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별곡〉의 선율은 『대악후보』와 『금합자보』에 기록되어 있는데, 두 악보의 선율은 유사하지만 『대악후보』의 것이 『금합자보』보다 오래된 형태이다.


〈한림별곡〉의 선율은 〈진작사〉의 ‘전강-중강-후강-부엽-대엽-부엽’ 선율을 반으로 줄이고, ‘대엽’을 유사한 선율로 반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진작사〉는 ‘고-편-쌍’의 장구형이 2행을 주기로 반복되었지만, 〈한림별곡〉에서는 ‘고-쌍-쌍-요-편-편-쌍’의 장구형이 1행을 주기로 반복된다. 〈진작〉에 사용된 감탄사 ‘아으’는 〈한림별곡〉에서 제4ㆍ7구를 시작하는 ‘위’로 대체되었고, 제4ㆍ7구의 선율은 ‘하3-하4-하5’로 완전 종지한다. 〈한림별곡〉의 선율은 조선시대 궁중 악장으로 사용된 〈유림가〉ㆍ〈감군은〉ㆍ〈삼성대왕〉의 선율에 영향을 끼쳤다.
〈한림별곡〉은 고려시대 한림원의 연회인 한림연과 고려 한림원의 기능을 담당한 조선시대 예문관의 면신연(免新宴) 등의 연회에서 주로 불렸다. 『태종실록』에는 왕이 예문관에 술과 고기를 내려주며 〈한림별곡〉을 부르면서 즐기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성종대에는 등가 악장 〈경운곡(景運曲)〉을 한림가조(翰林歌調)로 새로 지었다. 중종대에 예문관을 비롯한 사관(四館)의 면신연이 금지되면서 〈한림별곡〉의 연주 공간은 사대부나 지방 관리의 주연(酒筵)이나 기방(妓房)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한림별곡〉은 노랫말이 한시 위주로 되어 있어 『고려사』의 속악 항목에 노랫말이 기록되어 있으나, 우리말[俚語]로 된 노랫말 ‘긔 엇더ᄒᆞ니잇고’를 한자어 ‘하여(何如)’로 표시하고, 나머지 우리말 노랫말은 기록하지 않았다. ‘경기하여(景幾何如)’ 또는 ‘경기(景幾) 엇더ᄒᆞ니잇고’라는 문구를 갖는 경기체가(景幾體歌)는 〈한림별곡〉으로부터 발생하였다.


『악장가사』에는 『고려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한림별곡〉의 노랫말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한림별곡〉은 전체 8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장에서 하나의 장면[景]을 노래한다. 제1장은 당대 문인들, 제2장은 서적, 제3장은 서체와 명필, 제4장은 술, 제5장은 꽃, 제6장은 악기와 풍류, 제7장은 명산과 누각, 제8장은 그네놀이를 노랫말로 표현하였다.
『악장가사』에 수록된 〈한림별곡〉 제1장
(제1구) 원슌문(元淳文) 인노시(仁老詩) 공노ᄉᆞ륙(公老四六) / 유원순의 문장, 이인로의 시, 이공로의 사륙변려문
(제2구) 니졍언(李正言) 딘한림陳翰林 솽운주필(雙韻走筆) / 이규보 진한림의 쌍운을 내어 짤리 짓는 시
(제3구) 튱긔ᄃᆡᄎᆡᆨ(冲基對策) 광균경의(光鈞經義) 량경시부(良鏡詩賦) / 유충기의 대책문, 민광균의 경의 풀이, 김양경의 시와 부
(제4구) 위 시댱(試場)ㅅ 경(景) 긔 엇더ᄒᆞ니잇고 / 아, 시험장의 광경 그것이 어떠합니까
엽(葉)
(제5구) 금학ᄉᆞ(琴學士)의 옥슌문ᄉᆡᆼ(玉笋門生) / 금의의 문하생들
(제6구) 금학ᄉᆞ(琴學士)의 옥슌문ᄉᆡᆼ(玉笋門生) / 금의의 문하생들
(제7구) 위 날조차 몃부니잇고 / 아, 나까지 모두 몇 분입니까
원문 번역은 『악장가사 주해』, 도서출판 다운샘, 2004, 133쪽.
〈한림별곡〉의 각 장은 전절 4구와 ‘엽(葉)’ 부분에 해당하는 후절 3구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1ㆍ2구는 3ㆍ3ㆍ4, 제3구는 4ㆍ4ㆍ4(3ㆍ4장은 예외), 제5구와 제6구는 4ㆍ4의 음수율을 갖고, 제4ㆍ7구는 ‘위(偉)’로 시작되는 노랫말로 되어 있다. 〈한림별곡〉 노랫말의 형식을 따라 〈상대별곡〉ㆍ〈불우헌곡〉 등의 경기체가가 만들어졌다.
강혜진(姜惠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