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악(吳樂)
7세기 초에 형성된 가면극 중심의 무언 연희극으로, 불교 의식에서 비롯되어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공연예술 양식.
기악(伎樂)은 7세기 초 백제인 미마지가 중국 오(吳) 지역에서 익힌 불교 연희를 일본에 전하면서 형성된 가면극 중심의 무언 연희극이다. 『교훈초』에 기록된 다양한 등장 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행렬하며 익살스럽게 연기하였고, 초기에는 횡적·요고·정반 등으로 반주되었다. 이후 일본 아악의 영향으로 악기 편성과 연주 방식이 변화하였으며, 10세기 이후 궁중 음악 체계에서 제외되며 점차 쇠퇴하였다. 13세기 이후에는 곡목이 축소되고, 17세기 말에는 관악기 중심의 연주로 변모하여 원래의 무용극적 성격은 희미해졌다.
기악(伎樂)은 본래 불교 의식에서 사용된 연희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로, 중국 남조 오(吳) 지역에서 불교 포교와 의례를 위한 연행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백제인 미마지(味摩之)가 오 지역에서 익힌 음악을 일본에 전하면서, 일본에서는 이를 ‘오악(吳樂)’ 또는 ‘기악(伎樂)’이라 불렀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미마지는 612년(백제 무왕 13)에 일본에 건너가 사쿠라이(櫻井)에 거주하며 어린이들을 모아 기악무(伎樂舞)를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기악은 단순한 의식 음악을 넘어 가면을 쓰고 무언으로 연기하는 연희극으로 변모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악은 쇼토쿠(成德)태자의 불교 진흥 정책과 외래 음악 장려책에 따라 궁중과 사찰에서 연행되었고, 천황이 참석하는 대법회에서도 공연되는 등 불교 사원 음악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 구성과 절차 『교훈초(敎訓抄)』(1233)에 의하면 기악의 구성은 사자(師子, 시시), 사자아(師子兒, 시시코), 치도(治道, 지도), 오공(吳公, 고코), 오녀(吳女, 고조), 금강(金剛, 곤코), 가루라(迦樓羅, 가루라), 곤륜(崑崙, 곤론), 역사(力士, 리키시), 바라문(波羅門, 바라몬), 태고(太孤, 다이코), 태고아(太孤兒, 다이코지), 취호왕(醉胡王, 스이코오), 취호종(醉胡從, 스이코주)으로 구성되며, 가면을 쓰고 행렬하면서 무언(無言)으로 익살스럽게 연기하는 무용극이었다. ○ 반주 음악 기악의 반주에는 초기에는 횡적(橫笛, 요코부에), 요고(腰鼓, 요코), 정반(鉦盤, 쇼반)이 사용되었으며, 『동대사요록』의 752년 대불개안공양회 기록에는 요고 연주자가 60명에 달했다. 그러나 9세기경에는 연주자가 1/7 수준으로 줄어들고, 이후 일본 아악(雅樂)의 영향으로 악기는 용적(龍笛, 류테키), 삼고(三鼓, 산노쓰즈미), 동발자(銅鈸子, 도밧시)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악기 편성의 변화는 기악이 아악의 체계 아래 편입되었음을 보여준다. ○ 악보와 악곡 기악의 악곡은 후에보(笛譜) 『신찬악보(新撰樂譜)』(966), 『회중보(懷中譜)』(1095), 『기악보(妓樂譜)』(1294)와 비와보(琵琶譜) 『천감악(天感樂)』(1170), 고토보(箏譜) 『인지요록(仁智要錄)』(1192 이전)에 전한다. 『신찬악보』에는 목차만, 『회중보』에는 〈사자〉 1곡만 수록되어 있으며, 나머지 악보에는 9곡이 공통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 『천감악』: 〈사자〉, 〈오공〉, 〈금강〉, 〈가루라〉, 〈곤륜〉, 〈역사〉, 〈바라문〉, 〈대고〉, 〈취호〉 • 『인지요록』: 〈사자〉, 〈오공〉, 〈금강〉, 〈역사〉, 〈가루라〉, 〈곤륜〉, 〈바라문〉, 〈대고〉, 〈취호〉 • 『기악보』: 〈사자〉, 〈오공〉, 〈금강〉, 〈가루라〉, 〈바라문〉, 〈곤륜〉, 〈역사〉, 〈대고〉, 〈취호〉 선율 악기로는 후에만이 사용되었으며, 『천감악』과 『인지요록』은 현악기 악보지만 이는 후에의 선율을 현악기로 기록한 것으로, 실제 기악에 비와나 고토가 사용된 것은 아니다. 