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전승되어 오는 탈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전승되어 온 탈춤이다. 10년에 한 번씩 정월에 혹은 신의 계시에 따라 임시로 벌어졌던 별신굿에서 연행되었다. 하회별신굿 전체는 〈강신(降神)〉,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ㆍ선비마당〉, 〈당제(堂祭)〉, 〈혼례마당〉, 〈신방마당〉, 〈헛천거리굿〉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여기서 좁게는 <무동마당>에서 <양반·선비마당>까지, 넓게는 별신굿 그 자체가 하회별신굿탈놀이라 할 수 있다.
전승자들은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형성 시기를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전하는 하회탈의 제작 시기가 고려시대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허도령의 하회탈 제작 전설 또한 근거로 내세운다. 고려 중엽까지 허씨가 하회마을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그 정황상 그러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양반과 선비의 대화 가운데 문하시중(門下侍中)과 같은 고려시대의 관직명이 등장한다는 점도 하회별신굿탈놀이의 고려시대 형성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 개요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굿에서 벌어졌다. 경상도에서는 이러한 마을굿을 별신굿이라 불렀으니, 하회별신굿은 하회마을굿이라는 의미이다. 큰 마을굿은 비용이 많이 들어서 매년 하지는 못했고 10년에 한 번씩 또는 신의 계시에 따라 마을굿을 크게 했는데, 이것이 별신굿이다. 별신굿은 섣달그믐날이나 정월 초이튿날에 마을 사람들 주도로 시작된다. 그리고 정월 열사흗날까지 마을 곳곳에서 흥겨운 탈놀이가 이어진다. 그리고 정월대보름이 되면 엄숙한 제의를 지내고 무당들이 중심이 되어 별신굿을 마무리하는 절차가 이어진다.
○ 절차와 구성
《하회별신굿》은 당맞이 행렬로 시작된다. 섣달그믐에 산주, 서낭대를 멘 광대와 그 외의 연희자들이 풍물 연주와 함께 서낭당에 올라가서 당 안으로 들어가 내림대를 세우고 대내림을 받는 과정이 진행된 후 다시 마을로 내려온다.
마을에 도착한 후에는 각시광대의 춤이 이어지고, 그동안 구경꾼들에게 돈을 받는 걸립이 이어진다. 이 과정을 〈강신마당〉, 〈무동마당〉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후 탈을 쓴 연희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탈놀이가 진행되는데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ㆍ선비마당〉, 〈당제(堂祭)〉, 〈혼례마당〉, 〈신방마당〉, 〈헛천거리굿〉의 순서로 구성된다. 〈주지마당〉은 암수지 숫주지 둘의 싸움이 핵심이 되는 내용인데 주지탈에 꿩의 털을 꽂은 것 때문에 주지가 아닌 꿩으로 의식해서 꿩싸움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부분을 벽사적인 성격이 있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꿩이 등장한다는 점은 다른 지역 탈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부분이다. 백정이 등장해서 도끼춤을 추는 〈백정마당〉 역시 한국의 탈춤 중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만 나오는 부분이다. 그 외에 영감과 할미의 청어를 두고 다투는 장면이 나오는 〈할미마당〉, 양반과 선비의 갈등, 그리고 이들에 대한 초랭이의 폭로가 이어지는 〈양반ㆍ선비마당〉 등은 산대극 계통 또는 본산대놀이 계통 탈춤의 등장인물 및 내용 전개와도 공통성을 지닌다.
본래 <무동마당>부터 <양반·선비마당>까지의 내용으로 구성된 탈놀이는 정월 초이틀부터 정월 열사흗날까지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정월대보름이 되면 아침부터 서낭당에서 <당제>를 지낸다. 이어서 제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동네 입구의 정갈한 밭에서 <혼례마당>과 <신방마당>을 비밀스럽게 치른다. <혼례마당>과 <신방마당>은 열일곱 처녀인 서낭신을 위로하기 위해 치르는 것이라 한다.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현재는 이런 내용이 탈놀이 판에서 공개적으로 연행된다. 본래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마지막은 <허천거리굿>으로 맺어졌다. 이는 엄밀히 보자면 하회별신굿의 마지막 굿거리라 할 수 있다. <허천거리굿>은 별신굿을 벌이는 동안 마을에 들어온 잡귀 잡신을 몰아내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악·가·무 특징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춤사위는 명칭과 구체적인 동작이 분명하지 않다. 경북 내륙지역에서 연행되었던 〈몽두리춤〉(〈덧배기춤〉)과 여성의 오금춤이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춤사위로 언급된 바 있는데, 예능보유자 이상호(1945~)는 백정춤, 중춤, 길놀이춤으로 〈몽두리춤〉을 추고 각시와 부네가 〈오금춤〉을 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하회별신굿》의 춤사위 반주 음악으로는 꽹과리, 징, 북 등 타악기로 연주하는 굿거리장단, 세마치장단이 연주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굿거리장단이 주로 사용되었다. 굿거리장단은 인물이 등장할 때 연주하는 훈련굿거리, 춤을 출 때 연주하는 자진굿거리 등으로 구분된다. 오늘날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춤사위는 주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서 추지만, 세마치장단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희자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할미마당〉에서 베틀을 앞에 두고 할미광대가 〈베틀가〉를 부르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특정 노랫말과 선율이 정해진 것은 아니며, 연희자가 상황에 맞게 적당한 노래를 골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 역사 변천 및 현황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전통적인 《마을굿》의 형태로 연행된 것은 1928년이 마지막이었다. 1940년에는 조사를 위해 방문한 송석하의 요청으로 임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본격적으로 재현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1973년에 창립된 안동하회가면극연구회에서 복원 공연을 시도했으며, 1978년에는 1928년 마지막 별신굿 연행에 참여했던 연희자를 찾아내어 탈놀이의 실체에 근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980년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하회마을에 자리한 하회별신굿보존회가 중심이 되어 탈놀이 보전에 애를 쓰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굿》의 절차에 포함되어 연행되었던 것으로 《마을굿》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탈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가면을 만드는 기술이나 가면의 예술성이 뛰어나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오랜 역사성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하회별신굿탈놀이의 가면이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언제부터 정립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경우, 예를 들면 《강릉단오제》에는 탈놀이가 여러 종목의 하나로 연행될 뿐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하회별신굿탈놀이의 경우는 탈놀이 자체가 별신굿이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는 차이가 있다.
국가무형유산(1980)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2022)
국립문화재연구소, 『하회별신굿탈놀이』, 도서출판피아, 2006. 서연호, 『서낭굿탈놀이』, 열화당, 1991. 허용호 외, 『탈춤』, 한국문화재재단, 2019.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하회별신굿탈놀이연희본』‚ 도서출판 한빛‚ 2007.
임혜정(林慧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