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래
조선에서 착용한 배자는 명칭의 전래와 형태의 발생 등 방면에서 보면,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송 주자의 『가례(家禮)』가 유입된 이후 이 책에 수록된 ‘배자’라는 옷에 대한 이해와 연관되는 유형이다. 둘째, 명에서 조선 왕비에게 사여한 예복의 일습에 포함된 유형이다. 셋째, 조선에서 자생적으로 발행한 형태에 ‘배자’라는 명칭을 차용한 유형이다.
첫 번째 유형은 『주자가례(朱子家禮)』가 고려말기에 유입된 이후, 유교(儒敎)를 국가이념으로 한 조선이 개국되면서 유교식 가정의례를 수록한 『가례(家禮)』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그 안에 수록된 ‘배자’라는 옷 명칭에 대한 고민을 배경으로 한다. 조선 유학자들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수록된 ‘배자’라는 옷을 조선의 ‘몽두의(蒙頭衣)’에 해당하는 옷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조선의 ‘몽두의’라는 옷은 아직 명확한 형태가 밝혀지지 않아 추후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궁중 무희나 무녀(巫女)가 입었던 ‘황초삼’과 연관되는 옷이기도 하지만, 명료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유형은 명에서 조선 왕비에게 사여한 예복으로 ‘대삼제 적의’가 있는데, 이 예복의 일습에 포함된 옷이다. 붉은색의 무늬가 없는 대삼(大衫)을 겉에 입고, 그 안에 입는 받침옷으로 적계문(翟雞紋)이 있는 청색 배자를 입었다. 이 여자 예복에 일습으로 포함된 배자는 ‘사규오자(四䙆襖子)’라고도 하였다.
세 번째 유형은 조선에서 자생적으로 발행한 남녀노소 공용의 평상복 상의(上衣)에 ‘배자’라는 명칭을 차용하였다. 이 옷은 다른 옷의 위에 덧입는 웃옷이고, 상체에 입는 윗도리이다.
○ 쓰임 및 용도
위에 설명한 세 유형에 따라 예복과 평상복으로 두루 사용되었다.
○ 형태와 재료
첫 번째 유형인 송대의 배자를 조선의 몽두의로 이해한 형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이재(李縡, 1680-1746)의 사례편람(四禮便覽)의 계례(笄禮)에 관한 설명에서 “색이 있는 주(紬)나 견(絹)으로 만들고, 길이는 치마와 나란하며, 깃을 마주보게 하고[對衿], 옆은 트이고, 소매배래는 둥글며, 반소매나 민소매이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 유형인 대삼제 적의 일습인 배자의 형태는 곧은깃 즉 직령(直領)을 오른쪽으로 여며입는 우임(右衽)이다. 깃이 따로 달려있지 않고, 도련까지 연장된 가선이 있다. 가선의 색도 길과 같은 청색이다. 옷 전체에 적계문을 원문(圓紋)으로 표현한다.
세 번째 유형인 조선의 평상복 배자는 형태가 다양하다. 주로 민소매나 반소매의 짧은 옷이다. 깃은 일반 직령(直領: 곧은 깃), 칼깃(깃 끝이 칼처럼 뾰족한 형태)의 직령, 방령(方領: 모난 깃)이 있는데, 방령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방령은 깃을 모나게 한 형태이다. 일반 직령의 사례는 경기도 일영에 있던 〈양천허씨(陽川許氏, 1566~1626)묘〉에서 출토된 민소매 배자에서 확인되고, 칼깃 직령의 사례는 경기도 고양에 있던 〈정응두(丁應斗, 1508~1572)와 부인 은진송씨(恩津宋氏) 합장묘〉에서 출토된 민소매 배자에서 확인된다. 방령 배자는 그 외 대부분의 옷에서 확인된다.
여름용은 모시나 사(紗) 등 얇은 직물로 하고, 겨울용은 단(緞)이나 모직물로 겉감을 하고 안에 융(絨)을 대거나 모피를 댄 털배자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평양지방에서는 털배자를 ‘털등거리’라고도 불렀다.
앞뒤 길이가 같은 경우도 있지만, 앞이 뒤보다 길거나 뒤가 앞보다 긴 경우도 있다. 입을 때는 앞의 양쪽 길을 마주보게 하는 대금(對襟)인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왼쪽 길을 오른쪽 길 위에 덮어서 우임(右衽)으로 입는 경우도 있다.
우임으로 입는 경우, 양쪽 길을 깊게 여미지 않고 앞중심에서 약간만 겹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뒤 길은 펼치면 일자 형태이고, 겨드랑이 아래에 끈을 달아 앞길과 뒷길을 연결하기도 하였다. 겨드랑이 아래의 옆선은 아예 꿰매지 않고 작은 끈으로만 연결한 경우도 있고, 약간만 꿰매어 깊게 트임을 준 경우 등이 있다.
최연우(崔然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