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제향과 연향에서 열을 지어 대형을 짓거나 다른 대형으로 전환하는 춤의 방식이자 기법.
철조에서 ‘철(綴)’은 춤추는 열(列)이 이어진 것이고, ‘조(兆)’는 춤추는 자리 주위의 영역을 말한다. 일무(佾舞)에서 열을 지어 춤춘다든가, 궁중무의 초입에서 무원(舞員)들이 작대(作隊)하는 것, 작대한 대형을 다른 대형으로 바꾸는 것을 철조라고 한다. 중국 고대부터 철조는 춤의 방식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여러 연향에서 철조를 지속적으로 실행하였다. 철조는 현재 전승되고 있는 궁중 악무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며, 우리 춤의 중요한 방식이고 기법이며, 이를 설명한 개념이다.
철조는 중국 고대의 춤에서 이미 행해졌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고로 종(鍾) 고(鼓) 관(管) 경(磬)과 우(羽) 약(籥) 간(干) 척(戚)은 악무의 도구이고[故鍾鼓管磬羽籥干戚, 樂之器也], 몸을 굽히고 피는 동작, 아래를 봤다가 위를 우러르는 동작, 대열과 동선을 만드는 동작, 빠르거나 느린 동작은 악무의 문양이다.[屈伸俯仰, 綴兆舒疾, 樂之文也.]”라고 하였다. 춤의 방법으로 굴신(屈伸), 부앙(俯仰), 서질(舒疾)과 함께 철조가 실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명나라 때 간행된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에서 ‘철(綴)’은 춤추는 사람들의 줄과 자리가 서로 이어진 것이고[綴舞者行位, 相連綴也], ‘조(兆)’는 춤추는 자리 주위 영역이다.[兆位外之營兆也]라고 설명했다. 철조는 일무(佾舞)에서 열을 지어 춤춘다든가, 궁중무의 초입에서 작대(作隊)하고, 다시 2열이나 원형의 대형으로 바꾸는 춤의 방식을 말한다.
또한 송나라 때 간행된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교학(敎學)」에서 “옛 사람은 노래로 성정을 기르고, 음악으로 이목을 기르고, 무도로 혈맥을 길렀다.[古人有歌詠以養其性情, 聲音以養其耳目, 舞蹈以養其血脈] …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밟는 데 있어서 깃털과 피리와 방패와 도끼의 도구를 잡고서 굴신과 부앙, 철조와 서질의 문채를 익힌다.[至於手之舞, 足之蹈, 執其羽籥干戚之器, 習其屈伸俯仰綴兆舒疾文]” 고 하였다. 즉 팔과 다리로 춤추는 데 있어서 굴신 부앙 서질과 함께 철조의 다양한 방식을 익히고 행하면 사람의 혈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에도 춤의 방식으로 철조(綴兆)가 행해졌다. 조선시대 악무(樂舞)의 사상과 원리를 설명한 『악학궤범』 「서」에 “춤추는 것과 춤추는 대열을 만들고 전진하며 후퇴하는 절차가 구비하여 기록되지 않음이 없다.[舞蹈綴兆進退之節。無不備載]”고 했으니, 철조는 조선시대 춤에서 중요한 방식으로서, 무원들이 열을 지어 만든 대형 자체와 대형의 변화 과정은 중요한 표현, 즉 춤이 보여 준 문채(文彩)의 하나였던 것이다.
<정대업지무>는 철조를 잘 보여 주는 춤이다. 이 춤은 세종 27년(1445)에 조선 건국의 과정을 창작한 무무(武舞)로, 오방색의 갑옷을 입고 칼, 창, 활과 화살을 든 춤꾼들이 초입 배열 후에 다섯 가지 진(陳)을 표현한다. 방진(方陣), 원진(圓陣), 직진(直陣), 예진(銳陣), 곡진(曲陣)을 만드는데, 무원(舞員)들이 진퇴하며 열을 지어 춤추면서 형상을 만든다. <정대업지무>는 처음에 연향에서 추어지다가 세조 10년(1463)부터 종묘제례와 원구제사, 양로연에도 쓰였다. 조선후기에는 제향에서만 추어졌는데, 현재 방진, 원진, 직진, 예진, 곡진의 철조는 행하지 않았다.
중종 6년(1511)에는 사간원의 상소가 있었는데 “소격서는 오로지 별에 대한 제사와 복을 바라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서 설치한 것인데 제사 지낼 때 굴신, 철조, 축문 읽음, 제물 차림 등에 대해 근거할 만한 경전이 없기 때문에 광대놀이와 같게 되어[昭格署 專爲醮祀祈 而設 其屈伸綴兆 號祝陳設 無經可證 有同優戱]” 라고 하였다. 소격서의 제사 방식을 설명하면서 굴신과 철조의 춤의 방식을 언급했던 것이다.
순조 4년(1804)에도 제조 이만수(李晩秀, 1752~1820)가 궁의 제향에서 추는 철조를 지적하였다. “지금 궁의 제향 때 쓰는 악가를 보건대, 이미 전날 연주하던 악보도 아니고 선조 대에 개정하였던 뜻도 아닙니다. 악장의 절이 혹 연속되지 않고, 철조도 뒤섞인 것이 많습니다.[見今宮享樂歌 旣非前日所奏之譜 先朝改定之意 章節或未聯續 綴兆多致混淆]” 라 하였다. 즉 당시 제향의 음악과 춤에서 철조가 혼탁하고 어지러우니 철조를 정비할 필요성을 제기했음을 알 수 있다.
춤은 춤의 동작뿐만이 아니라 춤꾼의 대형과 움직이는 여러 가지 동선으로 표현된다. 철조는 대형과 여러 가지 동선을 만들어 보여 주는 방식이다. 열을 지어 만든 대형, 예를 들어 오방(五方)의 대형이나 원형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또한 다른 대형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일정한 미감(美感)을 보여 준다. 조선시대에 철조는 지속적으로 언급되었으며,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여러 악무에서 행해지고 있다. 철조는 우리 춤에서 중요한 방식이고 기법이며, 이를 설명한 개념으로 의미가 있다.
『예기』「악기」 『예기집설대전(禮記集說大全)』 『악학궤범』 『중종실록』 권14, (중종 6년 6월 19일) 『순조실록』 권6, (순조 4년 8월 2일)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교학(敎學)」
이혜구 역,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조남권 김종수 공역, 『악기』, 민속원, 1994.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