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 전』(『琴譜 全』)
『삼죽금보』는 1841년(헌종 7)에 이승무가 평소 기록하고 들은 이름난 거문고 연주자들의 가락을 모아 편찬한 거문고 악보집이다. 이 악보에는 조선 지식인층의 풍류방에서 연주되던 《영산회상》, 〈보허자〉, 〈여민락〉 계통의 풍류 음악과 함께 가곡ㆍ가사ㆍ시조 등의 거문고 수록되어 있으며, 정간보와 한글 육보로 기보되어 있다.
『삼죽금보』는 책의 앞표지 겉면에 ‘금보 전(琴譜 全)’이라 쓰여 있고, 표지 오른쪽에 기록된 ‘삼죽선생찬(三竹先生撰)’을 근거로 현재의 이름이 붙여졌다. 편찬 연대는 「서(序)」에 기재된 ‘성상 즉조 원년 신축’과 ‘서기 1721년’이라는 상이한 기록 때문에 논란이 있었으나, 수록 악곡의 성격이 『유예지(遊藝志)』(1806~1813) 및 『현금오음통론(玄琴五音統論)』(1886)의 중간에 놓인다는 점에서 1841년(헌종 7)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편저자는 ‘완산인 이승무(完山人 李升懋, 1777~1844)’로 추정된다. 이승무는 거문고 명인 홍기후(洪基厚)의 제자로, 여러 연주자의 가락을 직접 듣고 기록하여 악보의 필요성을 느껴 『삼죽금보』를 편찬하였다. 다만 표지에 ‘삼죽선생찬’이라는 기록이 있어 삼죽 조황(趙滉, 1803∼?) 등과의 관련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 악보는 1963년 국문학자 이병기(李秉岐)가 광복 이전 서울 안국동의 한 지물포에서 발굴하여 처음 학계에 소개하였다. 같은 해 국립국악원이 원본을 입수하여 현재까지 원래의 서명인 ‘금보(琴譜)’로 소장하고 있다. 현재 영인본은 1980년에 국립국악원에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2집에 흑백 축소판으로 처음 간행되었으나, 원본에 사용된 다양한 글자색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이에 1998년에 국립국악원에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33집으로 재간행하여, 원본 크기와 컬러를 충실히 반영한 영인본을 제공함으로써 해독상의 불편을 해소하였다.
○ 자료 정체
① 편찬연대 및 편저자 사항
『삼죽금보』의 편찬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악보의 「서」 끝부분에 기록된 “성상즉조 원년 신축(聖上卽祚元年 辛丑)”이라는 문구와, 위쪽 여백에 부기된 “서기 1721년 경종 원년”이라는 기록 때문에 처음에는 1721년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악보의 수록 내용과 다른 고악보들과의 비교 연구 결과, 헌종 즉위 원년인 1841년(헌종 7)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로 자리 잡았다.
편저자는 「서」에 기록된 “완산인 이승무”로 확인된다. ‘삼죽선생찬’이라는 표기 때문에 전 소장자였던 조병희(趙炳喜)와 같은 평양 조씨 가문의 삼죽 조황이 편찬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나, 서문과 범례를 직접 작성하고 이를 근거로 악보를 구성한 인물이 이승무이므로, 현재는 편저자를 이승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삼죽금보』와 관련된 『기후보(基厚譜)』의 기록에서도 이승무의 이름이 확인되어, 그의 편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② 소장처 및 소장번호
국립국악원
○ 서지사항/자료체제
필사본 1책 116장 232면. 세로 31.0cm×가로 21.0cm.
