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걸립의 연행 내용
걸립굿은 공적인 명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걸립의 목적을 밝히는 문서로 통문(通文), 통장(桶狀), 권선문(勸善文) 등을 작성하여 들고 다니거나 배포하였다. 걸립굿 중에서 조선 후기 절걸립과 관련된 기록은 해남 대흥사에 전하는 『설나규식(設儺規式)』을 통해 확인된다.
『설나규식』 은 대흥사의 13대 대강사(大講師)인 범해각안(梵海覺岸, 1820-1896)이 구본(舊本)에 따라 편차(編次)한 것이다. 전체 내용은 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각항문첩(各項文牒) - 절걸립을 하게 된 연유를 기술하고, 허가를 받기 위해 각 영·읍·마을 등에 보내는 통문(通文)과, 사찰이나 마을에 들어갈 때 전달하는 고목(告目)이나 서간(書簡)의 내용을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다. 뒤이어 치진장(馳進狀), 현알장(現謁狀), 연명장(聯名狀)에 대한 내용도 기술되어 있다. 각각의 기술 내용은 공간과 상황에 따라 제시되는 것이다.
㉯ 인참점반(人站點飯) - 인원을 점검하고 식사를 대접받는 것 등의 내용이다.
㉰ 문장거래(文狀去來) - 걸립을 들어가기 위해 문 앞에 영기를 세우고 문서를 보여 주며 허가를 받아 입장하는 내용이다.
㉱ 문장회사(文狀回謝) - 삼로오행문귀, 영산다나귀 등을 비롯한 판굿을 연행하는 내용이다.
㉲ 다담악공(茶談樂工) - 연행을 마치고 각 치배들을 불러 치하하고, 악공들로 하여금 음악과 노래를 하게 하는 내용이다.
㉳ 공사치하(公私致賀)1 - 감사 인사를 하는 내용으로 마을이나 사찰, 개인집 등등을 구분하여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근래의 절걸립 관련 내용은 평택농악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평택농악의 故최은창 상쇠를 비롯한 초창기 회원들은 〈난장굿〉과 〈절걸립〉, 〈촌걸립〉 등을 하는 전문연희자들이었다. 〈절걸립〉은 연희보다 고사염불을 주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인원 구성이 간단했다. 대개 7~8명 정도로 화주 1명, 쇠 1명, 장고 1명, 징 1명, 북 1명, 법고 2명, 탁자 1명으로 구성되었다. 걸립을 시작하면 먼저 경찰서에 들러 권선문을 보여주며 허락을 받고, 상가나 가정을 돌며 집돌이를 하였다. 집돌이는 간단히 선고사와 뒷염불(고사소리)로 구성되었다. 집돌이를 한 후에는 근처의 여각에서 숙박하며 당일 모금한 돈을 역할에 따라 분배하였다.
○ 마을 걸립의 연행 내용
마을 걸립굿은 〈절걸립〉에 비해 예능적인 요소가 부각되고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마을마다 예능의 절차와 구성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 ‘입동 허락 – 당산굿 – 우물굿 – 집돌이 – 판굿 - 당산굿’의 순서로 진행한다. 걸립패가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먼저 주민들의 허락을 받고, 마을에서 중요시하는 당산과 우물에 인사를 한 다음 가가호호를 돌며 마당밟이와 같은 방식으로 농악을 연행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부잣집 마당이나 마을 공터에서 〈판굿〉을 치고, 걸립굿을 마무리하면서 마을 당산에 인사를 한 후 마을을 빠져나온다.
마을 단위 걸립굿의 경우 영동과 경상지역은 순수한 마을의 농악대가 주도하고, 경기ㆍ충청ㆍ전라지역은 전문연희자나 세습무계예인들이 결합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지역에서는 마을을 대상으로 한 걸립을 〈촌걸립〉이라고 하는데, 영험한 산신을 만장 형식의 낭기에 내려받아서 들고 다니기 때문에 〈낭걸립〉이라고도 한다.
평택농악의 경우 걸립을 할 때 어떤 것이든 신격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인근지역에서 영험이 뛰어다다는 산신을 낭기로 내려받는 ‘낭받기’를 첫 번째 순서로 진행하였다. 이어서 마을에 들어서서 허락을 받은 후 본격적인 걸립을 하였다. 걸립굿의 순서는 ‘낭받기-걸립 허락받기-당굿-우물굿-집돌이-밤굿-기고사’ 순으로 진행한다.
남원농악의 경우 정초에 마을 공동경비 마련을 위해 인근 마을을 돌며 걸립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마을에서 걸립패의 예능을 판단한 후 허락을 하기 때문에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기량을 과시하는 문굿을 연행하였다. 걸립굿의 순서는 ‘문굿-들당산굿-마당밟이굿-판굿-날당산굿’의 순으로 진행한다.
고창농악의 경우 세습무계 예인들이 마을 농악대와 결합하여 지역을 순회하며 걸립을 하였다. 세습무계 예인들의 예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 어떤 절차보다 마을의 허락을 받는 문굿의 절차가 발달하였다. 〈문굿〉의 절차를 간단히 제시하면, ‘나발 3초–울령수ㆍ문안인사-좌창ㆍ우창의 협의-한마당 삼채-치배 입장과 춤굿-문 앞 정렬-아군ㆍ적군힘겨루기-개인놀이-지와밟기-콩등지기-투전치기-밀치기-강강술래-주인주인 문여소-문열기-한마당’의 순으로 진행한다.
걸립굿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는 ‘입동 허락’이다. 마을에서 걸립패의 격식과 예능을 시험하기 때문이다. 걸립굿이 발달한 전라도에서는 걸립패를 받아들일 때 먼저 수수께끼 방식으로 지혜와 격식을 시험하고, 이를 통과하면 두 개의 영기로 문을 세워 〈문굿〉을 치도록 한다. 수수께끼는 입사식으로서 예능뿐만 아니라 지식을 시험하는 사례가 많았다. 임실 필봉농악에서는 까치 작(鵲)자를 써서 내놓으면 치배들이 까치걸음으로 굿을 치며 마을로 들어갔다고 한다. 곡성 죽동농악에서는 대나무통에 꾀꼬리 앵(鶯)자를 써서 넣고 양쪽을 솜으로 막아놓은 것을 받아고 나서 걸립패가 이를 해석하며 농악을 쳤다고 한다. 간단히 언급하면 “걸립패가 동구 밖 버드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버드나무에는 꾀꼬리가 드는 것.”이고, “솜으로 대롱을 어둡게 막았으니 ‘너희가 꾀꼬리이니 어둡기 전에 치고 들어와라.’”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1) 목차에는 ‘공사치하(公私致賀)’로 기재되어 있고, 실제 본문에는 ‘공무치하(公務致賀)’로 기재되어 있다.
송기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