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제례 중 철변두 절차에 등가가 연주하는 남려궁의 악곡.
〈오안지악〉은 문묘제례 중 제기와 음식을 거두는 철변두 절차에서 당상의 등가가 연주하는 남려궁의 악곡으로 음악의 연주와 함께 악장을 노래 부른다. 그 악보는 초헌악인 남려궁 〈성안지악〉과 마찬가지로 성종대의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 「시용아부제악」 15곡 중 “남려궁”에 해당한다. 다만 초헌악은 기악 연주[악]과 노래[가] 및 일무[무]가 일체를 이루는데 반하여, 〈오안지악〉은 기악 연주[악]와 악장 노래[가]만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악장의 내용도 서로 다르다. 현행 〈오안지악〉의 곡이름과 악장은 북송 휘종 대관 연간에 대성부에서 찬한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북송 휘종 대관(大觀) 4년(1110), 문묘제례에 처음으로 철두의 절차가 포함되고, 그 절차에 쓰이는 음악을 〈오안지악〉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문묘제례에서 철변두 절차에 연주되고 있는 〈오안지악〉의 악장도 이 시기에 대성부(大晟府)에서 찬한 것이다. 당시에 지어진 악장과 곡이름이 원나라 임우의 「대성악보」에 철두 〈오안지악〉으로 그 악보와 함께 전해온다. 우리나라 문묘제례에서는 철변두 절차에 북송 휘종대의 곡이름과 악장을 그대로 습용하였지만, 절차 이름을 철변두라 개칭하고, 악보 역시 세종대에 새로 지은 제사아악으로 대체하였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오안지악〉은 세종대에 새로 지은 제사아악 “황종궁1”의 남려궁이다.
〈오안지악〉은 문묘제례 중 제기와 음식을 거두는 철변두(徹籩豆) 절차에서 당상(堂上)의 등가가 연주하는 남려궁의 악곡이다. 음악의 연주와 함께 악장을 노래 부르고 일무는 추지 않는다. 철변두는 제기와 음식을 거두는 의식으로, 초헌ㆍ아헌ㆍ종헌의 삼헌례를 마친 뒤 변(籩)・두(豆) 등의 제기를 조금씩 옆으로 옮긴다. 이 때 무무도 퇴장한다. 〈오안지악〉은 남려궁으로서 성종대의 『국조오례의서례』와 『악학궤범』에 수록되어 있는 「시용아부제악(時用雅部祭樂)」 15곡 중 “남려궁”에 해당한다. 등가가 연주하는 남려궁의 악곡이라는 점에서 초헌악인 남려궁 〈성안지악〉과 악보가 완전히 같지만, 초헌악 남려궁 〈성안지악〉이 기악 연주[악]과 노래[가] 및 일무[무]가 어우러진 종합예술 형식으로 연주되는데 반하여, 〈오안지악〉은 일무를 수반하지 않은 채 기악 연주[악]와 노래[가]만 연주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악장 내용도 절차와 상응하여 서로 다르다. 〈오안지악〉의 악장은 『세종실록』 「악보」 및 『악학궤범』에 수록되어 전해오는데, 원나라 임우(林宇)의 「대성악보」 중 철두(徹豆) 〈오안지악〉의 악장과 완전히 같다. 「대성악보」의 철두 〈오안지악〉 악장은 북송 휘종 대관(大觀) 4년(1110)에 대성부(大晟府)에서 찬한 것으로, 이 때 문묘제례에 비로소 철두의 절차가 포함되기 시작하였고 〈오안지악〉이란 곡이름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중국에서는 명대부터 절차가 철찬(徹饌)으로, 곡이름도 〈함화(咸和)〉・〈함평(咸平)〉 등으로 바뀌었지만, 우리나라 《문묘제례악》의 〈오안지악〉은 곡이름이나 악장 모두 북송 휘종 대관 연간에 대성부에서 찬한 것을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절차를 철변두라 칭한 점에서는 송대의 철두와 차이가 있다. 〈오안지악〉의 악장 희상재전 변두재열(犧象在前 籩豆在列) 희준과 상준은 앞에다 놓고, 변과 두는 좌우로 벌여놓아 이향이천 기분기결(以享以薦 旣芬旣潔) 제향 드리오니 향기롭고 깨끗하도다. 예성악비 인화신열(禮成樂備 人和神悅) 예가 이루어지고 음악이 갖추어져지니 사람은 화하고 신께서도 기쁜지고. 제즉수복 솔준무월(祭則受福 率遵無越) 제사 지내면 복을 받으니 한결같이 예법 따라 어김이 없도다.
번역 출처: 국립국악원 발행, 『국악전집 9』, 《문묘제례악》(1981)
정화순(鄭花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