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大袖), 대의(大衣), 불사장삼
① 상의와 하의가 연결되어 있고 소매가 긴 직령교임의 포(袍). ② 고려시대부터 조선전기까지 여기가 곡연(曲宴) 등에서 정재를 출 때 착용했던 겉옷. ③ 조선시대 왕실과 양반층 여성이 착용한 예복.
장삼은 불교 복식으로 스님이 착용하는 승복이지만, 조선전기의 궁중 정재 복식, 왕실과 양반층 여성이 착용한 예복, 무속의 불사거리, 연희에서 승려로 등장하는 연희자가 착용하는 복식이다. 이와같은 장삼의 용도는 다양하며, 장삼의 형태는 용도에 따라 서로 다르다.
중국에 불교가 유입되었을 때, 기후 조건과 의복 문화의 차이로 인도의 가사는 중국 복식을 토대로 편삼으로 변형되었다. 이 편삼이 장삼의 기원이 되었다.
◌ 용도 승려는 장삼을 승복으로 착용한다. 서울굿에서는 불사거리(佛師거리)에서 무당은 장삼을 착용하고, 전통 연희의 등장인물 중 승려 역할을 하는 연희자가 착용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기는 정재를 추거나 의물을 들 때 흑장삼을 착용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비빈에서 상궁ㆍ내인까지, 보행내인과 본택내인을 제외한 모든 계층에서 예복으로 착용했다. 이와같이 여러 가지 용도로 장삼을 착용했지만, 형태가 다르다. ◌ 형태 승복으로 착용한 장삼은 초기 형태인 직철의 형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조계종 소속 승려가 착용하는 장삼은 소매가 넓은 광수로 소매 안쪽 아래로 트임이 있다. 중국의 직철과 같이 상의와 하의가 연결된 포이다. 현재 표충사에 소장되어있는 조선시대 사명대사가 착용했던 장삼은 무명으로 제작되었다. 상의는 직령교임으로 두루마기 형태이나 하의부분에 8개의 맞주름이 있는 치마의 형태이다. 하지만 현재 태고종 소속 승려가 착용하는 장삼은 한 폭의 소매로 된 장수이며, 허리에 이음선이 없는 우리나라 고유 복식인 두루마기에 가까운 형태이다. 이러한 장삼은 약간씩 형태를 달리하면서 불교에서 승복으로 착용하는 법의의 일종이다. 『악학궤범』 소재 여기가 착용하는 흑장삼은 소매 끝을 걷어 올린 형태인데, 소매통과 걷어올린 부분의 치수가 동일하며, 깃은 단령도 아니고, 직령 도 아니다. 왕실이나 양반층 여성이 착용한 장삼의 형태는 원삼과 비슷하나, 옷과 소매의 길이가 조금 짧다. 조선시대 서울굿에서 굿거리의 내용과 그림을 통해 착용한 무복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무당내력(巫堂來歷)』이다. 책에 그려진 전통무복인 장삼은 하상의 폭이 넓고 길이가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길다. 현재는 연희에서도 상좌, 목중, 먹중, 옴중 노승 등 승려와 관련된 등장인물은 장삼을 착용하는데, 승려가 착용하는 장삼과 형태가 같다. ◌ 역사적 변천 불교에서 승려가 입는 장삼은 인도식 법의(法衣)인 가사에서 변화되고 발전한 것이다. 중국에 불교가 유입되었을 때, 기후 조건과 의복 문화의 차이로 인도의 가사는 중국 복식을 토대로 변형되었는데, 이것이 장삼의 기원 복식인 편삼이다. 편삼은 승기지와 부견의를 꿰매어 붙이고 옷섶을 단 승려가 착용한 옷으로, 상반신을 덮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에 걸친다. 이러한 편삼은 가사를 착용했을 때 가슴이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속옷으로 입었다. 장삼은 상의인 편삼(偏衫)과 하의인 니원승(泥洹僧)을 허리에서 연결하여 구성되어 있다. 고려시대는 편삼과 치마[裳]의 착용, 장삼의 착용이 모두 나타나는 시기이다.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을 보면 국사(國師), 삼중화상대사(三重和尙大師)는 긴소매의 편삼과 자색 치마를 착용하였으며, 아사리대덕(阿闍梨大德)은 짧은 소매의 편삼과 황색 치마를 착용하였다. 가사에는 차등이 있으나 편삼에 치마를 착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여기(女妓)도 장삼을 착용했다. 『고려사』 권71의 악지(樂志)에 의하면, 당악정재 <헌선도>를 추는 여기는 흑삼(黑衫)를 입고 홍대(紅帶)를 두른다고 했다. 또한 세종실록의 1445년(세종 27) 기록에는, 고려시대 기생은 황색 장삼을 착용하였으나, 이를 본 사신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모두 검정색 장삼으로 고쳐 착용하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악학궤범』 권2에 의하면 조선전기 곡연(曲宴), 무과전시(武科殿試), 관사(觀射), 관나(觀儺), 사신동궁연(使臣東宮宴) 등 각 연향과, 주봉배(晝奉盃), 유관(遊觀), 사악(賜樂), 예조후대왜연(禮曹厚待倭宴), 개성부천사영명(開城府天使迎命)의 연향에서 모두 여기(女妓)들은 흑장삼을 착용했고, 이 때 남저고리[藍赤古里]를 입고, 칠보잠에 금차(金釵)를 꽂고, 홍대(紅帶)를 두르고, 백말군(白袜裙)을 입고 단혜아(段鞋兒)를 신었다. 대비전 진풍전과 중궁 예연에서는 전정의장(殿庭儀仗)을 드는 여기가 잡식을 하고 흑장삼을 착용했다. 조선후기에는 흑장삼을 착용하지 않았다. 장삼은 조선시대의 역대 가례 때 상궁에서 기행나인까지 다양한 신분층이 예복으로도 착용했고, 비빈의 흉배장삼과 겹장삼, 상궁의 아청단장삼, 기행내인의 홍장삼과 황장삼, 시녀의 흑장삼 등 종류가 다양했다.
장삼은 불교 복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났고,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여기가 착용했던 장삼은 현재는 전승이 단절되었지만, 불교 승려의 법복으로 사용되는 장삼은 현재도 전승되고 있고, 연희복식과 무속복식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무당내력』 『선화봉사고려도경』 『조선왕조실록』
김영숙, 『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예술사전』, 평사리, 2016. 김은정, 「무복장삼의 고찰」, 『비교민속학』 23, 2003. 김은정, 「승복과 무복으로 착용되는 長衫에 관한 연구」, 『대한가정학회지』 42/2, 2004. 백영자, 「가례도감을 통해 본 법복의 부수복식과 의대에 관한 연구」, 『한국의류학회지』 2/1, 1978. 박춘화, 「한국 승려 장삼에 관한 연구-근현대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김은정(金垠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