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를 제작하는 데 쓰이는 여덟 가지 핵심 재료인 쇠(金), 돌(石), 명주실(絲), 대나무(竹), 바가지(匏), 흙(土), 가죽(革), 나무(木)를 지칭하는 용어.
'팔음'은 악기 제작에 사용되는 8가지 재료를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각 재료가 내는 고유의 음색을 구분하는 개념이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팔음은 완전한 음악을 구성하는 이상적인 요소로 먼저 정립되었으며, 이는 팔괘(八卦), 팔풍(八風) 등 우주론적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궁중 의례에 사용되는 악단을 편성하는 원칙으로 적용되었고, 후대에 이르러 이 원리가 역으로 악기 전체를 나누는 분류의 기준으로 활용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관련 악기가 전래되었고, 조선 세종대에 아악기 정비 및 제작이 이루어지면서 팔음을 완비하게 되었다.
팔음의 개념은 고대 중국 문헌 『상서(尙書)』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 초기에는 악기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 쓰였다. 그러나 팔음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체화되며 발전했다. 철학적 이상으로서의 팔음 고대 동아시아에서 팔음은 단순한 재료의 나열이 아닌, 완전하고 조화로운 음악을 구현하기 위한 철학적 이상이었다. 『악학궤범』에 인용된 진양(陳暘)의 『악서(樂書)』에 따르면 "팔음의 제도는 본래 천지의 이치에서 나온 것"으로, 8가지 재료의 소리가 모두 어우러질 때 비로소 우주적 질서에 부합하는 음악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는 8괘(卦), 8방(方), 8풍(風), 8절(節) 등 자연의 원리와 각 재료를 연결시킨 것에서도 드러난다. 악단 편성의 원칙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국가의 제례악(祭禮樂)과 같은 중요한 의식에 사용될 악단을 구성할 때 의도적으로 팔음의 악기를 모두 갖추려 노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대성아악이 유입되며 팔음 악기가 전래되었고, 조선 세종대에는 악기도감을 설치하여 편종과 편경을 비롯한 악기들을 직접 제작함으로써 팔음을 완비할 수 있었다.
○ 구성 요소 및 원리 『악학궤범』에서는 팔음이 "금석사죽포토혁목"이며, "악기의 재료로써 그 소리를 이루므로 팔음이라고 한다"고 명확히 정의히고, 팔음과 방위 및 절기, 간지, 12율 등과 같은 우주론적 요소들과 연결시켰다. 「팔음도설」에서 자세히 설명하듯, 이러한 시도의 배경에는 깊은 철학적 세계관에서 숫자 8이 세상을 구성하는 완전한 단위로 여겨졌으며, 대표적인 예시로 8가지 방향에서 불어오는 '팔풍(八風)' 이 있고, 우주의 모든 현상을 상징하는 8가지 기호인 '팔괘(八卦)' 가 있으며, 음악 역시 우주의 조화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8가지 핵심 소리, 즉 팔음이 모두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즉, 팔음의 구성원리는 가장 이상적인 음악이란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그대로 닮아야 한다는 고대의 사상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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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音 | 혁 | 포 | 죽 | 목 | 사 | 토 | 금 | 석 | ||||
|---|---|---|---|---|---|---|---|---|---|---|---|---|---|
| 8方 | 북 | 동북 | 동 | 동남 | 남 | 서남 | 서 | 서북 | |||||
| 8卦 | 감 | 간 | 진 | 손 | 이 | 곤 | 태 | 건 | |||||
| 8節 | 동지 | 입춘 | 춘분 | 입하 | 하지 | 입추 | 추분 | 입동 | |||||
| 8風 | 광막풍 | 융풍 | 명서풍 | 청명풍 | 경풍 | 양풍 | 창합풍 | 부주풍 | |||||
| 간지 | 자 | 축 | 인 | 묘 | 진 | 사 | 오 | 미 | 신 | 유 | 술 | 해 | |
| 12율 | 황 | 대 | 태 | 협 | 고 | 중 | 유 | 임 | 이 | 남 | 무 | 응 | |
| 금(金) | 석(石) | 사(絲) | 죽(竹) | 포(匏) | 토(土) | 혁(革) | 목(木) | |
| 태(兌) | 건(乾) | 이(離) | 진(震) | 간(艮) | 곤(坤) | 감(坎) | 손(巽) | |
| (八卦) | ||||||||
| (八風) | 閶闔風 | 不周風 | 景風 | 明庶風 | 融風 | 凉風 | 廣漠風 | 淸明風 |
