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3년(성종 24) 성현(成俔), 유자광(柳子光) 등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조선 전기 악서.
『악학궤범』은 성종 대에 『경국대전』, 『국조오례의』와 함께 국가 제도 정비를 위한 3대 사업 중 하나로 편찬되었다. 조선 전기까지 축적된 음악 이론과 제도를 집대성하여 아악(雅樂), 당악(唐樂), 향악(鄕樂)의 악률(樂律), 악현(樂懸), 정재(呈才), 악기(樂器), 의물(儀物), 관복(冠服) 등 궁중의 음악, 무용, 의례에 관한 모든 규범을 9권 3책에 체계적으로 수록하여 후대 악서와 국악 연구의 전거(典據)가 되었으며, 악(樂)·가(歌)·무(舞)의 종합적인 규범을 제시하여 동양 음악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9권 3책으로 구성되었으며, 1493년 초간 이후 여러 차례 복각되었다.
『악학궤범』의 편찬은 조선 초기부터 지속되어 온 예악(禮樂) 재정비의 의지와 성종의 문화 융성 정책이 결합된 결과물이긴 하나 그 유래는 세종 대에 집적된 이론적 연구 성과 및 연구자료, 시행 전거들이다. 성종 7년(1476)부터 본격적인 편찬 사업이 시작되어,세종 이후 성종 이전까지 전승되는 과정에서 변용된 사례를 정비하고, 국가의례에 사용되는 악무 및 악무 시행에 필요한 제도와 악기, 의물 복식 등의 기본 규범으로 확립하였다. 유학자이자 음악에 밝았던 성현과 관리 유자광, 장악원의 음악인들이 편찬에 참여하여 성종 24년(1493)에 완성, 간행하였다.
○ 구성
『악학궤범』은 음악, 무용, 의례에 관한 모든 규범을 총망라한 9권 3책의 악서로, 내용은 서문 및 각론 다섯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서문
『악학궤범』의 서문은 성현1 493년에 작성한 것으로, 예악의 근본 원리와 편찬 동기 및 목적을 밝히고 있다. 첫부분에서는 음악의 본질이 자연의 질서를 본받는 것으로, 오음육률이 오행에, 12율이 12월에 배속된다는 점을 기술하였고, 다음으로는 악서 찬집의 필요성과 동기를 피력하였다. 즉, 세종과 세조의 업적을 이어 성종대에 음악 제도를 완성했으나, 기존 장악원의 기록들이 오래되어 오류가 많아 혼란스러워져셔 규범을 확립해야겠다는 왕명을 받아 편찬에 착수하였음을 밝혔다. 그 다음은 현재와 같은 체제로 악서를 편찬하게 된 이유와 목적을 '음악이 형체가 없어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악보로 완급을 알게 하고 그림(도설)으로 악기의 형태를 분별하게 하며 시행법을 알게 하는 데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로써 국가의례에 사용되는 아악, 당악, 향악 의 악무와 시행에 관련된 모든 음악 제도를 만세의 규범으로 삼고자 하였음이 제시되어 있다.
