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성요소 및 원리
나례도감은 국왕의 환궁의식이나 사신의 영접의식을 위해 설치하는 나례를 위해 좌우변으로 나누어 준비한 기구이다. 일반적으로 나례도감은 고려시대 이후로 좌우변으로 채붕을 맺고 잡희를 베푸는 형식을 유지했다. 나례도감은 국왕의 부묘 후 환궁시 및 중국 사신을 맞이할때 등에서 설행되는 나례를 준비하는 일을 맡았는데, 나례가 조선국의 중대사이자 물력이 많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담당 관청을 설치하고 때에 맞춰 각종 준비를 담당하였다.
좌변나례와 우변나례는 그 연행 양상에서 차이가 있었는데, 인조 대의 나례와 관련해서 좌변 나례청은 주로 잡상과 재인을 담당하였고, 우변 나례청은 용악과 가무동을 담당하였다. 각각 좌우변 나례청의 준비 및 연행 양상 및 비용을 인조 때를 중심으로 비교, 제시하면 다음 〈표 1〉과 같다.
| 영접의식의 나례(의) | ||
|---|---|---|
| 좌변 나례 | 우변 나례 | |
| 준비 기관 | 군기시(좌변 나례청) | 의금부(우변 나례청) |
| 산대의 명칭 | 잡상, 산대, 잡의, 잡물, 잡희, 정재, 잡상희, 나례, 산붕, (좌)채붕 |
헌가, 용악, 헌가악, (우)채붕 |
| 무대 형태 | 잡상을 세운 산 모양의 의물 | 헌가악을 올린 무대 |
| 연행자 | 잡상담지군, 재인(才人) | 장악원 전악(典樂), 악공(樂工), 악생(樂生), 장악원 악사와 악공, 가무동 |
| 연행양상 | 잡상의 설치 및 잡희(붕희(棚戱)) 연출(사자, 호랑이, 낙타, 소간, 어물, 생선 등 +장간기, 땅재주, 탈춤, 줄타기 등) |
헌가악의 연주 및 가무 공연 |
| (악공의 헌가악 연주+가무동(歌舞童)의 성악과 정재) | ||
| 조성 인력 | 수군 1,300명 | 수군 1,400 |
| 조성 비용 | 헌가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설치물 |
잡상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무대 준비 |
| 연행 목적 | 기쁨(悅) | 위로(慰) |
조선 세종 32년(1450)에 사신을 맞이할 때 도상에서 악을 연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는 기록 및 인조 때 『나례청등록』에 악공은 장악원이 담당하였다는 기록 등에 의해 영접의식에서 좌우변은 산대를 맺고 백희를 베푸는 것과 함께 세종 이후 음악을 쓰는 것 또한 중요한 구성이었다.
| 태종 2년(1402) | (좌변)산대도감 | (우변)산대도감 | |
| 광해군 12년(1575) | 좌변 나례청 | 우변 나례청 | |
| 광해군 13년(1576) | 좌변 나례청 | 우변 나례청 | |
| 인조 3년(1625) | 좌변 나례청 | 우변 나례청 | |
| 인조 4년(1626) | 좌변 나례청 | 우변 나례청 | |
| 인조 12년(1634) | 좌변 나례청(좌나례도감) | 우변 나례청(우나례도감) | |
| ↓ | ↓ | ||
| 숙종 29년(1703) | 좌변 나례도감 | 우변 나례도감 | |
| ↘ | ↙ | ||
| 일원화 | |||
| ↙ | ↘ | ||
| 정조 5년(1781) | 좌변 나례도감 | 우변 나례도감 | |
| 정조 8년(1784) | 좌변 나례도감 | 우변 나례도감 |
양변으로 채붕을 맺고 잡희를 베푸는 것은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지만, 세종 이후 도상에서 잡희 외에 장악원의 음악도 한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좌우변 나례도감은 좌변에서는 영접의 기쁨을, 우변에서는 긴 여정을 위로하는 연행을 베풂으로써 조화로운 영접의식의 구성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윤아영(尹娥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