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부터 근대 초기에 활동한 남성 중심의 유랑 예인 집단.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 초까지 활동한 유랑 예인 집단으로, 초기에는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나 후기에는 여성 단원도 일부 포함되었다. 꼭두쇠라 불리는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풍물(농악),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극) 등 여섯 마당의 종합연희를 마을 단위로 순회하며 공연하였다. 때로는 얼른(요술, 환술)도 함께 연행되었으며, 숙식과 약간의 노자만 제공받고 장터나 마당에서 밤새 놀이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해학과 풍자, 뛰어난 기예로 민중의 삶과 정서를 생생하게 표현하였으며, 민속예술의 전통과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사적 존재로 평가된다.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의 유랑 예인 집단으로, 사당패·거사패·굿중패와 함께 불교계 재승(才僧) 연희자 계통의 후예로 여겨진다. 이들은 삼국시대 원효의 무애희와 같은 불교 연희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승려 행세를 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기생과 어울리는 등 세속적 공연 활동을 펼쳤다. 조선 전기에는 사장(社長)이라 불리며 사원에서 배제된 유랑 예인으로 전락했고, 이후 남사당패로 이어지며 민속예술의 한 축을 형성하였다.
○ 신분과 조직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 초까지 활동한 유랑 예인 집단으로, 초기에는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꼭두쇠(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위계적 조직을 이루었다. 그 기원은 조선 태종의 사사혁파정책(寺社革罷政策) 이후 환속한 승려들, 즉 재승(才僧) 계통 연희자들이 무당·광대·재인 등과 어울리며 형성한 사장(社長)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본래 절에서 재를 올리고 다비를 치르던 불교 의례 전문가였으며, 범패·염불·법고·바라 등 가무희에 능한 명수들이었다. 사설 사암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점차 세속화되어 연희자로 전환되었고, 조선 전기에는 ‘승인(僧人)의 사장’으로 불리며 불사(佛事)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연희를 펼쳤다. 이후 사당패·거사패·굿중패·남사당패 등으로 분화되며, 일정한 사찰과 관계를 맺고 부적을 팔거나 시주를 받아 수입의 일부를 사찰에 바치는 방식으로 활동하였다.
○ 주요 활동과 공연내용
남사당패는 장터·파시·마을 행사 등 경제력이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순회하며 공연을 펼쳤다. 특히 파시(波市)와 조창(漕倉) 주변 포구 등에는 어부·상인·창기·작부 등이 몰려들어 번화한 유흥 공간이 형성되었고, 남사당패는 이곳에서 밤새 놀이판을 벌이며 수입을 올렸다. 주요 공연은 여섯 마당으로 구성된 종합연희로, 풍물(농악),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극) 등이 있다. 덧뵈기는 《양주별산대놀이》와 유사한 본산대놀이 계통의 가면극이며, 덜미는 한국의 유일한 전통 인형극으로 평가된다. 과거에는 얼른(환술)이라는 연희도 존재했으며, 공연 중에는 절을 짓는 건사(建寺) 거리도 포함되어 불사 명분과 연계되었다. 공연은 숙식과 약간의 노자만 제공받는 조건으로 이루어졌으며, 민중의 삶과 정서를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 역사적 변천 조선 후기에는 대광대패, 솟대쟁이패, 사당패, 걸립패, 중매구패 등 다양한 유랑 예인 집단이 전국을 떠돌았으며, 그중 남사당패는 규모와 공연 내용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집단으로 평가된다. 20세기 초에는 만주 지방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 순회할 정도로 위세가 있었고, 1930년대까지 전국을 유랑하며 공연을 지속하였다. 이후 급속한 사회 변화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으나, 1954년 남운용을 중심으로 안성 농악대를 결성하며 재기 시도가 있었다. 1960년대 전통문화 계승 운동을 계기로 ‘인형극회 남사당’으로 활동을 재개했고, 1964년 꼭두각시놀음이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연희 종목 복원과 단체명 변경을 거쳐 1988년에는 여섯 마당 전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확대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안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남사당패는 1997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며 지역 기반의 전승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 초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친 유랑 예인 집단으로, 풍물·가면극·인형극 등 다양한 전통연희를 전승하며 지역 민속과 공연문화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덧뵈기(가면극), 꼭두각시놀음(인형극), 줄타기·버나·살판 등은 현대 서커스에 해당하는 기예 중심의 연희로서, 남사당패는 이를 전문적으로 계승한 유일한 집단으로 평가된다. 꼭두각시놀음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한국의 유일한 전통 인형극이며, 세계적으로도 인형극은 유랑 예인 집단이 연행하던 놀이였다는 점에서 남사당패의 문화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심우성, 『남사당패연구』, 동문선, 1989. 전경욱, 『한국전통연희사』, 학고재, 2020. 이경엽, 「도서지역의 민속연희와 남사당노래 연구」, 『한국민속학』 33, 한국민속학회, 2001. 전경욱, 「감로탱에 묘사된 전통연희와 유랑예인집단」, 『공연문화연구』 20, 한국공연문화학회, 2010.
전경욱(田耕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