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제8ㆍ9행을 제외한 나머지 8행의 선율을 변개하여 태조의 무공을 노래한 조선 전기 향악곡.
〈납씨가〉는 고려가요로 알려진 10행으로 된 〈청산별곡〉을 고쳐 만든 것으로 조선전기 연산군대 『시용향악보』에 첫번째 수록된 곡이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납씨가〉의 가사는 원래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태조 2년(1393) 지은 송축가(頌祝歌)이며, 선율은 고려가요로 알려진 <청산별곡>을 고쳐 만든 것이다. <청산별곡>을 고쳐 만든 〈납씨가〉는 이후 세종이 지은 <휴명>의 모태가 되었다. 〈납씨가〉는 성종조 『악학궤범(樂學軌範)』 권2, 중종조 『악장가사(樂章歌詞)』 등에 기록과 가사가 전하며, 연산군조 『시용향악보』에는 8행의 악보와 함께 가사 1절이 전한다. 조선 초 신악인 〈휴명〉, 〈총유〉와 개변곡 관계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오선보로 역보된 악보가 출간된 바 있다.
○작품 개요
〈납씨가〉는 본래부터 악장으로 지어졌으며, 궁중 연례악, 큰 기(旗)인 둑(纛)을 위해 행하던 제사인 둑제(纛祭)에서 사용되었다.
악곡은 고려가요로 알려진 10행으로 된 〈청산별곡〉의 제8ㆍ9행을 제외한 나머지 8행의 선율과 일치해서 고려가요를 변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시에 토를 단 것은 이 노래를 〈청산별곡〉의 곡조에 맞추기 위하여 부족한 글자 수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 성종 23년 8월 21일 8번째 술잔을 올릴 때 〈납씨가〉에 맞추어 악장을 새롭게 붙여 등가에서 연주하고, 연산군 11년 1월 18일 〈납씨가〉에 맞추어 새로 악장을 지어 붙여 친제 후 환궁 시 고취악으로 썼다고 한다.
○ 줄거리
〈납씨가〉가사의 내용은 고려 공민왕 때에 원나라의 나하추(納哈出)가 동북 지방에 침입하였을 때 태조가 물리친 무공을 찬양한 것이다. 『시용향악보』에는 전체 4장 중 1장만 실려 있는데, 내용은 납씨(納氏)가 강한 병력을 믿고 고려 동북방에 침입하여 행패가 심하여 저항하기 어려웠음을 노래한 것이다.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납씨가〉의 원문과 해석을 제시하면 다음 〈표 1〉과 같다.
〈표 1〉 『시용향악보』 〈납씨가〉 원문과 해석
원문 |
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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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구성
〈납씨가〉는 평조이며 모두 16정간 1행 체제의 총 8행에 오음약보로 기보되어 있다. 〈납씨가〉의 악조는 평조, 종지음은 하오(下五)이며 종지 형태는 순차적 하행 종지형이다.
〈납씨가〉의 장단은 고요편쌍(鼓搖鞭雙) 중 요(搖)를 사용하지 않으며, 4행 단위로 ‘고(5정간)고(3정간)편(5정간)쌍(3정간)/고(3)편(2)고(3)편(5)쌍(3)/고(5)쌍(2)고(1)편(5)쌍(3)/고(5)편(3)편(3)고(2)쌍(3)’이 반복된다. 〈유림가〉의 장단과 동일하다.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
『대악후보(大樂後譜)』
『삼국유사(三國遺事)』
『세종실록(世宗實錄)』 「악보(樂譜)」
『악장가사(樂章歌詞)』
『악학궤범(樂學軌範)』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윤아영(尹娥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