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포 류홍원의 현금
1717년 낙산사 이화정의 쓰러진 오동나무로 1726년에 제작되어 전주 류씨 가문에서 전해 내려온 거문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양금은 1717년 낙산사 이화정 근처에서 쓰러진 오동나무로 1726년에 제작된 거문고로, 류경시가 양양부사로 있을 때 한 노인에게서 받았다. 손자인 류홍원이 수리하며 〈제금가〉를 새겼고, 후손 류휘문이 다시 개수하였다. 앞판은 오동나무, 뒷판은 밤나무로 제작되었으며, 현재는 한국학진흥원에 기탁ㆍ소장되어 있다.
안동 전주 류씨 가문에는 거문고 ‘양양금’과 『창랑보(滄浪譜)』(일명 어은보(漁隱譜))가 함께 전해진다. 양양금은 함벽당 류경시(柳敬時, 1662∼1737)가 양양부사로 재직할 때 한 노인에게서 받은 거문고로, 1717년 낙산사 이화정 근처에서 바람에 쓰러진 오동나무를 사용해 1726년에 제작된 것이다. 노인은 부사의 덕을 기리기 위해 이 거문고를 헌상하였으며, 재목이 양양의 오동나무였던 데서 ‘양양금’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악기는 집안의 유일한 거문고로 전승되었으나 세월이 흐르며 훼손되었고, 손자 강포 류홍원(柳弘源, 1716∼1779)이 이를 수리하면서 복판에 시 〈제금가(題琴歌)〉를 새겼다. 이 내용은 『강포문집』에도 전한다. 류홍원 사후 양양금은 종가를 거쳐 류휘문(柳徽文, 1773∼1827)에게 전해졌으며, 그는 1810년에 다시 개수하고 달 밝은 밤마다 이를 타며 거문고 소리를 즐겼다고 전한다.
① 역사적 변천 및 현황 양양금은 함벽당 류경시가 양양부사로 재임하던 1727년, 한 노인에게서 헌상받은 거문고로 전해진다. 이 악기는 1717년 낙산사 이화정 근처에서 바람에 쓰러진 오동나무로 1726년에 제작된 것으로, 그 재목이 양양의 오동나무였던 데서 ‘양양금’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손자 강포 류홍원이 훼손된 악기를 수리하고 복판에 금명(琴銘)을 새겼는데, 그 내용은 『강포문집』에 〈제금가(題琴歌)〉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또 그의 후손 류휘문도 1810년에 다시 개수하고 연주하였다는 기록이 『호고와집』에 남아 있다. 현재 양양금은 전주 류씨 함벽당 종가에서 전승되어 한국학진흥원에 기탁ㆍ소장되어 있으며, 원래의 줄은 남아 있지 않고 괘 16개, 안족 2개, 돌괘 1개만이 원형을 유지한다.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국립국악원 개원 60주년 기념 특별전」 출품을 앞두고 보수되었으며, 조선 후기 거문고 제작과 전승의 실체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학계의 재조명을 받고 있다. ② 형태와 구조 ○ 일반적 형태 양양금은 전통적인 거문고의 구조를 완비한 악기로, 앞판에는 좌단(坐團), 현침(絃枕), 대모(玳瑁), 학슬(鶴膝), 봉미(鳳尾)가 갖추어져 있으며, 뒷판에는 세 개의 울림구멍(共鳴口)과 운족(雲足)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조선 후기 거문고의 표준적인 형태를 잘 보여준다. ○ 제작재료 오동나무(앞판), 밤나무(뒷판) ○ 규격 2011년 복원된 양양금의 전체 길이는 약 165.0cm, 너비는 약 21.0cm ○ 보존 사항 현재 원래의 줄은 남아 있지 않으며, 괘 16개와 안족 2개, 돌괘 1개만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국립국악원 개원 60주년 기념 특별전」 출품을 앞두고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외형과 구조의 원형을 가능한 한 유지하도록 복원되었다. ③ 특이사항: 금명(琴銘) 양양금 뒷판에는 봉미 쪽에 〈증금옹(贈琴翁)〉, 좌단 쪽에 〈제금복(題琴腹)〉이라는 두 편의 시가 초서로 새겨져 있다. 이 두 시는 본래 명필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소장하던 ‘봉래금(蓬萊琴)’에 새겨져 있던 것으로, 류홍원이 그 전통을 계승하여 자신의 거문고에 새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시는 류홍원이 제작한 거문고 악보집 『창랑보』의 제2면과 뒷표지에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거문고라는 실물 악기와 악보가 결합된 문인음악의 상징적 미학을 잘 보여준다. <증금옹〉 녹기금백아심(綠綺琴伯牙心) 녹기금 타는 백아의 마음으로 종자시지음(鍾子始知音) 종자기가 비로소 그 소리를 알아듣네. 일고복일음(一鼓復一吟) (백아가) 한 번 타니 (종자기가) 한번 읊조리며 냉냉허뢰(冷冷虛籟) 기요잠(起遙岑) 거문고 소리 먼 산에 울리고 강월연연강수탐(江月娟娟江水深) 강달처럼 아름답고 강물처럼 깊도다. 〈제금복〉 영롱석상동(玲瓏石上桐) 영롱한 바위 틈에서 자란 오동나무 거문고, 일고일음오십춘(一鼓一音五十春) 한 번 타고 한 번 읊조리니 오십 해가 흘렀네. 당시종자기아거(當時鍾子棄我去) 그 옛날 종자기가 나를 떠나버리니, 옥진금휘생소진(玉軫金徽生素塵) 옥돌괘 금휘 안에 흰 먼지만 쌓였구나. 양춘백설광릉산(陽春白雪廣陵) 〈양춘곡〉과 〈백설곡〉, 〈광릉산〉의 선율을, 당기봉래산수인(倘寄蓬萊山水人) 봉래산 물가의 신선에게 부치노라.
류홍원의 거문고로 전하는 양양금은 제작과 전승 과정이 『강포문집』과 『호고와집』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문헌과 실물이 함께 전하는 드문 사례로 학술적 가치가 크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거문고의 제작ㆍ수리ㆍ연주 양상을 실증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문인층의 음악관과 풍류문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류홍원이 수리한 양양금과 그가 편찬한 거문고 악보 『창랑보』는 개인이 연주한 악기와 악보를 함께 남긴 거의 유일한 예로, 조선 후기 문인음악의 미학과 거문고 문화의 정신적 전통을 입증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강포 류홍원의 현금 및 어은보: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1999)
『강포문고(江浦文集)』 『호고와집(好古窩集)』 『창랑보(滄浪譜)』(일명 어은보(漁隱譜))
국립국악원 편, 『우리악기, 우리음악』, 국립국악원, 2011. 최선아, 「『창랑보』를 통해 본 18세기 안동 풍류의 내용과 성격」, 『동양음악』 49, 2021.
주재근(朱宰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