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학금보(玄鶴琴譜)』
19세기 전반기 오희상이 민간 풍류 음악과 성악곡을 모아 편찬한 거문고 악보집을, 1907년 무렵 전사한 책.
1907년경에 전사된 책으로, 노주(老洲) 오희상(吳熙常, 1763∼1833)이 편찬한 거문고 악보집을 바탕으로 한다. 19세기 전반 만간과 지식인층이 연주하던 〈여민락〉, 〈보허자〉, 《영산회상》 계통의 풍류 음악과 가곡의 거문고 선율을 비롯해, 거문고 연주 범례, 음악 관련 글, 소악부 등이 수록되어 있다.
편찬 연도와 편저자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초기에는 「진악해(進樂解)」의 기록에 따라 1852년경 지방 악인 봉산초부 오희상으로 추정되었다. 이후 연구에서는 유학자 노주 오희상(吳熙常, 1763∼1833)을 편저자로 보며, 그의 편지 기록에 근거해 1828년 무렵으로 추정하였다. 이 악보는 한지에 붉은 판형을 찍고 붓으로 필사되었으며, ‘옥구감리서(沃溝監理署)’ 인장이 확인되어 1899∼1906년 사이 관료층에 의해 전사된 것으로 보인다. 또 책의 겉표지가 1907년 4월 18일자 경성일보 신문지로 싸여 있어 전사가 1907년 무렵에 완료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표지에는 ‘삼괴당장(三槐堂藏)’ 장서기와 ‘육당문고’, ‘아세아문제연구소장’ 도장이 있어, 삼괴당을 거쳐 육당 최남선을 통해 현재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옛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육당문고)에 소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본은 ‘현학금보 필사본(玄鶴琴譜 筆寫本)’이라는 서명으로 보관되어 있으며, 영인본은 2004년 국립국악원에서 『오희상금보』(『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39집)로 간행되었다. 이본으로는 정경태(鄭坰兌, 1917∼2004) 소장본과 북한 소장본 『휘어(徽語)』가 전한다. 정경태 소장본은 1999년 국립국악원에서 『현학금보(玄鶴琴譜)』라는 서명으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34집에 수록되어 간행되었다.
○ 자료 정체
① 편찬연대 및 편저자 사항
편찬 연도와 편저자는 명확하지 않으나, 「진악해」의 기록을 근거로 1852년경 지방 악인 봉산초부 오희상으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이후 연구에서는 유학자 노주 오희상을 편저자로 보며, 그의 편지 기록에 따라 1828년 무렵 편찬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② 소장처 및 소장번호
고려대학교 도서관. 청구기호: 육당 C13 A1.
○ 서지사항/자료체제
필사본 1책. 세로 33.3cm×가로 21.1cm.
○ 구성과 내용
① 표지
② 「진악해」ㆍ「여오금사설」
③ 「현학금보」 상편
④ 「현학금보」 하편
① 표지
책의 겉표지는 경성일보(1907년 4월 18일(목) 제175호) 신문지에 싸여 있다(원 표지는 알 수 없음). 표지 왼쪽에는 오려 붙인 한지에 적힌 악보명 ‘금보 전(琴譜 全)’과 편저자로 추정되는 ‘오초부(吳樵夫) 작(作)’이 보인다.
② 「진악해」ㆍ「여오금사설」 권두에는 오희상의 음악관을 드러내는 「진악해」ㆍ「여오금사설(與吳琴師說)」이 수록되어 있다. ㉠ 「진악해」 「진악해」는 제목에서 악(樂)의 원론적인 문제를 다룰 듯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이상적 논의보다 변화한 현실의 음악을 진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글쓴이는 패러디적 기법과 스토리텔링을 활용하여 이경순, 손님, 주인공 오희상 등의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음악관과 민간 풍류방에서의 음악적 경험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여오금사설」 「여오금사설」에서는 오희상을 중국 춘추시대 금(琴)의 명인 백아(伯牙)에 비유한다. 