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악연구소(古典樂硏究所) 고전악단, 협률단
1947년, 3.8선 이북 지역에서 활동하던 전통음악인들의 주도로 평양에서 결성된 전통음악 단체
조선고전악연구소는 1947년 7월 5일, 3.8선 이북 지역에서 활동하던 전통음악인들의 주도로 평양에서 결성된 전통음악 단체로, 조선 고전음악의 계승과 창극·민요의 창작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안기옥을 비롯한 월북 국악인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였으며, 이후 협률단과 국립민족예술극장으로 조직이 발전하면서 북한 민족음악계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조선고전악연구소의 유래는 1945년 광복 직후 3.8선 이북 지역 출신이나 그 지역에서 활동했던 전통음악인들의 단체 결성과 활동에서 출발점을 삼을 수 있다. 처음 평양에서 결성된 단체는 김진명, 유대복, 김관보, 홍탄실을 중심으로 한 ‘한일가무단(韓一歌舞團)’이다. 이 외에도 황해도에 해주에는 ‘해주무용연구소’와 ‘봉산탈춤보존회’가 설립되었고 청진에는 거문고 연주자 지만수가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렇게 분산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족음악 예술가들을 규합하여 1947년 7월 5일에 창립한 것이 ‘조선고전악연구소’이다.
○ 설립 목적과 시기 조선고전악연구소는 조선 고전음악 유산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1947년 7월 5일에 설립되었다. 특히 민요와 창극의 전승 및 창작을 주요 목표로 삼았으며, 인민적 요소를 지닌 민요와 민속악을 중심으로 연주 활동과 학술 연구를 병행하였다. 이는 해방 이후 민족음악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문화적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조직적 시도였다.
○ 운영 주체와 구성원 초기 구성원으로는 평안도 출신의 서도 명창 김진명, 김관보, 충청도 출신의 해금 연주자 유대복, 청진에서 활동한 거문고 연주자 지만수 등이 참여하였다. 조직의 중심에는 나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함경도에서 활동했던 가야금 연주자 안기옥이 있었으며, 그는 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았다. 안기옥은 공훈배우로서 교향악과 가야금 합주를 통해 민족음악 발전에 기여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월북한 국악인 정남희, 박동실, 조상선, 공기남, 임소향 등이 합류하여 북한 민족음악계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 주요 활동 (공연 및 학술)
조선고전악연구소는 민요와 창극의 계승 및 창작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과 연구 활동을 전개하였다. 초기에는 <놀량사거리>, <배다라기>, <방아타령>, <영변가>, <수심가>, <창부타령>, <공명가> 등 서부·중부 지역의 민요와 재담, 가야금 병창을 공연하였으며, <계월향>, <박문수전>, <심청전> 등의 창극과 승무, 검무 등 전통 무용 작품도 함께 발표하였다. 창극 분야에서는 <춘향전>, <흥부전>(김영팔 작, 안기옥 작곡), <이순신 장군>, <박긴다리>, <장화홍련>(김진명 곡), <양반과 종>(지만수 작곡) 등 다양한 창작 작품이 발표되었으며, 기악 분야에서는 가야금 이중주, 기악 독주 및 합주, 민요곡창, 합창 등 폭넓은 프로그램을 창조하였다. 이러한 공연 활동은 고전음악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데 목적을 두었으며, 학술적으로는 고전음악의 체계화와 민속악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었다.
○ 역사적 변천 조선고전악연구소는 1945년 해방 직후 결성된 ‘한일가무단’의 활동을 기반으로, 민족음악 예술가들을 규합하여 1947년 7월 5일에 창립되었다. 이후 중앙 전문 예술단체들과의 협의를 거쳐 1948년 국립극장 창설과 함께 국립예술극장에 편입되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문화선전성 직속의 ‘고전악단’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7월에는 국립예술극장 소속의 ‘협률단’으로 재편되어 창극 창작과 기악 연주 활동을 강화하였으며, 민족 고전음악의 계승과 발전에 힘썼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월북한 국악인들이 합류하면서 조직의 규모와 영향력이 확대되었고, 1951년 협률단은 독립하여 ‘국립예술극장 고전악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52년에는 ‘국립고전예술극장’으로, 1956년에는 ‘국립민족예술극장’으로 개편되었으며, 1958년에는 단원 250여 명 규모의 대형 극장으로 성장하였다. 1990년에는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에서 생존해 있던 김진명, 김관보 등이 남한에 내려와 서도소리를 공연하며 남북 음악 교류의 상징적 장면을 연출하였다.
조선고전악연구소는 현재 북한 민족음악계의 뿌리에 해당하는 조직으로 평가된다. 그 중심에는 안기옥, 정남희, 박동실, 조상선, 공기남, 임소향 등 남도소리의 전문가였던 월북 국악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북한의 음악정책이 대중성과 현대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탁성의 남도소리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중요한 논의의 지점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북한 민족음악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결정짓는 데 있어 조선고전악연구소가 갖는 역사적·예술적 의의를 보여준다.
김수현,「조선음악』을 통해서 본 1950~60년대 북한의 민족음악유산 연구 양상」, 『통일인문학』 84,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2020. 남희철, 「북한 민족음악의 변천과정에 대한 고찰」, 통일인문학 64,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5. 배인교, 「1950-60년대 북한 전통음악인들의 활동 양상 검토 」, 『판소리연구』 28, 판소리학회, 2009. 배인교, 「북한 음악과 전통, 민족적 양식의 발견」, 한국민요학 45, 한국미요학회, 2015. 배인교, 「국립민족예술단과 북한의 민족음악」, 『국악원논문집』 47, 국립국악원, 2023. 한응민, 「국립민족예술극장 연혁」, 해방 후 조선음악,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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