국립국악원 영인판 성종 이후 복간 판으로 광해 2년판(1610),
- 권1~권9 권1은 음악이론 편으로 중국과 조선의 음악이론이 상세히 소개되었다. 서양음악의 12반음에 해당하는 황종(黃鍾)·대려(⼤呂)·태주(太簇)·협종(夾鍾)·고선(姑洗)·중려(仲呂)·유빈(蕤賓)·임종(林鍾)·이칙(夷則)·남려(南呂)·무역(無射)·응종(應鍾)의 음과 12율을 구하는 방법(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 12율이 12월과 배합되어 24절기에 조응하는 원리 등이 기술되었다. 또 12율과 5음이 결합되어 완성되는 60조를 도해로 제시하여 60조의 중심음을 빨리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우리나라에서 4청성(四淸聲)만을 사용하여 12궁을 그린 시용아악12율7성도(時⽤雅樂⼗⼆律七聲圖), 세종 때 등가와 헌가의 율을 시정하는데 그 근거를 제공한 율려격팔상생응기도설(律呂隔⼋相⽣應氣圖說), 12율관의 길이와 둘레를 숫자로 도설한 12율위장도설(⼗⼆律圍⻑圖說)·반지상생도설(班志相⽣圖說), 중국 송대의 음악이론서인 『율려신서(律呂新書』를 참고하였으나 실제의 음악과는 관계되지 않은 양률음려재위도설(陽律陰呂在位圖說), 변치(變徵)와 변궁(變宮)의 사용을 이단시하고 궁이 상이나 각보다 높이 되는 것을 금하는 오성도설(五聲圖說)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여덟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악기를 설명한 팔음도설(⼋⾳圖說), 연향에 쓰이는 당악의 28조를 악서에서 인용하여 5음 12율로 설명한 오음율려28조도설(五⾳律呂⼆⼗⼋調圖說), 정현(鄭玄)의 『주례(周禮)』와 진양의 『악서(樂書)를 인용하여 설명한 삼궁(三宮), 세종 때 쓰인 ‘강신악조’를 『주례』와 『송사(宋史)』의 그것들과 비교, 설명한 삼대사강신악조(三⼤祀降神樂調), 한국음악의 악조를 설명한 악조총의(樂調總義), 세조가 창안하여 기보에 사용한 것을 다룬 오음배속호(五音配俗呼), 공척보에 쓰이는 음명의 음 높이를 당적 같은 당악기 대신에 향악기인 대금의 음으로 예시한 12율배속호(⼗⼆律配俗呼)를 설명하고 있다. 권2에서는 국가의 제사 및 조회, 회례연 등에 편성되는 아악과 속악의 악대 편성을 소개하고 있다. ‘아악진설도설(雅樂陳設圖說)’ 6종의 규범과 세종대와 성종조의 회례, 연례에 적용되는 23종의 ‘속악진설도설(俗樂陳設圖說)’ 및 세종대 창작된 악곡인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의 춤이 도설되어 있다. 아울러 역사의 변천과정을 비교하여 과거의 것(세종조 오례의)과 당시의 것(시용:時用)을 함께 싣고 있어, 각각의 계기마다 사용되는 악대의 연주인원, 악대의 배치, 연주의상, 악무원의 역할 등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제향에 쓰이는 아악의 악보와 악장樂章 및 성종조의 조회·연향에 쓰이는 음악의 절차·곡목·춤 이름을 역시 이전의 것과 비교하여 상세히 기술하였다. 이밖에도 권2에서는 세종이 작곡한 신악 및 전래의 향악, 당악을 연주하는 제례 등의 궁중의례에 대하여 악대의 인원 및 배치, 의상 및 연주자의 역할 등을 아울러 소개하였고, 아부와 속부의 제악(祭樂) 및 연향악(宴享樂)의 악곡과 악장, 절차에 따른 악무 활용 예가 포함되어 있으며, 세종조에 적용되었던 ‘월(月)에 따라 율(律)을 달리 사용하는 수월용률(隨月用律)'을 수록되어 있다. 권3과 권4에서는 고려사 악지의 당악정재와 조선시대의 춤, 속악정재가 설명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춤 종류를 일일이 열거하고, 각 춤마다 무용수의 인원, 의상, 무용대열, 춤을 추면서 부르는 노래까지 순서대로 기술하였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 궁중정재의 전모를 알 수 있으며, 또한 정재 때에 불렀던 당악곡의 노랫말, 즉 사(詞) 문학의 용례도 상세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춤 동작과 대형(隊形)의 변화를 알려주는 ‘박拍’이 위치를 표기하여 전래의 당악정재에 대한 기록의 정확성을 높였다. 한편, 권4의 뒷부분에는 조선시대의 궁중 춤 중 당악스타일로 창작된 <몽금척>·<수보록>·<근천정>·<하황은> 등 세종 때에 창작된 새로운 당악정재 9곡을 포함한 14종의 당악정재가 수록되어 있다. 권5에는 성종 때의 향악정재도의(鄕樂呈才圖儀)가 기술되었다. 