○ 구성과 내용
① 표지
② 서(序)
③ 범례(凡例)
④ 악보
㉠ 풍류 음악
㉡ 가곡
㉢ 〈장진주〉ㆍ〈중대엽〉ㆍ〈북전〉
㉣ 가사, 시조, 조음
⑤ 매화점장단
⑥ 시조시 6수
① 표지
책의 앞표지 겉면에는 악보명 ‘금보 전’이 적혀 있다. 통상 사용하는 『삼죽금보』라는 명칭은 표지 오른쪽에 기록된 ‘삼죽선생찬’이라는 표기를 근거로 붙여진 이름이며, 이후 이 명칭이 악보명으로 정착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② 서(序) 서문에 따르면 『삼죽금보』는 이승무가 평소에 기록하고 들은 명인들의 거문고 가락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그는 서울의 명금 홍기후에게 거문고를 사사하였고,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러 연주 현장을 찾아다니며 정묘한 가락을 마음에 새겼다. 그러나 기억에 한계가 있음을 느껴 직접 악보 제작에 나섰으며, 스승이 사용한 구음을 토대로 음악을 기보하고 연주법과 구음을 범례로 정리하여 초학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의 연주가 완숙하지 못하다고 고백하면서도, 거문고 연주를 통해 사특한 마음을 경계하려 한 조선 선비의 음악관을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③ 범례(凡例) 『삼죽금보』에는 고악보에서는 드물게 매우 상세한 범례가 수록되어 있다. 범례의 내용은 집시(執匙), 조현법(協律), 안현(安絃), 수법(手法), 구음(名目), 괘표(棵標), 수법표(手法標), 장단(長短), 초학(初學), 규구(規矩) 등으로 구성된다. 앞부분의 집시법부터 조현법ㆍ안현ㆍ수법은 거문고 연주법과 관련된 내용이며, 구음ㆍ괘표ㆍ수법표ㆍ장단은 악보 해독과 연주를 돕는 항목이다. 특히 구음 설명은 상세하여, 19세기 중엽에 거문고 교육이 구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항목인 초학은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이고, 규구는 숙련자를 위한 연주의 법도로, 글과 말만으로는 전하기 어려운 성음의 미묘함을 직접 연주와 수련을 통해 체득해야 함을 강조한다. ④ 악보 『삼죽금보』에는 19세기 전반에 연주된 〈보허자〉, 〈여민락〉, 《영산회상》, 《평조회상》, 〈취타〉 계통의 풍류 음악과 가곡ㆍ가사ㆍ시조 계통 성악곡이 수록되어 있다. 모든 악곡은 1행 16정간의 정간보로 기보되며, 한글 거문고 육보 옆에 현명과 괘차를 병기하여 음의 높이와 연주법을 함께 표시한다. 장단이 다른 악곡을 모두 1행 16정간 형식에 기보하여 해독에 불편함이 있지만, 《영산회상》 계통과 가곡에는 장구 장단까지 기보되어 있어 시가 해석에 유용하다. 또한 구음의 앞뒤에 찍은 구점(句點)은 선율 단락을, 붉은색ㆍ푸른색 등의 동그라미는 선율의 반복, 장 구분, 곡 연결 방법 등을 나타내어 음악의 구조 이해를 돕는다.
㉠ 풍류 음악 악보 전반에는 기악곡 23곡이 수록되어 있다. 〈조현(調絃) 우조(羽調) 다슬음〉ㆍ〈조현 계면조(界面調) 다스음〉ㆍ〈보허사(步虛詞) 우조(羽調)〉ㆍ〈여민락(與民樂) 우조(羽調)〉ㆍ〈본환입(本還入) 밋도드리 우조(羽調)〉ㆍ〈소환입(小還入) 잔도드리 우조(羽調)〉ㆍ〈영산회상(靈山會像) 계면조(界面調)〉ㆍ〈중령산(中靈山)〉ㆍ〈소령산(小靈山) 잔녕산〉ㆍ〈가락더리〉ㆍ〈환입(還入) 도드리〉ㆍ〈염불(念佛)〉ㆍ〈타령(打鈴)〉ㆍ〈군악(軍樂) 우조(羽調)〉ㆍ〈평조영산회상(平調靈山會像)〉ㆍ〈우조타령(羽調打打鈴)〉ㆍ〈우조가락제이(羽調加樂除耳) 가락더리〉ㆍ〈계면가락제이(界面加樂除耳) 가락더리〉ㆍ〈군중취타(軍中吹打)〉ㆍ〈노군악(路軍樂)〉ㆍ〈가군악(家軍樂)〉ㆍ〈소보허사(小步虛詞) 굿보허ᄉᆞ 우조(羽調)〉ㆍ〈양청환입(兩淸還入)〉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우조가락제이〉, 〈계면가락제이〉, 〈양청환입〉은 『유예지』에 없는 곡으로, 《영산회상》과 〈세환입〉, 《천년만세》를 연결하여 연주하는 현행 《가진회상》의 형태를 보여 준다. 