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지저앙은 진(晋)나라 때 진수(陳壽, 233~297)가 저술한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 마한(馬韓) 조에서 처음 보인다. 그 내용을 인용하면, “항상 5월에는 씨 뿌리기를 끝내고 귀신에게 제사하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기를 밤낮없이 쉬지 않았다. 그 춤은 수십 명이 일어나서 서로 따르고, 땅을 밟으며 낮추었다가 높이며[답지저앙], 손과 발이 서로 잘 맞는데[수족상응] 그 절주는 〈탁무(鐸舞)〉와 비슷함이 있다(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羣聚歌舞, 飲酒晝夜無休. 其舞, 數十人俱起相隨, 踏地低昂,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라고 하였다. 이때 춤추었던 수십 인은 서로 따르며 답지저앙하고, 수족상응했다. 이 중 답지저앙은 현대의 한국 전통춤과 전통무예 이론가들에 의해 한국 고유 전통 동작 또는 원형적 몸짓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답지(踏地)에 대해서는 ‘농경 생활을 지속해 온 선조들의 땅에 대한 애착이 반영된 대지지향적(大地指向的) 특성의 전통 동작’이라고 보는 미학적 견해가 있다.
답지저앙은 한자의 의미를 좇아 발동작이라는 의견과 발동작 후 신체동작으로 이어지는 복합 동작이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발동작으로 해석한 성경린은 “땅을 밟고 뛰는 것”이라고 하였고, 이애주는 “땅을 높고 낮게 구르며 밟는다는 것으로 무릎을 굽히고 펴며 땅을 밟는 발걸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모든 춤의 주축이 되는 무릎 놀림의 기본 몸짓이라는 견해이다. 반면 전신 동작으로 본 이병옥은 “땅을 밟으면서 고개를 땅을 향해 숙였다가 하늘을 우러러보는 춤사위”라고 하였다. 구체적 예로는 두레패들이 행한 ‘신놀이(지신밟기)’를 들고 있다. 정병호는 강강술래와 같은 윤무(輪舞)를 할 때 “힘차게 도약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추는 형태라고 하였다. 또 ‘답지’는 전통춤의 기본 보법(步法)인 원자세(原姿勢: 준비자세와 종지자세) 또는 전통무예 택견의 품밟기 ‘品(품)’ 자와 같이 세 지점을 밟는다는 의미의 기본 보법)로 이해되었다. 그 기본자세에서 한 발을 내디뎌 진일보(進一步)하는 동작까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저앙’은 무릎 혹은 허리[腰部]와 목[頸部]의 관절을 이용한 굴신(屈伸: 굽히고 폄) 동작을 폭넓게 가리킨다.
이종숙(李鍾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