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희오십수(觀優戱五十首), 관우희오십절(觀優戱五十絶)
송만재(宋晩載, 1788~1851)가 아들의 과거 합격을 축하하기 위한 문희연(聞喜宴)을 대신하여 판소리, 줄타기, 땅재주 등 1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각종 전통 공연예술의 내용을 노래한 한시 작품
송만재는 아들 송지정의 과거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문희연에서 연행되는 각종 음악과 연희를 자세히 묘사한 한시를 지었다. 단가의 가창,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 및 감상, 줄타기와 땅재주 연행, 각종 놀이패의 기량 등을 풍성하게 다룬 이 작품은, 19세기 조선에서 행해졌던 음악과 연희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이 작품은 우리 고유의 음악과 연희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였던 소론 계열의 문예적 전통과 이를 주도한 신위의 영향 아래 창작된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창우(倡優) 등을 불러 각종 음악과 연희를 성대하게 베풀며 축하하는 문희연(聞喜宴)의 풍속이 있었으나, 서자 출신의 양반으로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송만재는 아들을 위한 잔치를 열어주기 어려웠다. 이에 그의 나이 56세이던 1843년(헌종 9), 그는 문희연에서 연행되는 각종 음악과 연희를 자세히 묘사한 한시를 지어주는 것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하였다. 송만재는 발문에서, 실제 문희연을 베풀 여유는 없었으나 더불어 시를 짓는 시사(詩社)의 벗들과 화답하고 그 결과물을 음영(吟詠)의 창작품으로 가다듬었다고 기록하였다.
○ 편찬정보 송만재의 「관우희」의 이본은 연세대 소장본과 구사회 소장본 2종이 존재한다. 연세대 소장본은 용지가 20세기 초엽에 의정부에서 사용된 판심제임을 볼 때, 20세기 초엽의 애국계몽기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구사회 소장본은 18~19세기에 중국에서 수입되어 유통되었던 종이로 되어 있어, 시기적으로 앞서는 선본(先本)이다. 연세대(연세대학교 탁사문고) 소장본은, 이혜구가 1957년 「송만재의 관우희」 논문을 발표할 당시 소개한 본으로 2012년 구사회 소장본이 새로 발굴되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이 본에 근거를 두었다. 연세대 소장본의 책명은 『소악부(小樂府)』로, 여기에는 신위(申緯, 1769~1845)의 「소악부」 서문과 7언절구 40수, 「관우희」 서문과 7언절구 50수, 발문 성격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 구사회 소장본의 책명은 『판교초집(板橋初集)』으로, 이 책은 일반 한시 24수가 담긴 「옥전잉묵(玉田賸墨)」과 연희시가 실린 「관우희오십절(觀優戱五十絶)」이 편제된 형태이다. 구사회 소장본의 발굴로 인해, 기존의 연세대 소장본에서 결자(缺字) 상태로 남아있던 〈관우희〉 50절의 제4수와 제29수의 두 글자가 ‘서(書)’자와 ‘절(節)’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표기가 다른 글자와 오탈자도 바로잡을 수 있었다. 한편 두 이본은 50수의 한시가 다루는 전통음악 또는 전통연희의 종목 구성에 차이를 보인다. 연세대 소장본은 ‘영산(靈山)’(제1~8수) - ‘타령(打令)’(제9~20수) - ‘긍희(緪戱, 줄타기)’(제21~35수) - ‘장기(場技, 땅재주)’(36~42수) - ‘총론(總論)’(제43~50수)으로 구성되는데, 연세대 소장본의 ‘긍희’(제21~35수)가 구사회 소장본에서는 ‘요령’(제21~28수) - ‘긍희’(제29~35수)로 구분된다. 이로부터, 송만재가 제21수에서 제28수까지 ‘요령’으로 묶어, 판소리 명창 자체에 대해 다루려고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요령’은 판소리나 줄타기 광대들의 너름새나 동작, 기본 레퍼토리에 속하지 않는 재담, 노래 등 여흥의 장기로 해석된다. 또한, 구사회 소장본 즉 『판교초집』 수록 「관우희오십절」 하단에는 ‘자하(紫霞) 비평(批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는 송만재가 신위의 영향을 받아 「관우희」를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창작 후에 자하 신위의 검증을 거쳤음을 뜻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 구성 및 세부내용 최근 발굴된 구사회 소장본 즉 『판교초집』 수록 「관우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이 작품은 ‘영산 혹은 판소리 단가(제1~8수), 판소리(제9~20수), 요령(제21~28수), 줄타기(제29~35수), 땅재주(제36~42수), 총평(제43~50수)’의 구성을 보인다. 제1수부터 8수까지는 본격적인 문희연을 베풀기 이전의 무대와 객석의 풍경, 단가의 가창 상황을 그렸으며, 제9수부터 20수까지는 판소리 열두 마당의 주요 장면과 개략적인 내용을 《춘향가》, 《적벽가》, 《흥보가》, 《강릉매화타령》, 《변강쇠타령》, 《무숙이타령》, 《심청가》, 《배비장전》, 《옹고집타령》, 《가짜신선타령》, 《수궁가》, 《장끼타령》의 순으로 소개하였다. 제21수부터 28수까지는 판소리 또는 줄타기 광대의 너름새나 동작, 재담과 노래 등을 두루 다루었고, 제29수부터 35수까지는 줄타기 장면을, 제36수부터 42수까지는 땅재주 장면을 묘사하였다. 제43수부터 50수까지의 ‘총평’에서는 광대의 연원과 함께 광대 중심의 조선 연희사를 제시하였는데, 여기에 우춘대(禹春大. ?~?), 권삼득(權三得, 1771~1841), 모흥갑(牟興甲, ?~?) 등 판소리 대명창의 이름이 직접 거론되었다.
송만재의 「관우희」는 한국의 음악사 또는 연희사를 고찰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특히 판소리와 관련해 조선 후기 판소리 12마당의 실체 및 대명창들의 명성을 입증하여 주는 의미가 있다. 연희시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소론 계열이라는 당색을 공유하였던 신위의 「관극절구(觀劇絶句)」 12수를 전범으로 삼은 것으로, 19세기에 나온 윤달선(尹達善, 1822~1890)의 「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관극팔령(觀劇八令)」과 「영산선성(靈山先聲)」 5수,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의 「부심청가(賦沈淸歌)」 2수 등도 그 영향권에 놓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론계 문인들은 사람들의 자연스럽고 진솔한 감정을 중시하는 한편 우리 민족 정서에 주목하는 문예적 전통을 형성하였고, 이는 우리 고유의 노래와 연희를 기록으로 남겨 보존하려는 노력으로 구체화되었다.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 특별전 「영원한 판, 소리로 잇다」 전시 도록』, 국립무형유산원, 2022. 구사회 외,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희(觀優戱) 연구』, 보고사, 2013. 윤광봉, 『(개정판)한국연희시연구』, 박이정, 1997. 구사회, 「조선후기의 연희시와 전승 계보-19세기 소론계 문인을 중심으로-」, 『판소리연구』 36, 2013. 윤주필, 「연희시가의 전통에서 본 〈관우희〉」, 『열상고전연구』 37, 2013. 이혜구, 「송만재의 관우희」, 『중앙대학교 30주년 기념 논문집』, 1957.
송미경(宋美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