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용향악보』에 수록된 고려 가요. 현실을 떠나 자연에 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고려가요이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청산별곡〉은 『시용향악보』에 1절의 가사와 악보가, 『악장가사』에 전체 8절의 가사가 실려 있다. 최근에는 오선보로 역보된 악보가 출간된 바 있다.
○ 작품개요
<청산별곡>은 조선초 신악의 모태가 되는 음악이기 때문에 그 이전부터, 즉 고려시대부터 존재하던 곡이며 고려가요 중에서 미학적으로 뛰어난 곡으로 평가되는 곡이다. 하지만 『시용향악보』 이전에는 고려가요라는 증거가 전혀 없으며, 가사 중 ‘어졍지’, ‘사ᄉᆞ미 지ᇝ대예 올아셔 ᄒᆡ금(奚琴)을 혀거를 드로라’ 등의 다수 구절은 명쾌한 해석이 불가능하고, 이 노래의 화자도 남자 혹은 여자로 혹은 다수일 것으로 추정되어 결국 여러 가지면에서 정답은 없는 상황이다. 이 <청산별곡>은 "성종 16년(1485) 9월 14일: 정중(正中, 이정은(李貞恩))이 <청산별곡>을 연주[彈]하고 제1을 마치니[闋], 주지승인 성호(性浩)도 크게 기뻐하여 포도즙을 걸러 내와 우리들의 마른 목을 적셔 주었다."는 내용에 의해 성종때 사림파의 거문고 연주곡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이정은에 관해서는 그의 음률이 매우 뛰어났다는 기록은 여기저기에서 보이며, 심지어는 그의 음률이 세상에 으뜸이어서 그윽이 강개한 곡조를 타면 길 가는 사람도 반드시 울었다고 전한다.
○ 줄거리
<청산별곡>은 산과 바다에서 살겠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산과 바다, 그리고 각종 산과 바다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고, 해금을 켜고, 술을 빚어 마시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 노래는 다양한 산천을 벗하면서 마치 당시 풍경을 그리는 듯하게 노래하고 있다.
○ 형식과 구성
〈청산별곡〉의 가사는 전체 8절로 되어 있고, 각 절은 4구의 본사에 1구의 후렴구가 붙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청산과 바닷가에 살겠다는 것으로 현실 회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청산별곡〉의 1절 원문과 해석을 제시하면 다음 〈표 1〉과 같다.
〈표 1〉 『시용향악보』 <청산별곡>의 원문과 해석
원문 |
해석 |
|---|---|
살어리 살어리라ᄯᅡ. |
살어리 살으리랐다. |
靑山(청산)의 살어리라ᄯᅡ. |
청산에 살으리랐다. |
멀위랑 ᄃᆞ래랑 ᄠᅡ먹고 |
머루랑 다래랑 따먹고, |
靑山의 살어리라다. |
청산에 살으리랐다. |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
〈청산별곡〉은 16정간 6대강의 10행의 길이로 되어 있고, 종지형은 下二-下三-下司-下五로 끝나는 순차적 하행 종지형이다.
〈청산별곡〉의 장단은 매행을 주기로 ‘고(5정간)요(3정간)편(5정간)쌍(3정간)’이 반복되는 형태인데, 이와 같은 장고형은 동보의 〈사모곡〉, 〈서경별곡〉, 〈나례가〉, 〈정석가〉, 〈유구곡〉, 〈귀호곡〉, 〈대왕반〉, 〈삼성대왕〉, 〈대국 1〉, 〈대국 2〉에서도 나타난다.
조선 초 악곡의 창작 방식은 대부분 이전부터 불리던 고려가요를 차용해 음악은 그대로 둔 채 가사만 바꾸거나 혹은 가사와 함께 악곡의 음계 혹은 선법 아니면 둘 다를 바꾸어 개변곡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청산별곡>은 〈납씨가〉, 〈휴명〉과 관계된 곡이다.

청산별곡은 관찬 악보인 『시용향악보』에 수록된 아홉 번째 곡으로, 조선 초 신악 〈납씨가〉, 〈휴명〉과 비교하여 변개법을 보여주는 곡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청산별곡은 조선 초 풍류음악으로 16정간 6대강의 오음약보로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승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악장가사(樂章歌詞)』
윤아영(尹娥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