백아가 선생인 성련(成連)을 따라 성련의 스승인 자춘(子春)을 만나러 가던 중 봉래산(蓬萊山)에 혼자 남아 바다와 산악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신묘한 곡조를 얻어 천하의 빼어난 금(琴)의 명인이 되었다는 금곡(琴曲) 〈수선조(水仙操)〉의 ‘해산(海山)’ 설화에 근거하여, 오희상 또한 부안 변산 바닷가에 거처한 경험을 통해 거문고의 신묘함을 터득했을 것이라 설명한다. 이 기록은 오희상의 거주지와 신분을 추정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③ 「현학금보」 상편 이어서 본격적인 악보 부분인 「현학금보」가 두 편(임의로 상편과 하편으로 부름)으로 나뉘어 수록된다. 상ㆍ하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편에는 민간 풍류방에서 연주되던 〈여민락〉ㆍ〈보허자〉ㆍ《영산회상》 계통의 거문고 음악이, 하편에는 거문고로 반주하던 가곡 계통 음악이 실려 있다. 이러한 배열은 『삼죽금보』 이후 현행 금보까지 이어지는 악곡 수록 방식으로, 『유예지』(1806~1813) 이전의 금보에서 보이는 앞부분 노래ㆍ뒷부분 기악곡 수록 방식과는 차이를 보인다. ㉠ 이론 「현학금보」 상편은 먼저 이론 부분으로 시작한다. 〔현금규식(玄琴規式)〕에서는 거문고의 여섯 줄과 열여섯 괘에 대해 설명하고, 〔고금범례(鼓琴凡例)〕에서는 연주법을 다룬다. 이 가운데 〔금유상하내외좌우지별(琴有上下內外左右之別)〕은 거문고 본체 각 부분의 명칭을 소개하고, 〔우수집시무지진예상이촌식지잡시요여지권이불신이(右手執匙拇指鎭銳上二寸食指迊是腰餘指拳而不伸而)〕로 시작하는 대목에서는 술대 잡는 법(집시법)을, 〔안법(安法)〕 이하에서는 왼손으로 줄을 짚는 법을 설명한다. 〔십육괘해견상규식(十六卦解見上規式)〕은 16괘에 관한 해설이며, 〔문현지여시탄개유음위흥(文絃指與匙彈皆有音爲興)〕 이하에서는 한글 거문고 구음을 다룬다. 이어서 〔좌수법각유안표(左手法各有眼標)〕와 〔표개성자획(標皆省字畫)〕에서는 왼손 주법에 따른 연주 기호를 설명한다. 이후 숨을 헤아리는 법인 〔양식척(量息尺)〕이 나오는데, 이는 가곡 〈우계면 이수대엽〉을 기준으로 호흡 단위를 제시한 것이다. 이어서 아악(雅樂)과 속악(俗樂)에 해당하는 악곡들의 악조를 설명하고, 〔평조기어성위궁고매곡개가이변화야(平調其於聲爲宮故每曲皆可以變化也)〕와 〔평조지체십체(平調之體十體)〕에서는 거문고로 평조를 연주할 때의 수세를 설명한다. 또한 〔격양두고법(擊兩頭鼓法)〕은 장구 연주법과 한글 장구 구음을 기록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조현법(調絃法)〕에서는 거문고의 조현 방법을 서술하였다. 이들 중 일부 내용이 『학포금보(學圃琴譜)』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두 악보가 같은 계통임을 알 수 있다. ㉡ 악보 범례에서 설명한 한글 거문고 육보로 기보된 〈여민락〉ㆍ〈보허자〉ㆍ〈취타〉ㆍ《영산회상》ㆍ《평조회상》 계통의 악보가 나온다. 〈우조(羽調) 장다사음(長多辭音)〉ㆍ〈계면조(界面) 다사음(多辭音)〉ㆍ〈여민락(與民樂)〉ㆍ〈고문(古文) 보허자(步虛子)〉(“碧煙籠曉”)ㆍ〈보허사(步虛詞)〉ㆍ〈금문(今文) 보허자〉(“碧煙籠曉”)ㆍ〈본환입(本還入)〉ㆍ〈소환입(小還入)〉ㆍ〈변입(變入) 삼현가락(三絃加樂)〉(현행 돌장에 해당)ㆍ〈위무팔난곡(魏武八難曲) 속칭 취타가락(吹打加樂)〉ㆍ〈취타환입두(吹打還入頭)〉ㆍ〈진왕파진악(秦王破陳樂) 속명 노군악(路軍樂)〉(현행 취타 2장에 해당)ㆍ〈가군악(家軍樂)〉ㆍ〈영산회상(靈山會上)〉(현행 상령산에 해당)ㆍ〈중령산(中靈山)〉ㆍ〈세령산(細靈山)〉ㆍ〈제지(除指)〉ㆍ〈삼현환입(三絃還入)〉ㆍ〈하현환입(下絃還入)〉ㆍ〈인로선(引老禪) 속칭 염불타령(念佛打泳)〉ㆍ〈농소수(弄素袖) 속칭 