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성 및 내용
「완문등장팔도재인」은 산대극의 봉행을 위해 설치한 각도
재인청을 재정비할 목적으로 “팔도의 으뜸 영도의 책임을 맡은 자는 방회(房會)를 설행한 뒤에 각 도의 소임을 다만 한 명으로 정”하라고 지시한 공문서이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 사신 영접 행사로 산대극(山臺劇)을 거행하기 위해 설치했던 재인도청을 통합하고 조직을 다시 정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호조에서는 이어 “공청도(公淸道, 충청도) 재인 중에서 팔도 도산주(八道都山主) 겸 도대방(都大房)을 맡고, 경기도 재인 중에서 팔도 우산주(右山主) 겸 도집강(都執綱)을 맡고, 전라도 재인 중에서 팔도 좌산주(左山主) 겸 도집강을 맡고, 경상도 재인 중에서 팔도 공원(八道公員) 겸 본도 대방(大房)을 맡고, 강원도 재인 중에서 팔도 공원 겸 본도 대방을 맡고, 황해도·평안도·함경도 삼도는 모두 업무와 색장(色掌)을 맡아 각각 본도 대방의 맡은 바와 각각이 맡은 바를 삼망(三望)을 갖추어 권점(卷點)을 얻은 자로 정하라. 각 도서 끝에 서명하고 그 도의 소임자 등은 처분하여 나누어 주고 절목(節目)을 만들라. 지금 이후로 각 도 재인 등은 완문을 돌려보고 이것으로써 영구히 도에서 행하는 뜻을 통촉하여 가르치라.”라고 그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였다. 이로부터 조선 후기 재인 조직의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완문등장팔도재인」에서 주목할 부분은 여기에 이름이 거론된 재인 즉 광대들이다. 공문서의 착명(着名) 순서를 고려해 좌에서 우, 상단에서 하단 순으로 보면, 하은담(河殷潭), 송인영(宋人英, 또는 송인래(宋人來)), 이봉국(李鳳國), 손훤출(孫喧出), 고수관(高壽寬), 임춘학(林春鶴, 또는 임춘도(林春嶋)), 김난득(金難得) 등이 해당된다. 이중 하은담에 대해서는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의 하한담(河漢潭)과 동일시하거나 『목천읍지(木川邑誌)』의 하한돌(河漢乭), 하한이(河漢伊) 형제와 연결하는 시각도 있으나, 시기상 『조선창극사』에서 판소리 광대의 효시로 명명된 하한담과 「완문등장팔도재인」의 하은담을 동일시하기 어렵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고수관(高壽寬, 1764~1849?)은 19세기 문헌에 등장하는 ‘고송염모(高宋廉牟)’의 첫머리에 놓이는 명창으로, 『조선창극사』를 비롯해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광대가(廣大歌)」, 신위(申緯, 1769~1845)의 시, 유성기음반의 ‘명창제 음반’ 등을 통해 그 존재가 명확히 확인된 판소리 명창이다. 「완문등장팔도재인」에 이름이 적힌 인물이 대부분 충청도의 재인 즉 광대들인 데 반해, 3년 후인 1827년의 「팔도재인등등장」 즉 「정해소지」에는 타 지역의 재인 즉 광대도 두루 포함되어 있다. 이는 충청도 지역 광대들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 전국 광대들이 함께 이름을 올려준 것으로 보이는데, 두 문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김난득, 임춘학, 고수관 3명이다.
한편, 「완문등장팔도재인」에서도 볼 수 있듯 조선 후기까지 광대들은 전국 규모의 재인청에 예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1784년(정조 8) 이후 국가가 시행하는 산대(山臺)가 중지되었다고 한 데서, 광대 개개인의 국가 예속성보다는 개인적인 활동이 강화되는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이로부터 산대도감극의 약화 및 판소리의 상대적 부상을 읽어내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