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너리무관
통영 신청(神廳)으로부터 전승되는 남해안별신굿과 오귀새남굿, 도신굿을 구성하는 여러 굿거리에서 ‘대너리’에 맞추어 연행되는 승방의 무관
남해안별신굿은 경상남도 거제 및 통영 지역을 중심으로 여수, 남해, 부산 등 남해안 일대 도서지방과 내륙지방에서 연행되는 마을의 공동제의이다. 이 굿은 세습무가 주관하는 굿으로서 무당을 가리켜 ‘승방’ 혹은 ‘지모’라 한다. 무관이란 통영 신청(神廳)에 소속된 승방들의 춤을 일컫는 말로 승방이 춤을 잘 추는 것을 ‘무관이 좋다’, ‘무관을 잘한다’라고 한다. 또 안무 능력이 뛰어남에 대해서 ‘무관을 잘 짓는다’라고 말한다. 이 지역의 세습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기원하는 별신굿뿐만 아니라 각 가정의 상장례(喪葬禮) 의식도 담당하였는데 이러한 무속 의례를 ‘오귀새남굿’, ‘오귀굿’, ‘오구굿’이라 한다. 또한 가정의 평안과 자손의 번창 등을 기원하기 위한 굿은 ‘도신굿’이라 한다. 위의 세 가지 굿은 한 굿거리가 다채로운 장단으로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너리는 굿의 도입부에 연주되는데 ‘대너리’라는 말의 유래는 굿의 시작을 알릴 때 ‘너우~~리나’하고 소리를 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너우~리나’라는 소리는 ‘이제 크게 시작한다.’, 혹은 ‘이제 굿을 시작하자.’라는 뜻이다. 대너리무관은 이러한 대너리에 맞추어 추는 무관으로서 굿의 시작과 함께 신을 정중히 맞이하는 의미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의 굿은 모두 세습무가에 의한 굿이므로 정확한 전승 계보를 알 수 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남해안별신굿은 정씨(鄭氏) 무계에 의해 전승된 것으로 현재 보유자로 지정된 정영만은 11대 전승자이다. 정영만은 초대보유자인 정모연(鄭模蓮, 1915~1989)1으로부터, 정모연은 그녀의 어머니인 유선이(劉先伊, 1881~1952)2로서부터 대너리무관을 비롯한 굿 의례 전반을 전수받았다.
1) 1987년 7월 1일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으며 초대 보유자는 정모연(鄭模連, 1915~1989), 2대 보유자는 고주옥(高珠玉, 1914~1990) 선생이다. 정모연은 정연만의 큰고모할머니이고, 고주옥은 정영만의 친할머니로 무가, 무관 등 굿 제반 절차들을 모두 전수한 인물들이다.
2) 유선이(劉先伊, 1881~1952)는 정모연의 어머니이며 승방으로 활동하였다.
아래는 현재 (사)남해안별신굿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는 남해안별신굿과 오귀새남굿, 도신굿의 여러 굿거리 중 대너리무관이 나오는 굿거리들을 정리한 것이다. ① 남해안별신굿: 들맞이당산굿, 일월맞이, 용왕맞이, 부정굿, 가망굿, 제석굿, 용왕굿 ② 오귀새남굿: 산맞이, 용왕맞이, 부정굿, 성주굿 ③ 도신굿: 산맞이, 중천맞이, 용왕맞이, 부정굿, 가망굿, 제석굿 승방은 단상을 향해 모셔질 신(神)에게 반절로 한 번 허배(虛拜)한 후 돌아서서 같은 방식으로 참여자들(마을 주민, 재가집, 관객 등)을 향해 허배한다. 이후 넋노래가 끝나면 대너리가 시작되는데 이때 장단에 맞추어 대너리무관을 한다. 대너리무관이 마무리 되면 승방의 소리와 산이들의 바라지 소리가 주를 이루며 본격적으로 굿이 진행된다. 따라서 대너리무관은 굿의 도입부에 신을 청하고, 맞이하는 무관이라 할 수 있다.
○ 주요 춤사위 위 굿에서 대부분의 춤사위는 특별한 이름으로 명명되지 않고 전승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춤사위의 명칭이 전해지는 경우에는 그 명칭을 사용하되, 명칭이 전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을 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어 서술하고자 한다. 대너리무관의 시작은 항상 부채를 펴는 사위로 시작한다. 부채를 편 승방은 팔을 어깨높이로 들고 몸통을 뒷사선 방향으로 움직인다. 몸통의 움직임은 어깨, 팔꿈치 손목의 순으로 전달되어 손목놀음으로 표현되고, 이러한 손목놀음에 따라 부채와 손전의 움직임이 다양하게 변화된다. 또 몸통의 움직임은 하체의 중심 이동에도 영향을 주며 발을 딛는 위치와 보폭 등을 결정한다. 이 무관을 빠르게 연결하면 어르는 사위가 된다. 두 번째로 많이 볼 수 있는 춤사위로는 호접사위를 꼽을 수 있다. 호접사위는 꽃에 나비가 날아드는 것과 같은 몸짓으로 양팔을 밖으로 펼쳤다가 모은다. 승방은 장단에 맞추어 다양하게 완급을 조절하고 팔의 미세한 높낮이 차이를 두어 호접사위 하나만으로도 다채롭고 풍성해 보이도록 무관을 짓는다.
세 번째로는 부채로 승방의 얼굴을 가리고 회전하는 무관을 들 수 있다. 손전을 든 왼팔은 옆으로 들기도 하고, 아래로 내리기도 한다. 또 손전을 위로 올려 부채의 끝과 맞닿게 하는 방식으로 무관을 지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손전과 부채를 놀리는 사위이다. 이는 승방이 반 바퀴 회전하여 방향을 바꿀 때 주로 사용된다. 승방은 회전과 동시에 손전은 위로 부채는 아래로 원을 그리듯이 돌리는데 손전과 부채가 그리는 곡선의 미가 돋보이는 춤사위이고 이러한 회전 뒤에는 보통 호접사위가 뒤따른다.
○ 대너리무관의 음악 구성 대너리는 장구, 북, 징의 타악기로만 연주된다. 앞서 언급한 굿거리들은 항상 청신악으로 시작하는데 청신악은 대금의 독주로 이루어진다. 청신악이 끝나면 장구를 연주하는 산이의 넋노래가 이어진다. 넋노래 이후부터 승방의 무가(巫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가 대너리이다. 대너리는 천천히 시작하여 점점 빨라지는 음악적 특성을 갖는다.
국가무형문화재(1987)
서울역사박물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다시 태어난 우리 옷) 환생』, 서울역사박물관: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2006. 송미경,「조선시대 답호 연구 –17세기 전기까지」, 『한국복식학회』59 · 10, 2009. 염순정, 김은정,「조선시대 답호의 조형특성을 응용한 디자인 연구」,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21 · 1, 2019. 정은주(2022), “남해안별신굿 전승과정에 대한 연구: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의 구술생애사를 중심으로”, 전북대학교 인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5-11.
심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