권4의 당악 정재처럼 춤의 대형과 진행을 소상히 기록하였음은 물론, 춤을 출 때 부르는 노랫말을 모두 한글로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글 창제 이전까지 한글 노래들은 한자로 제목만 표기되거나 노래의 내용을 한문을 빌려 기록해왔지만 악학궤범에서는 세종 때 창제된 한글을 이용하여 전래의 고유 노래인 <동동(動動)>·<정읍(井邑)>·<처용가(處容歌)>·<진작(眞勺)>의 등을 한글로 표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중 <동동>과 <정읍>의 가사는 『대악후보(大樂後譜)』와 『악장가사(樂章歌詞)』에도 없고, 오직 『악학궤범』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이밖에 『세종실록악보』에 기록된 <정대업>·<보태평>·<봉래의> 등의 춤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특히 <정대업>·<보태평>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기 이전의 춤 대형과 진행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권6부터 권7까지는 아악기, 당악기, 향악기 도해와 관련 설명이다. 제6권에는 아악기와 소품 46종, 제7권에는 당악기 13종과 향악기 7종이 소개되어 있다. 『악학궤범』의 악기 항목은 각종 원전에 언급된 내용 검토와 비교, 악기의 세부 구조와 치수, 악기의 용도, 악기의 재료와 제작법, 연주하는 법, 음정이 있는 악기의 조율법 등 실용적 정보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기술체계는 중국의 역대 음악 문헌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설의 상세한 내용은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이다. 권8에는 ‘당악정재의물도설(唐樂呈才儀物圖說)’과 ‘향악정재악기도설(鄕樂呈才樂器圖說)’이 수록되었는데 이는 모두 춤에 소용되는 의물과 소품이다. 그림을 곁들여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권9의 ‘관복도설(冠服圖說)’은 연주 및 춤에 필요한 의상과 소품, 악기 등 63종에 대한 상세한 그림해설이 실려있다. 악사와 악공들의 관복, 세종 때 회례연에 아악이 사용된 때의 무무공인(武舞工人)의 복식, 처용관복(處容冠服)·무동관복(舞童冠服)·여기복식(⼥妓服飾)을 치수, 재료, 색상, 제작법까지 소개하여, 재현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 편 찬 |
편찬년 | 1493년 (성종 24, 癸丑년, 홍치 6년) 8월 상순 | |||||
| 편찬자 | 유자광(장악원 제조) 성현(예조판서) 신말평(장악원 주부) 박곤·김복근(장악원 전악) | ||||||
| 체제 | 天 | 서문, 권1: 악률이론 권2: 의례와 악현 권3: 고려사 악지 당·속악 정재 | |||||
| 地 | 권4: 시용당악정재 권5: 시용향악정재 권6: 아부악기 | ||||||
| 人 | 권7: 당부악기 향부악기 권8: 의물 권9: 관복도설 | ||||||
| 간행 복간 |
판본 | 간행 시기 | 현재 소장 | 서발문 위치 | |||
| 앞 | 본 | 뒤 | |||||
| 성종판 | 1493년(성종 24년 계축) | 호사문고(임진란 전판) | 序 | ||||
| 광해판 | 1610년(광해 2년, 만력38) | 서울대 규장각, 북한 | 序 | 跋 | |||
| 효종판 | 1655년(효종 6년, 을미) | 서울대 규장각 | 序 | 跋 | |||
| 영조판 | 1743년(영조 19년, 계해) | 국립국악원 | 御製序, 詩 |
序, 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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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인 | 연도 | 발간처 | 영인 대상 판본 | |
| 1933년 | 고전간행회 | 광해판(1610) | ||
| 1956년 | 북한 국립출판사 | 광해판(1610) | ||
| 1968년 |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성종판(1493) | ||
| 1975년 | 아세아문화사 | 성종판(1493) | ||
| 1986년 | 장사훈, 『증보 한국음악사』 부록 | 광해판(1610) | ||
| 1989년 | 한국음악학자료 총서 26, 국립국악원 | 영조판(1743) | ||
| 2011년 | 국립국악원 | 성종판(1493) | ||
| 번역 | 연도 | 내용 | 서발 번역 현황 | |
| 1956년 | 렴정권 역, 『악학궤범』, 북한 국립출판사 | 광해판(1610) | 서ㆍ발 번역 | |
| 1979년 | 이혜구 역, 『악학궤범』 1, | 성종판(1493) | 서문 번역 | |
| 1980년 | 이혜구 역, 『악학궤범』 2, | 성종판(1493) | 서문 번역 | |
| 2000년 | 이혜구 역,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 성종판(1493) | 서문 번역 |
|
| 天 | 서 | 성현(成俔) | |
