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악(吳樂)
백제인 미마지(味摩之)가 오(吳) 지역에서 배워 일본에 전해 준 가면극.
불교 포교를 위한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가면극으로, 백제인 미마지가 오(吳) 지역에서 배워 612년 일본에 전해 주었다. 일본어로는 '기가쿠'라고 한다. 현재는 단절되었으나 기악의 탈과 고악보가 일본의 법륭사(法隆寺), 동대사(東大寺), 정창원(正倉院) 등 여러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악가록(樂家錄)』(1690)의 「기악지적상전(伎樂之笛相傳)」에 의하면 ‘기악(伎樂)’은 본래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였다. 그러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백제인 미마지가 일찍이 오 지역에서 기악무(伎樂舞)를 익히고 돌아와 612년(무왕 13) 일본에 건너가 사쿠라이(櫻井)에서 살면서 어린이들을 모아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어, 기악은 특정의 가면 연희극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기악은 ‘오악(吳樂)’이라고도 불렸다. 기악은 일본에서 쇼토쿠태자의 불교 진흥 정책과 외래 음악 장려책에 의해, 천황이 참석하는 대법회에서 행해져 불교 사원 음악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기악은 일본 조정의 음악을 관장하는 아악료(雅樂寮)에서 전승되어 일본 궁중 음악 및 외래 음악과 함께 중요한 행사에서 연행되는 등 8세기 중반에 최성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점차 쇠퇴하여 에도시대(1603~1868) 이후로 전승이 완전히 단절되었다. 현재 기악의 가면은 일본 나라(奈良)의 법륭사(法隆寺)와 동대사(東大寺), 황실의 보물 창고인 정창원(正倉院) 등에 7, 8세기의 것이 다수 남아있다.
『교훈초(敎訓抄)』(1233)에 의하면 기악의 구성은 사자(師子, 시시), 사자아(師子兒, 시시코), 치도(治道, 지도), 오공(吳公, 고코), 오녀(吳女, 고조), 금강(金剛, 곤코), 가루라(迦樓羅, 가루라), 곤륜(崑崙, 곤론), 역사(力士, 리키시), 바라문(波羅門, 바라몬), 태고(太孤, 다이코), 태고아(太孤兒, 다이코지), 취호왕(醉胡王, 스이코오), 취호종(醉胡從, 스이코주)으로, 가면을 쓰고 행렬하면서 무언(無言)으로 익살스럽게 연기하는 무용극이었다. 기악의 반주에는 횡적(橫笛, 요코부에), 요고(腰鼓, 요코), 정반(鉦盤, 쇼반)이 사용되었다. 『동대사요록』의 752년 대불개안공양회 기록에는 기악의 북(요고)를 연주하는 사람이 60명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9세기가 되면 연주자는 1/7로 현저하게 줄어들고, 이후 기악의 악기는 일본 아악(雅樂, 가가쿠)의 악기인 용적(龍笛, 류테키), 삼고(三鼓, 산노쓰즈미), 동발자(銅鈸子, 도밧시)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악기 편성의 변화는 기악이 아악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 것을 의미한다. 10세기경 일본 궁중 음악을 정리하는 악제 개혁에 의해 기악도 그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외래 음악은 중국계 음악인 좌방악과 한국계 음악인 우방악으로 나뉘게 되는데, 기악은 여기에서 제외되어 점차 궁중과는 멀어져 쇠퇴하는 결과를 맞는다. 외래 악기의 정리에 의해 기악에서 사용하던 요고와 한반도계 횡적은 각각 삼고와 용적으로 바뀌게 되었고, 중국식 음계가 일본식 음계로 정리됨으로써 한국적 음악의 특색을 가진 기악은 일본적인 취향의 음악으로 변질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궁중 음악을 관현으로 연주하는 형태가 만들어짐에 따라, 기악도 무용을 수반하지 않은 관현으로 연주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기악이 관현의 형태로 연주됨에 따라서, 원래 기악의 행렬 가장 앞에서 길을 이끄는 역할을 한 것을 보이는 〈치도〉가 생략되게 되었고, 이 대신 일본 아악(가가쿠)의 관현에서 본곡 앞에 연주하는 서곡 〈음취(音取, 네토리)〉가 기악의 악곡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13세기 이후의 악서와 악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10세기 초까지 기악의 연주 곡목은 최대 14곡까지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9곡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10세기 중반 이후 사료에서 보이지 않는 곡은 〈치도〉, 〈오녀〉, 〈사자아〉, 〈태고아〉, 〈취호종〉으로, 주로 주된 악곡 뒤에 따르는 자식(兒)이나 종(從)과 같은 역할이다. 14세기에 이르며 기악에서 동발자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17세기 말에는 타악기도 쓰이지 않고 관악기 적으로만 연주하는 형태가 되어, 초기의 융성했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모되었다.
