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 대성아악(大晟雅樂) 유입 이후 아악기 편성 악대에 향악기가 추가되면서 향악교주가 시작되었으며 이 연주 관행은 조선 세종조까지 지속되었다.
내용
고려 1116년(예종 11)에 대성아악이 유입된 후 아악기로 편성된 등가와 헌가가 제례에서 음악을 연주하였다. 이후 악기 편성에 변화가 일어나 초헌에는 여전히 아악기만으로 연주하였으나 아헌과 종헌에는 향악기가 추가 편성되었는데, 『고려사』에서는 이를 향악교주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조선 건국 이후로 이어지다가 1427년(세종 9)에 종묘제례에서 더 이상 향악교주를 하지 않기로 정하면서 제례의 아악기 편성 악대에서 향악기가 제외되었다.
의의 및 가치
아악기로만 편성된 아악 악대에 향악기가 추가되었다는 점에 대하여 아악 제도가 흐트러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처세에 맞게 현실을 반영한 변화라는 평가 또한 내릴 수 있다.
고문헌
『고려사』
『세종실록』
참고자료
송혜진, 「高麗時代 雅樂의 변천과 지속」,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설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5.
송혜진, 「이혜구 박사의 “고려 대성악 변천” 재검토 -대성아악 수용과 변천의 두 단계-」, 한국음악연구 68, 한국국악학회, 2020.
집필자
임영선(林映宣)
검색태그
국악사전의 모든 원고는 공공누리 제2유형입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외에는 출처 표기 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국악사전의 모든 복합매체자료(사진・도판・음원・영상)은 공공누리 제4유형입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외에는 출처 표기 후 사용할 수 있으나,
내용을 변형하거나 재가공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