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삼천포농악은 전문적인 연희를 매개로 생계를 유지해 온 조선 말기 솟대쟁이패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솟대쟁이패란 소도패(蘇塗牌)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 말기(19세 무렵) 민간사회에서 형성된 유랑 연예집단 중 하나다. 솟대쟁이패란 명칭은 길이가 10여 척(약 3미터)의 장대 위에 올라타서 노는 〈솟대놀이〉가 주요 종목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장대를 타고 노는 놀이 외에도 〈줄타기(어름)〉ㆍ〈땅재주(살판)〉ㆍ〈접시돌리기(버나)〉ㆍ〈요술(얼른)〉 등의 다양한 종목의 연희를 전국을 유랑하며 연행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들의 활동 근거지 중 하나가 진주다. 조선 시대 행정구역인 진주목이 자리했던 진주는 큰 장시가 5일마다 서는 곳으로 솟대쟁이패를 비롯해 사당패, 농악패, 오광대패 등이 몰려들었고 사천, 삼천포, 남해, 하동 등 서부 경남 지역에서 모여든 뜬패들이 어울려 활동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전문적인 수준의 다양한 전통 연희가 이 지역에 전파되고, 본연의 지역 토착 문화와도 상호작용을 거듭하면서 현재의 진주삼천포농악이 형성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제공하였다.
본래 진주삼천포농악은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농악12차'의 이름으로 지칭되었고, 이에 지역 명칭이 덧붙여져 '《진주농악12차》', '《진주농악》', ‘《삼천포농악》’, '《진주12차5방진농악》' 또는 '《진주12차8진법5방진36가락농악》', '《삼천포12차36가락농악》' 등으로 지역과 보유 내용을 변별하는 여러 명칭으로 불렸다. 1981년 이후 진주와 삼천포를 아울러 활동한 주요 인물들의 활동 배경과 당시의 전승 현황을 참고하여 지역통합적 명칭인 ‘진주삼천포농악’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주삼천포농악의 전승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무형문화재 지정 이전까지의 시기로써 진주와 삼천포로 지역으로 구분된 권역에서 각자 전승과 연행활동이 이지던 때이다. 진주농악은 과거 진주에 위치한 큰 장시를 중심으로 솟대쟁이패를 비롯한 다양한 민속 연희패들이 활약한 문화 전통이 일찍이 형성되어 왔었고, 전문적인 기량을 선보이는 이들의 연행이 지역 일대에 영향을 끼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역의 민속문화 전통과 상호 작용하며 잘 다듬어진 《판굿》 공연 양식을 이루었으며, 이를 황일백(黃日白, 1896~1976)과 같은 뛰어난 전문 농악인이 계승하면서 차츰 진주농악의 위세를 확장시켰다. 진주농악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그리고 1960년대 중반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동일한 맥락을 유지하며 진주 지역 문화의 토대를 형성해 오고 있었다. 삼천포농악은 본디 송포마을을 중심으로 이어 온 마을농악으로써, 《판굿》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 《제사굿》, 《두레굿》 등이 문화 전통으로 이어져 왔으나 현재 진주삼천포농악으로 통합되어 있는 삼천포농악은 해방 이후 활성화 된 농악경연대회 출전을 위해 문백윤 상쇠 중심으로 대회용 농악으로 재구성한 판제로서 군사놀이를 모방한 싸움굿의 성격을 띠고 있다.
둘째, 무형문화재 지정 초기부터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황일백ㆍ문백윤(文伯允, 1910~1981) 두 상쇠의 타계 전까지로 1960년대~1970년대 사이의 전승 상황이다. 진주삼천포농악은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이때 진주의 황일백과 삼천포의 문백윤이 동시에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두 상쇠의 공통적인 판제와 내용적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한 ‘12차 36가락’의 판제가 ‘농악12차’란 공식 명칭으로 정리되었다.
셋째, 1980년대 들어 전승 세대교체와 함께 몇 차례에 거쳐 새로운 명칭이 정립되는 과정을 거치며 두 지역 농악이 실질적으로 통합을 이룬 단계이다. 농악12차란 문화재 지정 시초의 명칭은 1985년에는 ‘진주농악12차’로 변경되었고, 1986년에는 ‘진주농악’으로 재차 변경되기에 이른다. 본디 진주와 삼천포 두 지역을 대표하는 상쇠의 수용한 판제로 문화재 지정을 받았었던 내력이 있었으므로 진주를 특정한 명칭이 일정 기간 지역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두 상쇠의 문하에서 공통 수학한 전승세대 문화재 전승 조직(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보존단체)의 핵심 인물이 되어 활약하는 상황과 1993년 '진주삼천포농악'으로 명칭을 조정함으로써 갈등은 해소하고 전대의 판제와 가락을 재정비하는 등, 전승 기반의 안정 속에서 활발한 전승이 이뤄지고 있다.
