 | 한량ㆍ주모마당 | 화가 난 한량은 술을 청하고, 주모는 신이 나서 술상을 들고 엉덩이춤을 추면서 등장한다. 주모는 갖은 교태로 한량을 유혹하나 색시에게 마음에 있는 한량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주모는 한량을 포기하고 술상을 들고 퇴장한다. |
| 제5과장 | 화해마당 | 색시는 잘못을 뉘우치고, 한량은 색시를 용서하고 달래며 함께 사랑의 춤을 춘다. |
한량무는 인물의 특성을 몸짓으로 표출한 배역 춤이다. 진주 한량무의 한량은 부채ㆍ담뱃대를 들고 경남 특유의 덧배기춤을 추며, 서울 한량무의 한량은 부채를 들고 자유분방한 멋을 표출하는 허튼춤을 춘다. 색시춤의 경우 진주에서는 한삼춤, 서울에서 맨손 춤을 춘다. 승려춤의 경우 진주에서 장삼춤, 서울에서 부채춤을 춘다. 주모춤의 경우 진주에서는 술상을 들고 엉덩이를 흔드는 꽁당춤을 추고, 서울에서는 술상을 들고 엉덩이춤을 춘다. 그 외에 보조 배역은 진주 한량무에서만 등장하는데, 상좌는 목탁춤, 마당쇠는 빗자루춤을 추며, 별감은 지휘봉을 들고 춤을 춘다. 한량무는 대부분 2인이 대무형식의 춤으로 서로 마주 보고 상대(相對)하거나 등을 대고 상배(相背)의 형태를 나타낸다. 진주 한량무의 승려춤은 진주권번 선생이었던 강귀례(姜貴禮, 1905~1977)의 쌍승무를 전승한 춤이다. 강귀례는 젊은 시절 광무대에서 쌍승무를 춘 사람으로 노년기에 진주에 내려와 권번에서 학생들을 교습하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진주 한량무의 쌍승무는 권번의 승무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서울 한량무의 춤사위는 평사위, 올림사위, 내림사위, 앉는 사위, 도는 사위, 어르는사위, 뛰는 사위, 너울사위, 꼬리치는 사위, 손목떨어뜨리는 사위 등으로 구성되며, 한량·색시·주모·승려가 등장하여 대무 형식으로 춤을 진행한다. 특히 서울 한량무는 강선영 제자들로 구성되어 춤사위가 세련되고, 극적 표현이 뛰어나며, 예술적 완성되가 높다.
○ 반주 음악 반주악기는 피리 두 대, 대금 한 대, 해금 한 대, 장구 한 대, 북 한 대로 구성된 삼현육각으로 구성된다. 반주 장단은 주로 굿거리장단을 사용하고, 과장의 특성에 따라 염불, 타령, 자진모리장단을 사용한다. 진주 한량무의 각 과장별 반주장단은 제1ㆍ7과장은 자진모리→굿거리, 제2ㆍ4ㆍ5ㆍ6ㆍ8ㆍ9과장은 굿거리, 제3과장은 굿거리→염불→타령으로 진행한다. 한편 서울 한량무는 제1ㆍ2ㆍ3ㆍ5과장은 허튼 굿거리, 제4과장은 자진타령→허튼 굿거리로 전개된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진주 한량무와 서울 한량무의 복식은 전반적으로 유사하나, 근소한 차이를 나타낸다. 한량의 경우, 진주에서는 흰색 바지저고리ㆍ흰색 도포ㆍ술띠ㆍ갓ㆍ부채ㆍ담뱃대, 서울에서는 흰색 바지저고리ㆍ흰색 도포ㆍ남색 쾌자ㆍ술띠ㆍ갓ㆍ부채를 든다. 색시의 경우, 진주에서는 색동원삼ㆍ붉은 치마ㆍ붉은색 대(帶)ㆍ족두리ㆍ한삼, 서울에서는 초록 원삼ㆍ붉은색 치마ㆍ붉은색 대ㆍ족두리를 쓴다. 승려의 경우 진주에서는 승복ㆍ검은색 장삼ㆍ흰 고깔ㆍ붉은색 가사ㆍ북채, 서울에서는 승복ㆍ황토색 장삼ㆍ붉은색 가사ㆍ염주ㆍ송낙ㆍ부채를 든다. 주모의 경우 진주에서는 검은색 치마ㆍ흰색 바탕의 자주색 고름ㆍ타래머리ㆍ술상(술병과 술잔), 서울에서는 검은색 치마ㆍ붉은색 저고리ㆍ노란색 속바지ㆍ타래머리ㆍ술상(술병과 술잔)이다. 그 외 배역으로 상좌는 승복ㆍ흰색 고깔ㆍ목탁, 마당쇠는 흰색 바지저고리ㆍ검은색 조끼ㆍ짚신ㆍ빗자루, 별감은 별감 복식ㆍ지휘봉을 든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조선 후기에 성행했던 한량무는 일제강점기에 광무대 등에서 무대 작품으로 연행되었다. 특히 한성준은 1938년 향토연예대회, 1939년 남선순업공연(南鮮巡業公演), 1940년 도동기념공연에서 한량무를 연행하였다. 이후에는 각 지역에서 특색있는 한량무가 추어졌는데, 서울ㆍ경기에는 김인호계열의 이동안 한량무, 한성준계열의 강선영 한량무, 전라도에는 정읍ㆍ전주ㆍ익산권번 계열의 한량무, 경상도에는 진주권번 계열의 한량무, 양산권번 계열의 김덕명 한량무가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전통춤이 기ㆍ예능을 바탕으로 예술미를 추구하는 반면, 한량무는 유일한 춤극으로서 소외계층인 한량ㆍ기생ㆍ승려을 통해 당시 사회를 해학적으로 그려낸 춤이다.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를 지니며, 의미를 전달하는 극적 표현을 위주로 하는 몸짓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한량무는 교방 기생에 의해 연행된 춤으로, 남자 배역인 한량ㆍ승려ㆍ별감ㆍ마당쇠ㆍ상좌 등의 배역을 기생이 담당한 여성남장춤(女性男裝舞)이다. 이는 탈춤이 남성 춤으로 남성여장춤(男性女裝舞)인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경상남도 무형유산에는 한량무(1979) 서울특별시 무형유산에는 한량무(2014)
춤극인 한량무가 여성 춤이라면, 1인 한량무는 남성 춤으로 20세기 후반부터 추어졌다. 1인 한량무는 한량을 표상화하여, 풍류미ㆍ역동미ㆍ흥을 표출한 춤이다. 지역에 따라 〈입춤〉ㆍ〈남무〉ㆍ〈즉흥춤〉ㆍ〈선비춤〉ㆍ〈양반춤〉ㆍ〈한량춤〉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으나, 현재는 한량무로 통일해서 부른다.
『교방가요』 국립문화재연구소, 『입춤ㆍ검무ㆍ한량무』, 계문사, 1996. 박재ㆍ김성은 역, 『동사일기』, 보고사, 2017. 성무경, 『교방가요』, 보고사, 1990. 이유준, 『몽유연행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8. 홍종선, 『연행가』, 신구문화사, 2005.
강인숙(康仁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