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胡笳)
나무나 갈대 등으로 만들어 세로로 부는 관악기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등장할 만큼 역사가 깊은 관악기로, 주로 행렬과 연향에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갈대잎으로 만든 초적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지공이 있는 나무 악기로 모습이 바뀌었다. 현재는 연주법이 전해지지 않으며, 호드기 등과는 구별이 된다. .
'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국내 기록은 4세기 후반 고구려 안악3호분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행렬도 속 기마 악대에서 연주되는 모습으로 나타나, 중국 한나라의 고취(鼓吹)에 편성된 악기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문헌에 따르면 '가'는 본래 서역에서 유래하여 호가(胡笳)라고도 불렸다. 『사기』, 『태평어람』 등의 기록을 종합하면 초기 형태는 갈대잎을 말아 만들고 지공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송나라 진양의 『악서』에는 갈대나 양의 뼈로 만든 노가, 대호가, 소호가 등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는데, 이 역시 지공이 없는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 형태와 구조
조선 후기 의궤에 나타나는 '가'는 산유자나무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무자진작의궤』(1828)에 따르면 길이는 3척 5촌, 둘레는 4촌 가량이며, 악기의 양 끝이 약간 볼록하게 튀어 나온 형태를 가진다. 지공 수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뉘는데, 1828년 의궤에는 취구 1개에 3개의 지공을 가진 형태가 기록되어 있으나, 20년 뒤인 무신진찬의궤(1848)부터는 지공이 8개인 형태가 나타난다.
○ 악기 연주법 『연산군실록』에 "호가는 혀로만 소리를 내는 까닭에 배우기 어렵다"는 기록이 있어, 혀를 이용한 특별한 주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연주법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 연주악곡 고구려 시대에는 고취(鼓吹)와 같은 행렬 음악에, 신라 시대에는 가무(笳舞)라는 춤의 반주 음악에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순조, 고종 대의 진찬(進饌), 진작(進爵) 등 다양한 궁중 연향에서 등가 악대에 편성되어 연주되었다. 다만 '가'로 연주한 구체적인 악곡명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 역사전 변천 신라 시대에는 『삼국사기』 기록을 통해 '가'의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가무(笳舞)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연산군실록에는 대금이나 피리와는 달리 혀로만 소리를 내어 배우기 어려운 악기로 묘사되며, 악학궤범에서는 갈대잎으로 만드는 초적(草笛)의 일종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궁중 연향에서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형태로 제작되었다. 1828년(순조 28) 의궤에 따르면 ‘가’는 산유자나무로 만든 목관악기로 등장하며, 이후 약 70년간 궁중 연향에서 연주되었다. 1892년(고종 29) 연주를 마지막으로 더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아 현재는 그 명맥이 끊겼다.
가(笳)는 고대 군악(軍樂)에 사용된 단순한 형태에서 조선 후기 궁중 연향의 다채로운 가락을 연주하는 악기로 발전하며 오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음악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지공(指孔)이 없는 초기 형태에서 3공, 8공의 지공을 갖춘 목관악기로 변화·발전한 과정은 한국 관악기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또한 '가'는 단순히 연주되는 도구를 넘어, 시문(詩文)과 같은 문학 작품 속에서 전장의 비장함이나 슬픔을 상징하는 악기로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가'가 국가 의례뿐만 아니라 당대 사람들의 정서를 표현하는 중요한 문화적 상징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연산군실록(燕山君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종묘의궤(宗廟儀軌)』 『무자진작의궤(戊子進爵儀軌)』 『기축진찬의궤(己丑進饌儀軌)』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 『정축진찬의궤(丁丑進饌儀軌)』 『정해진찬의궤(丁亥進饌儀軌)』 『임진진찬의궤(壬辰進饌儀軌)』 『고종신축진찬의궤(高宗辛丑進饌儀軌)』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김성혜, 『신라음악사 연구』, 민속원, 2006. 김성혜, 『신라토우 속의 음악과 춤』, 민속원, 2009. 이진원, 『풀잎을 따서 가락을 빚다: 한국 풀피리 음악 문화』, 채륜, 2010. 정화순, 「삼국사기중의 신라악 재조명」, 청대학술논집 35, 2020 조석연, 「〈한산도가〉의 강적과 호가에 대한 연구」, 『한국음악연구』 56, 2014. 중팡팡(鍾芳芳), 「고구려의 한나라 고취 수용과 그 독자적 특징」, 『정신문화연구』 40/1, 2017.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편, 이혜구, 「안악 제3호분 벽화의 주악도」, 『한국고대음악의 전개 양상』, 2001.
오지혜(吳䝷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