| (八節) | 秋分 | 立冬 | 夏至 | 春分 | 立春 | 立秋 | 冬至 | 立夏 |
| 악기 | 종(鍾) | 경(磬) | 금(琴) 슬(瑟) |
관(管) 약(籥) |
생(笙) 우(竽) |
훈(塤) 부(缶) |
도(鼗) 고(鼓) |
축(柷) 어(敔) |
또한 팔음도설에는 각각의 소리를 문자화, 이미지화하고, 의례 및 주악의 현장에서 그 소리를 듣는 군주의 마음가짐에 관한 내용도 담겨있다. 이는 진양의 『악서』를 인용한 것으로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팔음 | 소리의 표현 | 떠오르는 마음의 대상 | ||
|---|---|---|---|---|
| 金聲(쇠 소리) | 鏗鏗(견견) | 호령하는 소리 | 武臣(무신) | 무신 |
| 石聲(돌 소리) | 磬磬(경경) | 가벼운 소리 | 封疆之臣(봉강지신) | 봉강에서 죽은 신하 |
| 絲聲(줄 소리) | 哀哀(애애) | 애처로운 소리 | 志義之臣(지의지신) | 뜻 있는 신하 |
| 竹聲(대나무 소리) | 濫濫(람람) | 넘치는 소리 | 畜聚之臣(축취지신) | 군중을 기르는 신하 |
| 革聲(가죽 소리) | 讙讙(환환) | 시끄러운 소리 | 將帥之臣 | 장수의 신하 |
| 土音(흙 소리) | 濁濁(탁탁) | 탁한 소리 | 寬厚 | 너그럽고 후함 |
| 匏音(바가지 소리) | 啾啾(추추) | 청아한 소리 | 恭愛 | 공경하고 사랑함 |
| 木音(나무 소리) | 直直(직직) | 곧은 소리 | 絜己 | 자기를 깨끗이 함 |
○ 팔음 분류체계와 범주 팔음의 개념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악기의 분류체계로 활용되었다. 정조 때 편찬된 『시악화성』 및 『증보문헌비고』에서 그 예시를 살필 수 있다. 『증보문헌비고』에서는 아부(雅部) 속부(俗部)로 세분하였다.
| 팔음 | 아속 | 해당 악기 |
|---|---|---|
| 金之屬 | 雅部 | 편종(編鐘), 특종(特鐘), 순(錞), 요(鐃), 탁(鐸), 탁(鐲) |
| 俗部 | 방향(方響), 향발(響鈸), 동발(銅鈸) | |
| 石之屬 | 雅部 | 경(磬) |
| 絲之屬 | 雅部 | 금(琴), 슬(瑟) |
| 俗部 | 현금(玄琴), 가야금(伽倻琴), 월금(月琴), 해금(奚琴), 당비파(唐琵琶), 향비파(鄕琵琶), 대쟁(大箏), 아쟁(牙箏), 알쟁(戛箏) | |
| 竹之屬 | 雅部 | 소(簫), 약(籥), 관(管), 적(篴), 지(篪) |
| 俗部 | 당적(唐笛), 대금(大笒), 중금(中笒), 소금(小笒), 통소(洞簫), 당필률(唐觱篥), 태평소(太平簫) | |
| 匏之屬 | 雅部 | 생(笙), 우(竽), 화(和) |
| 土之屬 | 雅部 | 훈(塤), 상(相), 부(缶), 토고(土鼓) |
| 革之屬 | 雅部 | 진고(晉鼓), 뇌고(雷鼓), 영고(靈鼓), 노고(路鼓), 뇌도(雷鼗), 영도(靈鼗), 노도(路鼗), 건고(建鼓), 삭고(朔鼓), 응고(應鼓) |
| 俗部 | 절고(節鼓), 대고(大鼓), 소고(小鼓), 교방고(敎坊鼓), 장고(杖鼓) | |
| 木之屬 | 雅部 | 부(拊), 축(柷), 어(敔), 응(應), 아(雅), 독(牘), 거(簴), 순(簨), 숭아(崇牙), 수우(樹羽) |
○ 역사적 변천 팔음 악기를 온전히 갖추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과제였다. 고려 명종대에는 일부 악기가 누락되기도 했으며, 조선 건국 후에도 악기 구비에 어려움을 겪었다. 세종대에 아악기 국내 제작 기반이 마련된 후로도 악기를 유지·보수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전란 등으로 기술 전승이 끊겨 생황 같은 악기를 중국에서 수입하기도 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함화진의 『조선악기편』(1933) 등에서 팔음 분류법을 사용했으나, 현대에는 전통적 악기 분류법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팔음의 고대 동아시아에서 '이상적 음악'을 규정하던 철학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국가 의례를 위한 악단 편성의 실질적 원칙으로 기능했으며, 차츰 악기 전반을 체계화하는 분류의 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역사적 변천 과정은 동양의 음악사상이 음의 높이나 길이뿐만 아니라, 각 재료가 지닌 고유의 '음색(音色)'을 음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서 의의가 있다.
『增補文獻備考』 권 90 「樂考」1 <律呂製造> ‘八音’ 『增補文獻備考』 권 95 「樂考」6 <樂器> 『조선악기편』, 함화진 저, 1933. 『이왕가악기』, 히타가 에스케(日高英介) 저, 1939.
김종수 역, 『증보문헌비고』 「악고-상」, 국립국악원, 1994. 김수현, 「동아시아 전통 악기구분법 팔음(八音)의 악기학적 연구」, 『조선의 악률론과 근대 음악론』, 경인문화사, 2021. 송혜진, 『한국악기』, 열화당, 2000.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