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인 고산 윤선도가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해남 윤씨 가문에 전해지는 거문고.
요약
고산유금은 해남 윤씨 가문에 전해지는 거문고로 현재의 거문고보다 약간 작은 편이다. 거문고의 뒤판에 고산이 남긴 금을 뜻하는 ‘고산유금(孤山遺琴)’이라는 후손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윤선도가 연주하던 악기로 추정되며, 집안에서 대물림하여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판은 4개의 나무 편을 끼움 방식으로 조립하여 제작된 점이 특징이다.
○ 특이사항 : 명문
고산유금의 앞판에는 『고산유고(孤山遺稿)』에 실려 있는 ‘금객구시 위작금계(琴客求詩 爲作琴誡)’의 시 20자가 음각되어 있다. 앞판에 새겨진 명문은 다음과 같다.
嗜慾心中淨(기욕심중정) 탐욕이 마음에서 절제되면
天機指下鳴(천기지하명) 천기가 손가락 아래서 울려
可令山水興(가령산수흥) 산수의 흥취로 하여금 늘
存沒子期幷(존몰자기병) 종자기와 함께 하도록 할 것이네
‘금객구시’의 시구 밑에는 ‘부용병수 제증반금(芙蓉病叟 題贈伴琴)’이라 쓰여 있다. ‘부용병수(芙蓉病叟)’는 ‘부용동의 병든 늙은이’라는 뜻으로 윤선도가 보길도의 부용동 세연정에서 지낸 것에서 유래한 자호이다. ‘제증반금(題贈伴琴)’은 ‘반금에게 지어 주다’라는 뜻으로, ‘반금’은 거문고를 잘 탔던 권해(權海)의 호이다. 이 명문 바로 아래 부분에 ‘오세손준각(五世孫懏刻)’이라는 문구가 음각되어 있어 ‘고산유금’ 앞판에 음각을 한 사람이 고산 윤선도의 5세손이자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손자인 윤준(尹懏, 1720~1750)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앞판에는 명문 부분이 파손되어 ‘양중화(養中和)’만 나타나는데, 주자의 금시가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靜養中和氣(정양중화기) 고요히 중화의 기운 기르니
閑消忿慾心(한소분욕심) 성나고 욕심스런 마음이 사라진다
뒤판에는 ‘고산유금(孤山遺琴)’과 윤두서 장남인 낙서 윤덕희(尹德熙, 1685~1766)의 낙관(尹德熙印)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금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