또한 현재 거문고로는 연주되지 않는 〈군중취타〉, 〈노군악〉, 〈가군악〉의 반주 선율이 수록되어 있어 주목되며, 이는 각각 현행 〈취타〉, 〈길군악〉과 관련 된다. 한편 이 악보는 동일한 선율의 여러 변주를 검은색,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글자로 구분해 병기하였는데, 변주는 특히 본 선율을 4괘 또는 7괘에서 타는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 가곡 악보 후반에는 성악곡 중 가곡 계열 22곡이 수록되어 있다. 〈우조초삭대엽(羽調初數大葉)〉ㆍ〈우조이삭대엽(羽調二數大葉)〉ㆍ〈우조조림(羽調調臨) 속칭 조은자즌한입〉ㆍ〈우조삼삭대엽(羽調三數大葉)〉ㆍ〈우조소이(羽調騷耳)〉ㆍ〈우조소용(羽調騷聳)〉ㆍ〈우롱(羽弄) 속칭 밤엿자즌ᄒᆞᆫ닙〉ㆍ〈계면조초삭대엽(界面調初數大葉)〉ㆍ〈계면이삭대엽(界面二數大葉)〉ㆍ〈계면조림(界面調臨)〉ㆍ〈계면삼삭대엽(界面三數大葉)〉ㆍ〈계면소이(界面騷耳)〉ㆍ〈계면소용(界面騷聳)〉ㆍ〈농(弄) 계면조(界面調)〉ㆍ〈엇롱(旕弄)〉ㆍ〈계면낙시조(界面樂時調)〉ㆍ〈우조낙시조(羽調樂時調)〉ㆍ〈엇락(旕樂)〉ㆍ〈편락(編樂)〉ㆍ〈편삭대엽(編數大葉) 계면조(界面調)〉ㆍ〈청성삭대엽(淸聲數大葉)〉ㆍ〈평계면조삭대엽(平界面調數大葉)〉 총 22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조림〉과 〈소이〉는 『유예지』에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곡으로, 당시 가곡 계통 음악의 새로운 확산을 보여 준다. 특히 〈우조소이〉에는 “초장과 2장은 〈조림〉이나 〈삼삭대엽〉의 선율을 쓰고, 3장 16점부터 〈소이〉가 시작된다(初章二章 或用調臨初二章 或用三數大葉 而自三章十六点 始騷耳)”라는 주석이 붙어 있어 곡 간의 선율적 연계와 변화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 〈장진주〉ㆍ〈중대엽〉ㆍ〈북전〉 이어지는 부분에는 〈장진주(將進酒)〉ㆍ〈우조초중대엽(羽調初中大葉)〉ㆍ〈우조이중대엽(羽調二中大葉)〉ㆍ〈우조삼중대엽(羽調三中大葉)〉ㆍ〈계면초중대엽(界面初中大葉)〉ㆍ〈계면이중대엽(界面二中大葉)〉ㆍ〈계면삼중대엽(界面三中大葉)〉ㆍ〈우조후정화(羽調後庭花花) 일명(一名) 북전(北殿)〉ㆍ〈계면후정화(界面後庭花)〉 등 총 9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악보의 특징은 동일한 선율의 변주 가락을 글자색으로 구별해 병기한 점이다. 예컨대 〈우조초중대엽〉에서는 본(本)ㆍ명(明)ㆍ기(岐) 세 가지 가락을 색이 다른 글자로 동시에 기록하였다. 가곡에서는 우조보다 계면조에서 변주가 더 활발히 나타나며, 특히 두 조 모두 대여음에서 가장 다양한 변주 선율이 등장한다. ㉣ 가사, 시조, 〈조현〉 다음으로 〈상사별곡(相思別曲)〉ㆍ〈춘면곡(春眠曲)〉ㆍ〈행로곡(行路曲) 속칭(俗稱) 길군악〉ㆍ〈매화곡(梅花曲)〉ㆍ〈황계곡(黃鷄曲)〉ㆍ〈시조(時調)〉ㆍ〈소이시조(騷耳時調)〉ㆍ〈혜적조현(嵇笛調絃) 평조(平調)〉ㆍ〈무녀시조(巫女時調)〉ㆍ〈월곡(月曲)〉ㆍ〈평우조조현(平羽調調絃)〉ㆍ〈평계면조조현(平界面調調絃)〉ㆍ〈사언환입(詞言還入) 속명(俗名) 굿도드리〉ㆍ〈권주가(勸酒謌)〉 등 총 13곡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 악보에는 오늘날 거문고 반주와 함께 연주되지 않는 가사와 시조의 반주 가락이 기록되어 있어, 19세기 중엽에 가사와 시조의 연주에 거문고가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⑤ 