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무용(古典舞踊)이라는 용어는 1920년대부터 전개된 서양 문물에 대응하는 조선 고유의 고전에 대한 인식을 배경으로 형성되었고,1930~1960년대에 주로 사용되었다. 고전무용(古典舞踊)의 실제는 조선 시대로부터 전승된 춤들로, 궁중무와 승무, 검무, 입춤 등의 기녀들이 추었던 춤들과, 농악, 탈춤, 무속춤 등을 지칭했다. 한성준이 주도한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1938~1941년의 공연들에 대해 언론들은 고전무용(古典舞踊)의 정수라고 표현했다. 다만 1950년대에 외형적으로 전통춤과 유사한 최승희, 조택원이 양식화한 신무용 계열의 춤들도 한시적으로 포함했다. 고전무용(古典舞踊)이라는 용어가 서양 문물에 대응하는 조선 고유의 춤들을 지칭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전통무용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면서 고전무용(古典舞踊)의 용어는 퇴조하였다.
○ 형성 과정고전 무용(古典舞踊)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에 신무용가 최승희와 조택원의 공연을 언급하며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신무용가로서 서양춤을 도입했는데, 조선의 고전 무용(古典舞踊)을 근대식 무용으로 표현하거나, 조선의 고전 무용(古典舞踊)을 새로 개척해 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활동한 박영인도 기회를 보아 조선 고전 무용(古典舞踊)의 연구도 해 보겠다고 했다. 이들은 모던 댄스를 추는 무용가들로서 조선의 고전 무용(古典舞踊)을 인식하며 이를 소재로 작품화하고자 했던 것이다.이렇게 학계와 문화계에서 고전 부흥 운동이 전개되고 고전 무용(古典舞踊)이 언급되는 중에, 한성준이 1937년에 조직한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춤들을 고전 무용(古典舞踊)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조선악과 고전 무용(古典舞踊)은 우리 조선(祖先)의 호흡이 숨어 있고 우리의 성품과 감정이 물결치고 있는 것이라고(『조선일보』 1938. 1. 6.) 하면서,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공연을 “조선의 유일한 고전 예술인 고전무 용의 밤을 가지기로 하였다.”(『조선일보』 1938. 6. 19.)라든가, “오늘 밤 춤의 무대는 열린다. 고전 무용의 호화판”(『조선일보』 1940. 2. 27.)이라고 소개했다.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춤들을 고전 무용의 정수라고 대대적으로 기사화했다.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프로그램은 <승무>, <검무>, <살풀이춤>, <태평무>, <상좌무>, <사호락유>, <급제무>, 무극 <한량무>, <단가무>, <신선악> 등이었다. 이전부터 기생과 재인들이 추면서 전승된 조선 고유의 춤들과, 조선 고유의 춤으로서 고전이라 할만한 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도 있었다. 이 춤들은 한성준이 19세기 후반에 배웠고, 기생들이 추었던 조선 춤들이었다. 최승희와 조택원이 모던 댄스의 기법으로 양식화한 신무용과는 차별성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춤들을 ‘고전 무용(古典舞踊)’이라 칭했던 것이다.
○ 전개 과정광복 후에도 고전 무용(古典舞踊)의 용어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8ㆍ15 기념 음악과 무용의 밤’에 “악극과 명창 대회 국악원의 남녀 명창 수십 명이 민족적 자랑인 정통 고전 가무를 피로한다.”(한성일보 1946. 7. 28. 2면)라 했고, 인천 우리예술관 주최로 ‘제1회 조선고전무용강습회’에서 김보남을 초빙하여 고전 무용 해설과 실기를 강습한다고 했다(대중일보 1947. 7. 17.). 또 김윤학고전무용발표회에서 화랑무와 흥무 등을 공연했다(동아일보 1949. 5. 16.). 고전예술대제전에 전주 정읍 농악대 동양제일의 줄타기王 김영철군 특별출연 춘향전 등을 선보인다고 했다(영남일보 1949. 6. 21.). 서양의 공연예술이 아닌 조선 고유의 국악, 전통춤, 연희 등을 고전가무, 고전무용, 고전예술이라고 칭하고 범주화했던 것이다. 그리고 1949년에 문교부가 예술위원회를 설치하면서, 무용분과와 함께 고전예술분과도 구분했다. 여기서 무용분과의 장르는 모던댄스・ 발레・ 신무용이었으며, 고전예술분과의 장르는 국악・전통춤・탈춤・농악 등의 전통공연예술인 것으로 보인다.한국전쟁 후에도 고전무용(古典舞踊)이라는 용어는 사용되었다. 1952년 ‘음악 및 무용의 밤’에서 박귀희와 김소희는 고전무용과 창극을 했으며, 1953년에 전통무용가인 강선영은 고전무용발표회를 연다고 했다. 그리고 1954년에 ‘8・15 해방 9주년기념무용발표회’에서 고전무용으로부터 현대무용, 발레에 이르기까지 발표한다고 했다. 즉 고전무용(古典舞踊)이라는 용어는 현대무용이나 발레와는 다른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춤을 말한 것이다. 한편 궁중무와 민속춤을 아울렀던 김천흥(1909~2007)은 1950년대에 고전무용(古典舞踊)을 우리 민족무용 중 하나로 분류하면서, 고전무용(古典舞踊)을 궁중무로 설명했다. 이 경우 즉흥적이고 가변적으로 추는 민속춤이 아니라 전범(典範)이 있는 궁중무를 고전무용(古典舞踊)이라 분류한 것이다.그런데 1956년에 김백봉은 ‘김백봉고전무용발표회’를 열며 부채춤, 장고춤, 무용극 우리마을 이야기 등을 공연했다.1958년 김문숙은 무용발표회에서 기원, 성황당, 수평선, 토끼와 거북이 등을 춤추었는데 그녀를 고전무용가로 소개했다. 김백봉과 김문숙의 작품들은 모던댄스의 기법으로 전통춤을 소재로 추는 신무용 스타일이었다. 또 1965년 유인희고전무용발표회에서 사선무, 무애무, 춤추는 무당 등을 선보이며 고전무용을 발표한다고 했다. 1969년 국립무용단 공연에 올려진 무용극 모란정과 무용극 봉선화도 고전무용으로 소개했다. 즉 1950년대 후반부터 전통춤 뿐만이 아니라 신무용 스타일의 작품들도 고전무용(古典舞踊)의 범주에서 언급되었다. 서양춤에 대응하는 의미로 고전무용(古典舞踊)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전통문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1970년대부터 전통무용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고전무용(古典舞踊)의 용어는 퇴조하게 되었다.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