타령(打泳)〉ㆍ〈연풍대(軟風帶)〉(현행 군악에 해당)ㆍ〈계면완구(界面宛邱)〉ㆍ〈양청환입(兩淸還入)〉ㆍ〈우조완구(羽調宛邱)〉ㆍ〈평조(平調) 조현법(調絃法)〉ㆍ〈평우조(平羽調) 조음(調音)〉ㆍ〈평계(平界) 조음〉ㆍ〈평조 보허자 범팔장(凡八章)〉ㆍ〈귀보허사(歸步虛詞)〉ㆍ〈평조영산회상(平調靈山會上)〉ㆍ〈중령산〉ㆍ〈평조 하현(下絃)〉ㆍ〈우조 농수(羽調弄手) 속칭 우조타령(羽調打咏)〉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악곡은 첫 행에 장고점을 기록하여 한 장단의 범위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일부 악곡에는 가로선을 표시했는데, 느린 곡에서는 대강의 구분선으로, 빠른 곡에서는 장단의 구분선으로 기능한다. 음의 높이는 한글 거문고 육보로 기보하고, 육보 좌우에는 지법, 현명, 괘차를 함께 적어 주법 해석에 도움을 주었다. 다만 〈양청환입〉은 육보 없이 지법과 괘차만 기록되었다. 또한 이 악보에는 『유예지』에 없는 〈우조가락제이〉, 〈계면가락제이〉, 〈양청환입〉이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는 거문고로 연주되지 않는 〈군중취타〉, 〈노군악〉, 〈가군악〉의 거문고 반주 선율이 전해져 주목된다. 이 가운데 도교 음악인 〈보허자〉 계통만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보허자〉의 악조를 우조에서 평조로 바꾼 〈평조 보허자〉는 『낭옹신보(浪翁新譜)』(1728)부터 등장하는데, 여기에 간음이 추가되고 “벽연농효” 가사가 탈락되면서 도교 음악이 ‘금을 연주하는 선비(爲琴之士)’의 음악으로 한층 세속화되었다. 또한 현재 거문고로 연주되지 않는 〈귀보허사〉의 거문고 반주 선율 역시 주목된다. 〈보허자〉에서 파생된 〈귀보허사〉는 환입 부분에서 파생된 〈본환입〉(밑도드리), 〈소환입〉(웃도드리), 〈양청환입〉(양청도드리), 〈우조완구〉(우조가락도드리)와 달리, 〈보허자〉 지입 선율을 활용하여 민간 차원에서 더욱 세속화된 음악이다. ④ 「현학금보」 하편 ㉠ 이론 「현학금보」 하편도 상편과 마찬가지로 이론 부분으로 시작한다. 먼저 『서경』 「우서」를 인용하여 순임금의 조정에서 천자의 맏아들이 음악 교육을 받았다는 내용을 서두로 삼아, 음악 교육의 중요성과 음악의 효능을 설명한다. 이어서 장단의 틀 속에서 음의 고저와 청탁을 구분하고, 12율의 조화를 구음으로 기보한 『오희상금보』의 체제를 소개한다. 「창탄선후변(唱彈先后辨)」에서는 거문고 연주가 인격 수양의 최선의 방법임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유가 성인의 신묘한 경지를 추구하고자 한 오희상의 음악관을 드러낸다. ㉡ 악보 이어지는 악보에서는 「고아가결차서(古雅歌闋次序)」에 옛 노래 한 바탕을, 「시속가결차제(時俗歌闋次第)」에 당대 유행가 한 바탕을 기록하였다. 다만 옛 노래를 싣기 전에 「체안사괘례도(體按四卦例圖)」라는 제명을 붙여, 거문고 4괘법 연주를 구음으로 제시하여 악보 해독을 돕고 있다. 먼저 「고아가결차서」에는 다음과 같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평조만대엽(平調慢大葉)〉(“오ᄂᆞ리 오나리”)(※악곡명은 원문에 없음)ㆍ〈우평조이수대엽(羽平調二數大葉)〉(“王祥의 鯉魚잡고”)ㆍ〈계평조삭대엽(界平調數大葉)〉(“銀河에 물이지니”)ㆍ〈우초중대엽(羽初中大葉)〉(“황하물이 ᄆᆞᆰ다더니”)ㆍ〈우조초삭엽(羽調初數葉)〉(“天皇氏 지으신 집을”)ㆍ〈우삼중대엽(羽三中大葉)〉(“삼동에 븨옷니다꼬”)ㆍ〈우조삼삭엽(羽調三數葉)〉(“屈原忠魂 ᄇᆡ의 은고기”)ㆍ〈계이중엽(界二中葉)〉(“벽ᄒᆡ갈류에”)ㆍ〈계면이수대엽(界面二數大葉)〉(“芳草 우거진 골에”)ㆍ〈계면삼중대엽(界面三中大葉)〉(“淸凉山 六六峰을”)ㆍ〈계면삼수대엽(界面三數大葉) 대가(臺歌)〉(“夕陽에 醉興을”)ㆍ〈북전(北殿) 후정화(後庭花)〉(“누은들 ᄌᆞ미오며”)ㆍ〈대가 계면중거삭엽(界面中擧數葉)〉(“秦淮에 ᄇᆡ이를 ᄆᆡ고”) 등이다. 「시속가결차제」에는 다음과 같은 곡들이 실려 있다. 