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두의(蒙頭衣), 무루깨, 몽도리, 황초삼(黃綃衫)
조선 시대 궁중 나인과 여령이 착용했던 황색 포(袍).
몽두리는 서민이나 천인계급의 예복(禮服)이었으며 무당이 만신을 모시는 거리에서도 착용되었는데, 조선 시대 궁중에서 정재(呈才)를 할 때 여기(女妓)가 입던 무의(舞衣)로도 정의되고 있다. 이는 조선 시대 몽두리가 여자의 포로 다양하게 착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 사헌부에 부녀복 제도에 관한 상소 내용에 ‘蒙頭衣’가 나타난다. 「태종실록(太宗實錄)」 권23에는 사헌부가 여자들의 옷차림이 사치하고 존비(尊卑)의 구별이 없음을 지적하여 상소한 글로 ‘몽두리[蒙頭衣]에는 비단의 사용을 금하며 너울ㆍ버선ㆍ치마에도 금한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는 사헌부에서는 4품 이상의 정처에게는 노의를, 5품 이하 정처에게는 장삼을, 서인의 부녀나 상기(上妓), 천녀(賤女)등에게는 몽두리를 입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몽두리는 서민의 부인이하 천녀들이 입었으나 서민 부녀자의 몽두리에 비단사용을 금하고 저포로 사용하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 태종실록(太宗實錄) 卷 23 12年에 사헌부에 부녀복제도에 관한 상소의 내용 중 몽두리에 관련된 내용이 처음 나타난다.

※ 서울 굿의 각 거리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한 무당내력 중 만신말명 거리에서 무녀가 황색 몽두리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 무신진찬의궤에 나타난 여령들의 검기무 복식에서 쾌자 아래 황색 소매 긴 길이의 몽두리를 착용하고 있다.
○ 쓰임 및 용도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포(袍)제를 달리하였는데, 몽두리는 신분이 낮은 서민이나 신분이 낮은 중첩들이 착용했다. 몽두리는 용도에 따라 궁중 여관의 상복(上服)용 몽두리, 궁중기행나인의 상복용 몽두리, 서민의 상복용 몽두리, 궁중 정재용 여령의 몽두리, 무복으로 사용되는 몽두리로 분류된다.
○ 구조 및 형태
몽두리의 형태는 대금형 맞깃으로 홍색, 황색, 소색 등으로 제작되었으며, 길지 않은 소매가 달려있다. 현종의 후궁인 경빈의 『순화궁가례시절차(順和宮嘉禮時節次)』에 남겨진 기록 중 가례절차에 참여한 기행나인 4인의 복식으로 홍몽도리 1쌍과 황몽도리 1쌍을 착용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해 궁중 기행나인이 착용한 몽두리는 홍색이나 황색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관(女官)은 상복으로 소색 몽두리를 착용하였다. 조선 후기 궁중의 진연이나 진찬을 기록한 각종 의궤에는 정재 여령들이 착용하고 있는 황색 포는 황초삼, 몽두리, 몽도리 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임진)진찬의궤』나 『(임인)진연의궤』에 나타난 자료를 통해 몽두리의 형태가 황색의 깃에 흰색 동정이 부착되어있고, 어깨에는 녹색, 홍색, 황색, 홍색, 청색이 차례로 배열된 장식선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전통 무복(巫服)으로 착용된 몽두리의 모습은 조선 후기 굿의 굿거리를 기록한 자료인 『무당내력』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굿에서 몽두리는 만신말명거리에서 착용되는 복식으로 무녀의 조상을 상징한다. 국말 무녀의 몽두리 가운데 좌임의 황색 두루마기를 몽두리로 지칭한 사례를 통해 몽두리의 색이 황색이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 역사적 변천
몽두리에 대한 기록으로는 궁중발기에 현종의 후궁인 경빈의 『순화궁가례시절차(順和宮嘉禮時節次)』가 있으며, 이 행사에 참여하는 나인들의 옷 중에 기행나인 4인의 복식으로 홍몽도리1쌍과 황몽도리 1쌍 이라는 언문의 기록이 있다. 몽두리 유물은 대금형과 교임형이 남아 있는데, 초기에는 대금형이다가 차츰 교임형 포(袍)제로 변화되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 남아있는 무복 몽두리 유물을 살펴보면 창덕궁 소장 몽두리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몽두리가 있다. 창덕궁 소장 몽두리는 황색 명주로 구성된 홑옷이며 깃의 형태가 좌우 모두 섶 안쪽으로 부착된 형태를 보인다. 깃머리의 형태는 깃의 양끝이 굴려진 둥그레 깃이다. 또한 깃 둘레와 어깨에 잣물림 장식이 부착되어있다.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몽두리는 188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앞 중심에서 여며지는 맞깃에 흰색 동정이 달려 있다. 섶은 없고 앞 중심, 뒷 중심, 양 옆선에 트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깃 주위에 잣물림 장식이 되어있고, 소매는 직선의 착수(窄袖)형이다. 가슴에는 홍색의 대를 둘러 맨 형태이다. 조선후기 여령은 정재를 출 때 몽두리를 착용했으며, 각종 의궤에 황초삼(黃綃衫)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1795)에 맨 처음 보이며, 화관(花冠), 홍초상(紅綃裳), 한삼과, 수대(繡帶)와 함께 황초삼을 착용했다. 현재에도 궁중 정재를 출 때 몽두리는 착용하며, 무당이 굿을 할 때 굿거리를 상징하는 무복으로 착용되고 있다.
『壬辰進饌儀軌』, (券二 樂器風物). 『壬寅進宴儀軌』, (券三 樂器風物).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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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듬(裵리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