현재 기악의 악곡을 전하고 있는 고악보로는 후에보(笛譜) 『신찬악보(新撰樂譜)』(966), 『회중보(懷中譜)』(1095), 『기악보(妓樂譜)』(1294)와 비와보(琵琶譜) 『천감악(天感樂)』(1170), 고토보(箏譜) 『인지요록(仁智要錄)』(1192 이전)가 있다. 이 중 『신찬악보』에는 기악이 목차만 기재되어 있고, 『회중보』에는 〈사자〉 1곡만 수록되어 있다. 그 외 악보에는 9곡의 기악 악곡이 수록되어 있다. 『천감악(天感樂)』(1170) 기악곡 9곡: 〈사자〉, 〈오공〉, 〈금강〉, 〈가루라〉, 〈곤륜〉, 〈역사〉, 〈바라문〉, 〈대고〉, 〈취호〉 『인지요록(仁智要錄)』(1192 이전) 기악곡 9곡: 〈사자〉, 〈오공〉, 〈금강〉, 〈역사〉, 〈가루라〉, 〈곤륜〉, 〈바라문〉, 〈대고〉, 〈취호〉 『기악보(妓樂譜)』(1294) 기악곡 9곡: 〈사자〉, 〈오공〉, 〈금강〉, 〈가루라〉, 〈바라문〉, 〈곤륜〉, 〈역사〉, 〈대고〉, 〈취호〉 기악에서 사용한 악기는 초기에는 횡적(橫笛, 요코부에), 요고(腰鼓, 요코), 정반(鉦盤, 쇼반)이었으나 이것은 추후 횡적, 삼고(三鼓, 산노쓰즈미), 동발자(銅鈸子, 도밧시)로 바뀌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선율 악기로는 후에만이 사용된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천감악』과 『인지요록』은 현악기 악보이지만 이는 후에의 선율을 현악기로 나타낸 것일 뿐 기악에 이 악기들이 사용된 것은 아니다. 기악의 악조는 일월조(壹越調, 이치코쓰조), 평조(平調, 효조), 반섭조(般涉調, 반시키조)의 세 종류이고, 종지음은 각 악조의 궁(d, e, b)과 일치한다.
한국에서는 기록으로 전하는 기악과 한국 산대가면극과의 비교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최근에는 백제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기악의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 백제문화제에서 공연된 바 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여러 사찰에 소장된 기악 탈과 악서 등의 기록을 근거로 탈과 연희의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기악의 공연으로도 이어졌다.옛 악보를 통해 복원된 기악의 음악이 공연에 적용된다면 고대 종합공연예술로서의 기악 복원의 내용이 더욱 충실하고 유의미해질 것이다.
『교훈초(敎訓抄)』 『기악보(妓樂譜)』 『신찬악보(新撰樂譜)』 『악가록(樂家錄)』 『인지요록(仁智要錄)』 『천감악(天感樂)』 『회중보(懷中譜)』
백제기악보존회 편, 『백제기악』, 동문선, 2007. 서연호, 「미마지 기악의 일본 전파에 관한 재론 -くれ(吳)의 故地를 中心으로」, 『Journal of Korean Culture』 17,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2011. 이지선, 「기악의 변모 양상 -악기 편성과 곡목을 중심으로-」, 『국악원논문집』 26, 국립국악원, 2012. 이지선, 「기악의 음악 복원에 관한 시론 -13세기 이전 사료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 49, 한국음악사학회, 2012. 이혜구, 「산대극과 기악」,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임혜정, 「일본에서 전개된 기악(伎樂) 복원 작업에 대한 고찰」, 『한국음악사학보』 56, 한국음악사학회, 2016.
이지선(李知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