매화점장단 〈권주가〉에 이어 가곡 장단을 표기하기 위해 고안된 매화점장단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가곡 장단이 아닌 진양조, 중머리, 자진중머리(중중머리) 등 판소리나 산조에서 사용하는 장단이 기록되어 있어, 『삼죽금보』 편찬 당시의 원기록이 아니라 후대에 가필된 것으로 추정된다. ⑥ 시조시 6수 권말 가장 끝에는 시조시 6수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삼죽금보』 편찬 당시의 원래 기록이 아니라, 후대에 덧붙여진 가필로 추정된다.
『삼죽금보』는 19세기 전반에 연주된 〈보허자〉, 《영산회상》, 《평조회상》, 〈취타〉 계통 악곡과 〈여민락〉, 가곡, 가사, 시조 등 거문고 음악을 폭넓게 수록한 종합 악보집이다. 특히 서문을 통해 편저자 이승무의 학습 이력, 음악관, 편찬 의도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당시 음악뿐 아니라 그 배경이 된 인적ㆍ사상적ㆍ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삼죽금보』는 학계 소개 이후 활발히 연구되며 편찬 연대(1841년)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자리 잡았고, 현재 다른 고악보의 연대 해석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따라서 예술적ㆍ역사적ㆍ학술적 측면 모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 『삼죽금보』의 영인본은 국립국악원 홈페이지의 ‘연구/자료-학술연구-영인ㆍ번역’ 섹션에서 원문 DB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기후보(基厚譜)』 『삼죽금보(三竹琴譜)』 『유예지(遊藝志)』 『현금오음통론(玄琴五音統論)』
이혜구 역주, 『삼죽금보의 역보 및 주석』,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김영운, 「매화점식 장단기보법 연구」, 『한국음악연구』 50, 한국국악학회, 2011. 김종수, 「『삼죽금보』 서와 범례」, 『민족음악학』 19,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1997. 서인화, 「『삼죽금보』 해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33, 국립국악원, 1998. 송석하, 「현존조선악보」, 『田邊先生還曆記念東亞音樂論叢』, 동경: 山一書房, 1943; 「현존한국악보」, 『한국민속고』, 일신사, 1960 재수록. 이혜구, 「현존 거문고보의 연대고」, 『국악원논문집』 1, 국립국악원, 1989: 「현존 거문고보의 연대고」, 『한국음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재수록. 임미선, 「『三竹琴譜』 소재 변주선율의 성격」, 『동양음악』 36,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2014. 장사훈, 「2. 삼죽금보(三竹琴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2, 국립국악원, 1980. 최선아, 「조선후기 금론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조선후기 금론연구』, 민속원, 2017 재수록. 최종민, 「삼죽금보 해제」, 『음대학보』 4,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학생회, 1968.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