| 권1 | 악률이론 | 육십조 시용아악십이율칠성도 율려격팔상생응기도설 십이율위장도설 변율 반지상행도설 양률음려재위도설 오음도설 팔음도설 오음율려이십팔조도설 삼궁 삼대사강신악조 악조총의 십이율배속호 | |
| 권2 | 악현과 절차 | ○아악진설도설: 오례의등가.헌가 시용등가.헌가 세종조회례연등가.헌가 문무 무무 | |
| ○속악진설오설: 오례의종묘영녕전등가.헌가 보태평지무 정대업지무 등 | |||
| 권3 | 고려사악지 | ○고려사악지당악정재: 헌선도 수연장포구락 오양선 연화대 | |
| 당속악정재 | ○고려사악지속악정재: 아박 무애 무고 | ||
| 地 | 권4 | 시용당악정재 | 헌선도 수연장포구락 오양선 연화대 |
| 금척 수보록 수명명 근천정 수명명 하황은 하성명 성택 육화대 곡파 | |||
| 권5 | 시용향악정재 | 보태평 정대업 봉래의 아박 향발 무고 학연화대처용무합설 교방가요 문덕곡 | |
| 권6 | 아부악기도설 | 특종 특경 편종 편경 건고 삭고 응고 뇌고 영고 노고 뇌도 영도 도 절고 진고 축 어 등 45종 | |
| 人 | 권7 | 당부악기 | 방향 박 교방고 월금 장고 당비파 해금 대쟁 아쟁 당적 당필율 퉁소 태평소 |
| 향부악기 | 현금 향비파 가야금 대금 소관자 초적 향필율 | ||
| 권8 | 의물 | ○당악정재의물: 죽관자 인인장 용선 봉선절 등 ○연화대복식: 합립 유소 결신 단의 상 말군 대 | |
| ○정대업정재의물: 갑 주 검 궁 대각 홍대둑 등 ○향악정재악기: 아박 향발 무고 동발 학 침향산 | |||
| 권9 | 관복도설 |
복두 개책 진현관 피변 무변 오관 초립 등 ○처용관복도설: 사모 의 천의
길경 부용관 공연시 부용관 화 의 중단 등 ○둑제복: 방의 전대 회렴 운혜
○여기복식도설: 잠 유소 차 대요 단의 등 |
○ 역사적 변천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이라는 두 차례의 큰 전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예악(禮樂) 제도가 심각하게 훼손되자 음악 제도를 복원하고 재정비하기 위한 지침서로서 『악학궤범』을 거듭 복각하고 복간하는 작업이 이어지게 되었다. 첫 번째 복각은 임진왜란 직후인 1610년(광해군 2년)에 이루어졌으며, 이는 전란으로 소실된 악기와 악보, 제도를 복원하려는 목적이었다. 두 번째 복각은 병자호란 이후인 1655년(효종 6년)에 단행되었는데, 이는 다시 한번 예악 재건을 위한 국가적 의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나아가 세 번째 복간은 1743년(영조 19년)에 영조가 아악(雅樂) 재건에 힘쓰던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다. 조선 후기에 『악학궤범』이 반복적으로 복간되고 중요하게 활용된 것은 단순한 옛 문헌의 보존을 넘어, 조선왕조 예악의 보존 및 전승 기반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로는 초판본인 성종판(1493)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광해판(光海版, 1610) 복각본을 중심으로 영인과 연구가 이루어졌다. 최초의 근대적 영인은 1933년 고전간행회에 의해서 광해판을 대상으로 발간되었는데, 이는 당시까지 성종판이 발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1940년을 전후하여 일본 나고야 호사문고(蓬左文庫)에서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성종판본이 발견되면서 악서 연구의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발견 이후, 현대에 들어서 북한에서는 1956년 염정권이 광해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최초의 번역서와 영인본을 발간하였다. 반면 남한에서는 1968년 김지용이 호사문고의 성종판을 복사해 와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영인함으로써 초판본을 근거로 한 연구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성종판 자료는 1975년 아세아문화사에서 다시 영인본으로 발간되어 보급되었다. 번역에 있어서는 1979년과 1980년에 걸쳐 민족문화추진회의 국역사업 일환으로 이혜구 번역의 『국역 악학궤범』이 2권으로 간행되어 남한 최초의 완역본이 되었으며, 2000년에는 이를 보완한 『신역악학궤범』이 발간되었다. 한편, 198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판본의 영인도 이어졌는데, 1986년 장사훈이 광해판 영인본을 수록하였고, 국립국악원에서는 1989년에 소장하고 있던 영조판(1743)을 발간하였다. 최종적으로 2011년에는 국립국악원이 호사문고의 성종판을 다시 칼라 영인본으로 발간함으로써, 모든 판본이 현대 연구에 용이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접근성이 확보되었다.