각 굿거리의 주요 연행 내용과 가락 구성 등은 아래 <표 1>과 같다.
| 구분 | 내용 | 가락구성 | 연행 내용 | 의미 풀이 |
| 1차 | 오방진풀이/덕석말이 | 진풀이 가락/자진모리 가락 | 오방(동ㆍ서ㆍ남ㆍ북ㆍ중앙)에 방울진 형태의 진을 쌓고 푸는 과정을 전개 | 적진 또는 사위 경계 |
| 2차 | 얼림굿 | 느린 덧배기 가락 홑다드래기 가락 겹다드래기 가락 먹다드래기 가락 |
느린 덧배기가락으로 시작하여 점차 빠른 속도의 다드래기 가락 연주로 옮겨가며 신명 표출 | 경계심 이완 |
| 3차 | 덧배기 벅구놀음 | 덧배기벅구놀이 가락 | 전원이 상모를 돌리고 연풍대를 돌며 벅구잽이는 전원은 자반뒤집기 연행 | 사기 진작, 오락 |
| 4차 | 길군악/질군악 | 길군악 가락 반길군악 가락 외연풍대 가락 |
가락에 맞춰 운풍대(자진모리가락에 맞춰 경쾌한 춤과 뛰놀기)와 외풍대(연풍대의 반대 방향으로 도는 행위) 연행 | |
| 5차 | 영산다드래기 |
영산다드래기 가락 우물놀이 가락 잔다드래기 가락 홑다드래기 가락 먹다드래기 가락 |
상쇠, 목쇠, 중쇠, 끝쇠들은 판 중앙에서 놀고, 소고수들이 치배들 사이를 오가며 노는 마당 | |
| 6차 | 먹벅구놀이 |
먹벅구놀이 가락 덧배기 가락 |
전원이 상모를 돌리고 연풍대로 돌며 노는 놀음 | |
| 7차 | 등맞이굿/품앗이굿 |
빠른 굿거리 가락 용개통통 가락 다드래기 가락 먹다드래기 가락 |
빠른 굿거리 가락으로 치배들이 나비춤을 추며 놀고 중앙에서 쇠들이 등을 맞대고 앉았다가 일어서며 용개통통 가락으로 이어진다. 이때 쇠잡이들은 쇠를 판 중앙에 놓고 가락에 맞춰 춤을 추다가 다시 쇠를 들고 빠른 먹다드래기 가락으로 발전하여 몸을 옆으로 하여 돌면서 노는 마당 | |
| 8차 | 앉은 벅구놀이 | 앉은벅구놀이 가락 | 점호 | |
| 9차 | 호호굿/점호굿 |
호호굿 가락 진풀이 가락 |
호호당당: 빠른 길군악 가락에 맞춰 치배가 연풍대로 돌며 "호호"(외침소리)와 "당당"(악기소리)을 세 번 반복 | |
| 10차 | 개인 영산놀이 |
반주가락 설장구가락 |
벅구잽이→장구잽이→북잽이→열두발상모 잽이 순서로 개인 재능기 연행 | |
| 11차 | 별굿놀이/별달거리 |
홑다드래기 가락 먹다드래기 가락 |
다드래기 가락에 맞춰 상쇠와 나머지 치배들이 사설 주고 받기 | 장수(將帥) 추모 |
| 12차 | 허튼굿/흩음굿 | 다드래기 가락 | 상쇠의 "헤이라 각기 사방 헤이라"라는 신호에 따라 각 치배들이 신나게 놀다가 마치는 일종의 뒷풀이 마당 | 종결 및 해산 |
진주삼천포농악의 치배[역할]는 기잽이[농기수 한 명ㆍ영기수 두 명], 나팔수, 호적수[태평소 연주자], 쇠잽이(상쇠ㆍ목쇠ㆍ끝쇠), 징잽이(수징ㆍ목징ㆍ끝징), 북잽이(수북ㆍ목북ㆍㆍㆍ끝북), 장구잽이[수장구ㆍ목장구…끝장구], 벅구잽이[수벅구ㆍ목벅구ㆍ삼벅구ㆍ사벅구…끝벅구]로 구성하고, 잡색[뒷치배]은 포수ㆍ집사ㆍ양반ㆍ가장녀ㆍ허드레광대로 구성한다. 잡색을 제외한 치배 전원이 머리 위에 전립(戰笠, 벙거지)을 쓴다. 기치(旗幟)는 용기 두 기, 농기 한 기, 영기 두 기를 편성함으로써 총 다섯 명의 기잽이를 둔다. 쇠잽이와 징잽이는 보통 세 명, 북잽이와 장구잽이는 다섯 명, 벅구수는 열두 명으로 편성하는데 공연의 규모에 따라 조금씩 유동적이다. 잡색은 총 다섯 명의 역할로 편성하는데 《판굿》에서 잡색 역할이 주도하는 굿거리는 없고 악기를 치는 앞치배에 비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판의 안팎을 드나들며 자율적으로 공연에 참여한다.
양옥경(梁玉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