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조정의례를 행할 때 정전의 뜰인 '전정(殿庭)'에 설치되었던 고취.
'고취(鼓吹)'는 본래 왕의 거동 시 연주하던 주악의 명칭 및 개념이었는데 조선 초 궁중의례가 정비되면서 전정에 배치되는 악대의 명칭에 도입되었다. 특히 조정의례 시 의례의 격을 주악으로 구분하기 위해 '전정헌가(殿庭軒架)'와 짝을 이루어, 격이 높은 의례에서는 전정헌가가, 상대적으로 격이 낮은 의례(조참, 생원진사방방 등)에서는 전정고취가 배치되었다. 전정고취는 기본적으로 아·당·향악기(雅唐鄕樂器) 혼합 편성이나 '전정헌가'에 포함되는 편종(編鐘), 편경(編磬), 축(敔), 어(敔), 건고(建鼓), 응고(應鼓), 삭고(朔鼓) 등이 제외되었다.
‘전정고취’는 전정과 고취를 합친 용어로, 아악기 및 당악기와 향악기를 혼합 구성하여 조정의례용으로 새롭게 고안한 편제이다. 세종 30년 5월 5일 의정부에서 예조의 첩정에 의거하여 전악서의 수를 늘려야 한다고 상신한 내용 중에 이 용어가 처음 보인다. 『세종실록』 「오례」 의 가례서례의 악현도에, 아·당·향악기를 함께 편성하여 전정에 배치하는 ‘조례고취’가 수록되고, 같은 편성이 『국조오례의』에서 ‘고취’로 제시되었으며, 『악학궤범』에서 이를 ‘오례의 고취’로 소개하면서 성종조의 것을 ‘시용 전정고취’라고 하였다.
〇 개요
전정고취는 궁중 의례 악대 중 댓돌 아래 뜰(당하)에 배치되는 '헌가(軒架)'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나, 그 격이 '전정헌가'보다 낮은 것을 드러내기 위한 용악의 방편으로 고안되고 사용되었다.
〇 용도
'전정헌가'가 조하, 문무과방방 등 격이 높은 의례에 사용된 것과 달리, 전정고취는 조참이나 생원진사방방 등 상대적으로 격이 낮거나 일상적인 조정의례에 설치되었다. 역할은 '전정헌가'와 같이 왕의 입·퇴장이나 신하들의 배례 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〇 편성
'전정헌가'와 마찬가지로 아·당·향악기(雅唐鄕樂器)의 혼합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전정헌가'에서 사용되는 편종(編鐘), 편경(編磬), 축(敔), 어(敔), 건고(建鼓), 응고(應鼓), 삭고(朔鼓) 등의 악기가 편성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〇 역사적 변천
세종 대의 조참 고취악은 당악기 중심의 37명으로 편성되었으나 『세종실록』 「오례」에는 아·당·향악기에 노래까지 84명이 ‘조례고취’에 편성되고, 동일한 편성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서례」의 고취’로 이어진다. 『악학궤범(樂學軌範)』의 '시용 전정고취(時用殿庭鼓吹)'는 이전의 편성에서 생(笙)ㆍ우(竽)ㆍ화(和)가 제외되면서 아악기가 없어지고, 노래 8인이 배제되었으며, 장구 18인이 8인으로 축소되는 변화를 보인다, 그 밖의 악기 편성의 기본 틀은 유지하였다. 한편 전정고취는 전후고취(殿後鼓吹)나 전ㆍ후부고취(前ㆍ後部鼓吹)와 달리 현금(玄琴)ㆍ가야금(伽倻琴)ㆍ대쟁(大箏)ㆍ아쟁(牙箏) 등의 현악기도 포함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 전기에는 이혜구의 분석과 같이 ‘향당교주’로서의 성격을 유지한 반면, 『영조실록』에 언급된 전정고취 악기 편성에서는 향악기가 배제되어 향당교주에서 당악으로 변한 양상을 보인다. 『춘관통고(春官通考)』 '금의전정고악도설'에는 영조 대의 것보다 장구 수가 4에서 2로 줄고, 아쟁 등의 현악기가 배제되어 관악화되었다.
전정고취는 '전정헌가'와 더불어 조선 시대 왕실의례의 위격(位格)에 따라 악대 사용이 구분되었음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실례이다.
『세종실록(世宗實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악학궤범(樂學軌範)』
『영조실록(英祖實錄)』
『춘관통고(春官通考)』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임영선(林映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