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에 창제된 《봉래의》 정재에 속하는 곡명으로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에 부르던 곡.
세종대왕이 창제한 《봉래의》 정재에 속하는 곡으로 건국서사시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노래이다. 《봉래의》는 ‘〈전인자〉-〈진구호〉-〈여민락〉-〈치화평〉-〈취풍형〉-〈후인자〉-〈퇴구호〉’로 구성되는데, 〈여민락〉은 한문시 〈용비어천가〉를 부른 것이고, 〈치화평〉과 〈취풍형〉은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를 부른 것이다. 노랫말의 붙임새와 리듬이 다른 〈치화평〉 1, 2, 3이 있다.
〈치화평〉은 세종 27년에 〈용비어천가〉 노랫말이 제작된 이후 세종 29년 무렵, 〈용비어천가〉를 관현반주에 올려 부르는 《봉래의》를 구성하는 악무로 만들어졌다. 〈치화평〉과 〈취풍형〉은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를 노래하지만, 선율 및 리듬이 다르게 작곡되었다.
○ 개요 〈치화평〉은 세종 27년에 〈용비어천가〉가 제작된 이후, 그것을 관현반주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는 큰 모음곡 형태인 《봉래의》를 구성하는 악무로 만들어졌다.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 125장 전체를 노래하는 음악이면서 악(樂)ㆍ가(歌)ㆍ무(舞) 종합적 형태를 띠는 정재이다. ○ 음악적 특징 〈치화평〉은 〈취풍형〉과 마찬가지로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 125장을 모두 노래하지만, 가사붙임과 선율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치화평〉에서 2행을 차지하는 노랫말이 〈취풍형〉에서는 1행에 촘촘히 붙어 있고, 박(拍)이 매 행에 한 번 들어간다. 가사붙임새와 1행에 박이 2번 들어가는 〈취풍형〉에 비해 〈치화평〉이 더 늦은 한배로 연주된 것으로 추측된다. 〈치화평〉의 선율은 남려(南: C4)가 중심음이 되는 평조로 되어 있다. 『세종실록악보』에 〈치화평〉은 제1기(機)ㆍ제2기ㆍ제3기 세 가지 형태로 전하는데, 노랫말의 붙임새와 리듬에 차이가 있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치화평〉은 『세종실록악보』에 《봉래의》를 구성하는 악보 중에 전한다. 〈여민락〉과 〈취풍형〉 사이에 위치한 〈치화평〉은 가사붙임과 선율 등 곡태가 다른 3종의 악보가 있다. 〈치화평〉상(1)ㆍ〈치화평〉중(2)ㆍ〈치화평〉하(3)은 모두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 125장을 노래하고, 선율의 흐름은 비슷하지만, 제1기가 제2기, 제3기에 비해 한 행에 들어 있는 음이 많으며, 말을 짧게 붙이고 소리를 길게 끄는 어단성장(語短聲長)의 가사붙임이 특징적이다. 『세종실록악보』에는 〈치화평〉의 춤에 대한 내용은 없고,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향악정재 중 하나로 소개된 《봉래의》 절차에 따른 〈치화평〉의 음악과 춤 내용이 있다. 《봉래의》 정재에서는 〈여민락〉이 『세종실록악보』에 수록된 초장부터 제4장까지와 졸장 전체(음악상으로는 10장)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치화평〉은 〈용비어천가〉 125장이 모두가 포함된 제1기ㆍ제2기ㆍ제3기 중 제3기만 연주하고, 제3기 중에서도 초장부터 제16장까지와 졸장(125장)만을 연주한다. 『대악후보(大樂後譜)』 중에도 〈치화평〉의 악보가 전하는데, 『세종실록악보』의 정간보에 율명을 기보한 방식과 달리 오음약보를 사용하였으며, 『세종실록악보』에 실린 곡 중 일부 선율만이 전한다. 또한 제1기와 제2기에는 노랫말이 없고, 제3기에만 노랫말이 있다. 제1기와 제2기는 악보가 매우 짧은데 비해, 〈치화평〉은 졸장을 제외하고 제1장부터 제16장(逃亡章)까지의 악보가 있다. 이는 『악학궤범』에서 〈치화평〉 제1과 제2는 쓰지 않고, 제3기만을 사용하던 관행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세종실록악보』에는 제1기ㆍ제2기ㆍ제3기 각 곡의 기악대강(起樂大綱) 즉, 음악이 시작하는 대강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지만, 『대악후보』에는 제1기와 제2기는 제2대강에서 시작하고, 제3기는 제3대강에서 시작하는 차이가 잘 나타나 있다. ○ 노랫말 〈치화평〉은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를 노래한다. 노랫말 중 그 일부에 해당하는 제1장, 제2장, 제125장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1장 | 海東六龍이 샤 일마다 天福이시니 古聖이 同符시니 |
해동에 여섯 용이 나시니 모두 하늘이 도운 바로 옛 성인의 일과 일치하셨도다. |
| 2장 |
불휘기픈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뮐ᄊᆞ 곶됴코 여름ᄒᆞᄂᆞ니 미기픈 므른 ᄀᆞᄆᆞ래 아니그츨ᄊᆞ 내히이러 바ᄅᆞ래 가ᄂᆞ니 |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꽃 좋고 열매가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않으니 시내를 이루고 바다로 가나니 |
| 3장 | 千世 우희 미리 定ᄒᆞ샨 漢水北에 累仁開國ᄒᆞ샤 卜年이 ᄀᆞᇫ 업스시니 聖神이 니ᅀᆞ샤도 敬天勤民ᄒᆞ샤ᅀᅡ 더욱 구드시리이다 님금하 아ᄅᆞ쇼셔 洛水예 山行 가 이셔 하나빌 미드니ᅌᅵᆺ가 |
천세에 미리 정하신 한강 북쪽에 여러 대에 걸쳐 어진 덕을 쌓아 나라를 여시어 왕조가 끝이 없으시니, 성신이 이으셔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부지런하셔야 더욱 굳으시겠습니다. 임금이여, 아소서. 태강왕처럼 낙수에 사냥을 가 있으면서 조상만 믿으시겠습니까? |
| ※원문 출처: 『세종실록악보』, 『악학궤범』 | ||
〈치화평〉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봉래의》 중 한 부분으로 국한문체의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던 음악이라는 점에서 순한문체의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던 〈여민락〉과 비교된다. 동일한 노랫말을 사용하면서 말붙임새와 리듬에 차이를 둔 3가지 형태의 곡을 통해 세종 창제 당시 향악의 변주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대악후보(大樂後譜)』 『세종실록악보(世宗實錄樂譜)』 『악학궤범(樂學軌範)』 『여령정재무도홀기(女伶呈才舞圖笏記)』
조규익ㆍ문숙희ㆍ손선숙, 『세종대왕의 봉래의, 그 복원과 해석』, 민속원, 2015. 강혜진, 「〈진작3〉과 〈치화평3〉의 선율과 형식」, 『국악원논문집』 9, 2020. 김종수, 「세종조 신악의 전승 연구」, 『온지논총』 3, 1997. 변계원, 「치화평1ㆍ2ㆍ3과 취풍형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4. 손선숙, 「『악학궤범』 봉래의 치화평무의 복원 및 재현을 위한 고무고(古舞譜) 고찰」, 『한국무용기록학회지』 25, 2012. 이혜구, 「치화평과 진작」, 『동방학지』, 54ㆍ55ㆍ56 합본집, 1987; 『한국음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재수록. 정화순, 「치화평 배자 방법에 관하여, 『청예논총』 9, 1995.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