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남성과 여성이 외출할 때 착용한 옆트임이나 뒤트임이 없는 형태의 겉옷.
두루마기는 저고리 위에 입는 겉옷으로, 저고리가 길어진 모양이다. 곧은 깃으로 섶과 동정이 있고, 긴고름과 짧은고름이 달려 교임 형태로 여며 입는다. 겨드랑이 밑에 삼각무가 있으며 소매는 좁고 옆트임과 뒷트임이 없이 길이는 무릎과 발목 사이이다. 조선 시대 고종의 갑신의제개혁 이후 현재까지 남녀노소 공용의 옷으로 착용되고 있으며 한국 복식의 대표적인 겉옷이다.
두루마기라는 용어는 김동욱(金東旭, 1922~1990)은 『한국복식사연구(韓國服飾史硏究)』를 통해 포(袍)를 뜻하는 몽고어 ‘후루막치/쿠루막치(xurumakči)’에서 나왔다고 하였으며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조선상식 풍속편(朝鮮常識 風俗篇)』에서 ‘주의’와 ‘후리매’는 같은 옷으로 ‘트임이 없이 옷이 사방이 다 막힌 것’, ‘휘둘러 맨다’는 뜻으로 그 유래를 설명하였다. 『영조실록(英祖實錄)』 영조 9년의 “승려(僧侶)라고 일컫는 자가 머리에는 승건(僧巾)과 삿갓을 쓰고 베로 만든 주의(周衣)를 입었으며 짚신을 신었다.”라는 기사가 두루마기[周衣]에 대한 최초 기록이다.
○ 용도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는 조선 중기 상류층에서는 방한용 또는 겉옷의 밑받침 옷으로, 서민 계층에서는 겉옷으로 착용하였다. 고종 갑신의제개혁을 통해 도포, 직령, 창의, 중의등 소매가 넓은 옷은 폐지되고, 소매가 좁은 두루마기로 통일되었다.
○ 형태
두루마기는 저고리가 길어진 형태로 곧은 깃에 섶과 동정이 있고, 긴고름과 짧은 고름이 달려 교임 형태로 여며 입는다. 겨드랑이 밑에 삼각무가 있으며 소매는 좁고 옆트임과 뒷트임이 없이 길이는 무릎과 발목 사이까지 이다. 소매 모양에 따라 소매가 넓은(廣袖) 두루마기와 소매가 좁은(窄袖) 두루마기로 구분할 수 있다.

○ 재질 및 재료
두루마기 제작에 사용한 옷감은 베(布), 단(緞), 궁초(宮綃), 사(紗), 능(綾), 증(繒), 주(紬), 토산명주(土産紬), 면주(綿紬) 등이다. 두루마기의 색은 남색(藍)과 연한 남색(軟藍) 그리고 검정색[黑], 자주색[紫的] 등이 사용되었다.
○ 제작 방법
두루마기는 성별, 연령에 따라 구분되지만, 제작 방법에 따라서도 구분된다. 홑두루마기는 등바대 곁바대를 대고 섶에 다른 단을 대며, 도련, 소맷부리의 단을 꺾어 만든다. 겹두루마기는 겉감과 안감으로 구성된 2겹두루마기와, 겉감, 심감, 안감으로 구성된 3겹두루마기가 있다. 박이두루마기는 박음질 또는 감칠질로 지어 다시 뜯지 않는 두루마기이며, 홑으로 지은 두루마기이다. 백이두루마기는 쌈솔로 박아 지으며 주로 모시나 베 등으로 만들었다. 깨끼두루마기는 여름철에 입는 옷감에 사용되는 봉제 방법으로 제작하는 두루마기이며, 시접을 잘라내어 가는 솔기의 선만 나타나는 곱솔로 바느질한다.

○역사적 변천
『영조실록』의 영조 52년 기사에 영조의 재궁의대(梓宮衣襨)에 남선단협수주의(藍扇殺狹補周衣)와 연남궁초협수주의(軟藍宮補缺袖周衣)를 사용한다는 내용이 있고, 『정조실록』의 정조 24년 기사에서도 정조의 습례(襲禮)에 보라화한단주의(甫羅禾漢緞周衣)를 사용한다는 내용이 있어, 조선 후기의 두루마기 착용에 대해 알 수 있다. 『순조실록』의 순조 30년(1830) 기사에는 사대부(士大夫)가 소매 넓은 주의(周衣)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1895년(고종 32) 4월 5일, 유생들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公私) 예복(禮服) 중에서 답호(褡護)를 없애고, 대궐로 들어 올 때에는 모(帽), 화(靴), 사대(絲帶)를 하며, 주의(周衣)는 관리와 백성들이 똑같이 검은색으로 하라고 했다. 같은 해 8월 10일,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과 조정 관리 이하의 복장 규정을 봉칙(奉勅)하여 반포하였다. 이후 두루마기는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구별 없이 착용할 수 있는 한국 복식의 겉옷으로 자리잡았다.
두루마기는 삼국 시대 고유 포(袍)에서 기원하여 통일신라의 표의(表衣), 고려의 백저포(白苧袍), 조선의 여러 가지 포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착용되는 고유의 겉옷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장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