〈우조초수대엽(羽調初數大葉)〉(“天皇氏 지으신 집을”)ㆍ〈우조이수대엽(羽調二數大葉) 남창(男唱)〉(“江湖에 期約을 두고”)ㆍ〈두 번째((其二) 여창(女唱)〉(“간밤에 부든 바람에”)ㆍ〈세 번째(其三) 중거삭대엽(重擧數大葉)〉(“景雲 鄕雲허니 日月이”)ㆍ〈네 번째(其四) 여창(女唱) 이자두(二字頭)〉(“이몸 싀여 뎌셔”)ㆍ〈우조삼수대엽(羽調三數大葉)〉(“한슘은 바람이 되고”)ㆍ〈우조삼뇌(羽調三雷) 속칭 소용이〉(“아마도 태평헐션”)ㆍ〈계면초삭엽(界面初數葉) 남창(男唱)〉(“靑石嶺 지나거다”)ㆍ〈계면이수대엽(界面二數大葉) 남창(男唱)〉(“雲淡風輕 近午天에”)ㆍ〈두 번째(其二) 여창(女唱)〉(“黃河遠上 白雲間허니”)ㆍ〈세 번째(其三) 남창(男唱) 중거대엽(中擧大葉)〉(“秋山이 夕陽을 셔여”)ㆍ〈네 번째(其四) 여창(女唱)〉(“西寒山 白鷺 ᄒᆞ고”)ㆍ〈다섯 째(其五) 남창(男唱) 혹 여창(女唱)〉(“문노라 져 禪師야”) 등이다. 이상 대엽류 가곡은 악곡마다 한 행에 정확히 두 장단에 해당하는 20점의 장고점을 기록하여 장단의 구분을 명확히 하였다. 음의 높이는 한글 거문고 육보로 기보하고, 육보의 좌우에는 지법, 현명, 괘차를 병기하여 주법 해석에 도움을 주었다. 다만 조성보의 〈만대엽〉을 전사한 〈평조만대엽〉은 1행 9대강에 한글 거문고 육보, 적의 오음약보와 한글 육보, 노랫말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또한 일부 노래에는 노랫말이 부가된 수파형 악보의 선율선이 병기되어 있다.
옛 노래 한바탕의 기록은 〈중대엽〉을 먼저 부르던 당시의 가창 현실을 잘 보여준다. 〈중대엽〉을 5장까지 부른 뒤, 대여음은 〈삭대엽〉의 대여음으로 대신하고 이어서 〈삭대엽〉을 부르는 순서로 연창된다. 이때 〈중대엽〉과 대가(臺歌)인 〈삭대엽〉의 노랫말은 서로 의미상 어울리는 것을 짝지어 선택하였다. 이어지는 당시의 유행가 한바탕은 남창과 여창이 교대로 노래하는 교대창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옛 노래의 노랫말에는 대체로 7언 절구로 한역한 초부 오희상의 소악부가 병기되어 있다. 다만 〈계이중엽〉(“벽ᄒᆡ갈류에”)과 〈계면중거삭엽〉(“秦淮에 ᄇᆡ이를 ᄆᆡ고”)의 노랫말은 한시를 시조화한 것이며, 당시의 노래는 자하 신위(申緯, 1769~1845)의 소악부와 중국 시인의 한시를 가사로 삼고 있다.
『오희상금보』는 앞부분에 〈여민락〉, 〈보허자〉, 《영산회상》 계통의 음악을, 뒷부분에 대엽류 가곡을 수록하여 『삼죽금보』와 함께 가장 다양한 곡을 담은 악보집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대엽류 가곡은 18세기 ‘옛 노래 한바탕’(〈중대엽〉에 이어 〈삭대엽〉을 부르는 형식)과 남녀 교대창으로 이루어진 ‘당시 유행 노래 한바탕’이 순차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옛 노래에는 대체로 초부 오희상이 한역한 7언 절구의 소악부가, 당시 노래에는 자하 신위의 소악부와 중국 시인의 한시가 병기된 점이 특징적이다. 편저자로 추정되는 노주 오희상은 거문고 연주를 통해 유가적 인격 수양과 성인의 신묘함을 구현하고자 한 유학자로, 『오희상금보』는 19세기 전반 조선 문인들의 유가적 음악관과 거문고 연주 실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현재 『오희상금보』의 원본 정보는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제공되고 있다. 영인본은 국립국악원 홈페이지의 ‘연구/자료–학술연구–영인ㆍ번역’ 섹션에서 원문 DB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학포금보(學圃琴譜)』 『현학금보(玄鶴琴譜)』 『휘어(徽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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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