『악학궤범』은 1493년에 간행된 실용적 음악 문헌으로, 조선 왕조 건국 이후 예악문화의 전승을 위해 집대성된 책이다. 이 책은 국가의례 음악을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편찬된 것으로, 일반적인 악론을 다룬 악서나 음악 역사를 기술한 역사서와는 성격이 다르다. 서문에서는 음악이 ‘사람’에게 달려 있음을 강조하며, 중국 역대의 음악 정책이 악의 말단만을 거론한 점을 비판한다. 동시에 조선의 군주들이 음악의 근본에서 말단까지 아우르는 위업을 이루었음을 선언한다. 이는 조선 음악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의 표현이며, 조선이 동시대 중국보다 고전에 가까운 음악 문화를 갖추고 악본(樂本)을 중시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조선 왕조는 유교적 덕목을 바탕으로 예악을 완비하여 치세의 문화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며, 『악학궤범』의 편찬은 고려로부터 이어받은 음악 유산의 부족함을 보완하려는 초기 예악 정비 사업의 결실이다. 특히 세종대에는 표준 음고 제정, 아악기 제작 기술 확보, 신악 창작 등 역사적으로 드문 음악 사업이 추진되었고, 집필자들은 이 성과와 지식을 집대성하여 『악학궤범』을 완성하였다. 이 책은 지속적으로 복간되면서 조선 후기 국가 예악이 규범대로 전승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되었고, 조선 왕조의 예악 전통을 잇는 토대로 기능하였다. 나아가 현대에는 국악의 악조 이론 체계와 악곡·악장·악기 연구는 물론 문학, 무용, 복식,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탐구에도 기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악학궤범』은 음악과 관련된 전거를 중시하면서도 현실 속에서 바른 음악을 이어갈 수 있는 실용성을 강조하였고, 전문인들이 실제 음악 문화를 기록함으로써 다른 악서에서는 보기 어려운 전문성을 확보한 조선 예악 문화의 기념비적 문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전번역원, 『국역 악학궤범』(번역:이혜구), 1979,1980. 송혜진, 『질서와 친화의 변주, 조선의 왕실음악』, 민속원, 2016. 이혜구,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김수현, 「『악학궤범』권1에 나타난 중국 음악이론의 주체적 수용 양상에 대한 고찰」, 『유교사상문화연구』 47, 한국유교학회, 2012. 김종수, 「『악학궤범』 악기분류의 음악사학적 고찰」, 『동방학』 16, 한서대동양고전연구소, 2009. 송방송, 「『악학궤범』의 문헌적 연구-인용기사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연구』 16,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1982. 송혜진, 「15세기 허백당 성현의 음악 견문 기록과 의의」. 『한국음악연구』 66집, 2019. 이숙희, 「『악학궤범』 사상체계의 형성 배경과 성격」, 『한국음악사학보』 33, 한국음악사학회, 2002.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