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개요 <소춘대유희>는 봉상시 내 설치된 실내극장 희대에서 제1차로는 1902년 12월 4일부터 12월 6일까지 약 3일간, 제2차는 이듬해 1월에 개최되었다. 공연시간은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였으며, 400석 규모의 극장 희대의 좌석은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입장권은 상등표는 황지(黃紙, 1원), 중등표는 홍지(紅紙, 70전), 하등표는 청지(靑紙, 50전)이었다.
○ 내용과 구성 <소춘대유희>의 공연 구성에 대해서는 <제국신문> 논설 및 직접 공연을 관람한 프랑스인 고고학자 에밀 부르다레(Emile Bourdaret, ?~?)의 기록을 참고할 수 있다. 이 자료들은 <소춘대유희>의 레퍼토리가 광대, 탈꾼, 소리꾼, 춤꾼, 소리패, 남사당, 땅재주꾼, 기생 등에 의해 연행되었으며, 공연 내용은 이들의 악가무, 연희였음을 알려준다. 특히 <춘향가> 및 <심청가>의 배역을 나눠 공연하는 이른바 ‘분창 형식’의 창극 공연이 선보였고, 이를 여러 날에 나누어 상연하여 관객의 반복 관람을 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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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金珉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