기악의 악조는 일월조(壹越調), 평조(平調), 반섭조(般涉調)의 세 종류이며, 종지음은 각 악조의 궁(d, e, b)과 일치한다. ○ 역사적 변천 기악은 일본 전래 유입기를 거쳐 일본 조정의 음악을 관장하는 아악료(雅樂寮)에서 전승되며, 궁중 음악 및 외래 음악과 함께 중요한 행사에서 연행되었고 8세기 중반에 최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0세기경 궁중 음악을 정리하는 악제 개혁에 따라 기악도 그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고, 궁중에서 연주되던 외래 음악은 중국계 좌방악과 한국계 우방악으로 나뉘게 되면서 기악은 이 분류에서 제외되어 점차 궁중과 멀어져 쇠퇴하였다. 외래 악기의 정리에 따라 기악에서 사용하던 요고와 한반도계 횡적은 각각 삼고와 용적으로 바뀌었고, 중국식 음계가 일본식 음계로 정리되면서 한국적 음악의 특색을 지닌 기악은 일본적 취향의 음악으로 변질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궁중 음악이 관현으로 연주되는 형태로 정비되면서, 기악도 무용을 수반하지 않은 관현 연주로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원래 행렬의 선두에서 길을 이끌던 〈치도〉가 생략되고, 대신 일본 아악의 서곡인 〈음취(音取, 네토리)〉가 기악 악곡 앞에 배치되었다. 13세기 이후의 악서와 악보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확인되며, 10세기 초까지 최대 14곡이었던 기악의 연주 곡목은 이후 9곡으로 축소되었다. 10세기 중반 이후 사료에서 보이지 않는 곡은 〈치도〉, 〈오녀〉, 〈사자아〉, 〈태고아〉, 〈취호종〉 등으로, 이는 주된 악곡 뒤에 따르는 자식(兒)이나 종(從)의 역할을 가진 곡들이다. 14세기에 이르러 기악에서는 동발자가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17세기 말에는 타악기도 쓰이지 않고 관악기 중심으로만 연주되는 형태로 변화하여, 초기의 융성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모하였다.
기악은 불교 의식에서 비롯된 연희가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되어 가면극 중심의 무언 연희극으로 발전한 공연예술 양식으로,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에서는 기록으로 전하는 기악과 산대가면극 간의 비교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최근 백제문화에 대한 관심 속에서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 백제문화제에서 공연된 바 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여러 사찰에 소장된 기악 탈과 악서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탈과 연희의 복원이 이루어졌고, 공연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옛 악보를 통해 복원된 기악 음악이 실제 공연에 적용될 경우, 고대 종합공연예술로서의 기악 복원은 더욱 충실하고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교훈초(敎訓抄)』 『기악보(妓樂譜)』 『신찬악보(新撰樂譜)』 『악가록(樂家錄)』 『인지요록(仁智要錄)』 『천감악(天感樂)』 『회중보(懷中譜)』
백제기악보존회 편, 『백제기악』, 동문선, 2007. 서연호, 「미마지 기악의 일본 전파에 관한 재론 -くれ(吳)의 故地를 中心으로」, 『Journal of Korean Culture』 17,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2011. 이지선, 「기악의 변모 양상 -악기 편성과 곡목을 중심으로-」, 『국악원논문집』 26, 국립국악원, 2012. 이지선, 「기악의 음악 복원에 관한 시론 -13세기 이전 사료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 49, 한국음악사학회, 2012. 이혜구, 「산대극과 기악」,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임혜정, 「일본에서 전개된 기악(伎樂) 복원 작업에 대한 고찰」, 『한국음악사학보』 56, 한국음악사학회, 2016.
이지선(李知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