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에 사용되는 조이름으로 주로 가야금병창제라고도 하는데, 구성음과 선율의 진행은 판소리 평조와 유사하되 평조보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낸다.
석화제는 조선 순조 때의 판소리 명창 김제철과 신만엽 등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1940)에는 명창 김제철에 대해 “특히 석화제(伽倻琴竝唱제 近似)를 잘 불렀다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김제철과 동시대 명창인 신만엽에 대해서는 “斜風細雨申萬葉(사풍세우신만엽)”이라 칭하고 “歌調(가조)가 軟美浮輕(연미부경)하여 時人(시인)이 斜風細雨(사풍세우)의 稱號(칭호)를 주었는지 모르거니와 그 聲望(성망)이 一代(일대)를 風靡(풍미)하였는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궁가》 중 〈소지노화〉 대목을 사풍세우 신만엽의 더늠이라 하며, 후대의 명창들도 이 대목을 석화제라 이른다. 또한 가야금산조 명인 함동정월은 자신의 가야금산조 ‘중중모리’ 제3악장을 석화제(사풍세우)라 일렀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함동정월류 가야금산조의 석화제 대목은 선율의 구성음이 ‘당, 동, 징, 땅, 지’로, 이는 서양의 계명으로 해석하면 ‘sol-la-do′-re′-mi′(fa′)’로 해석할 수 있으며, 종지 선율에서 종지음은 ‘징(do′)’으로 이 음이 중심음 ‘청’이며, ‘당(sol)’을 요성하고, ‘땅(re′)’을 퇴성하거나 가늘게 떨어 준다고 보았다. 《수궁가》 중 〈소지노화〉 대목도 이와 동일한 구성음과 선율 진행ㆍ시김새의 특징을 보이는데, 이는 판소리 평조의 특징과도 동일하다. 그러나 석화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아직 미진한 상태이며, 판소리 평조가 화평한 분위기인데 비하여 석화제는 보다 밝고 경쾌한 느낌을 갖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선법적 차이보다는 발성과 시김새의 구체적인 표현에서 오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창극사』에 석화제를 석화제를 가야금병창제와 유사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판소리 석화제와 가야금병창제의 관계에 대해서는, 판소리 석화제 대목이 가야금병창으로 연행하기에 적합하여 주로 가야금병창으로 불린 것인지, 가야금병창의 음악 특징을 판소리에 도입한 것이 판소리 석화제인지, 그 선후 관계를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조선 순조 때의 판소리 명창인 김제철과 신만엽의 소리제가 석화제라고 알려져 있으며, 판소리에 비하여 가야금병창이 등장한 시기가 매우 늦고, 병창이 유행하였던 시기가 주로 20세기 전반 무렵인 점 등을 상기하여 보면, 판소리 대목 중에서 비교적 짧으며 경쾌한 석화제 대목이 가야금병창으로 주로 연행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판소리 중 가야금병창으로 주로 연행되는 대목들이 있으되, 오늘날에는 가야금병창으로 판소리 전바탕을 공연하는 경우도 있어, 점차 가야금병창으로 연행되는 대목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성애순 채보, 『가야금 산조: 최옥산류』, 은하출판사, 1986. 정노식, 『조선창극사』, 조선일보사출판사, 1940. 이보형, 「고음반에 제시된 판소리 명창제 더늠」, 『한국음반학』 1, 1991. 이보형, 「판소리와 산조에서 우조와 평조 연구」, 『국립민속국악원논문집』 1, 2001. 이윤경, 「‘석화제’ 가락비교 연구 : 판소리, 가야금병창, 가야금산조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8.
신은주(申銀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