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대와 악기 편성
고려 시대에 송 사악을 연주할 때는 중국에서 들여온 해금ㆍ장구ㆍ당피리 등의 당악기들이 주로 쓰였다. 조선 초까지는 당악과 향악을 연주할 때 악기 편성에 차이가 있었으나 점차 그러한 차이가 없어졌다.
조선 시대에 보허자는 용도에 따라 연주하는 악기 편성과 악대가 달랐다. 정재 반주음악으로 쓸 때는 전상악(殿上樂) 악대에 의해 관현 합주 형태로 연주되었으나 현재 이러한 편성의 연주 관행은 단절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당피리 중심의 관악 합주는 조선 시대에 보허자를 연주하던 여러 관행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 보허자는 편종ㆍ편경ㆍ방향ㆍ당피리ㆍ대금ㆍ당적ㆍ해금ㆍ아쟁ㆍ장구ㆍ좌고 편성의 관악 합주로 연주된다.
○ 역사 변천 과정
보허자는 ‘벽연농효해파안(碧煙籠曉海波閑)’으로 시작하는 노랫말 사(詞)의 곡조이다. 사(詞)는 중국 송나라 때 유행한 문학 양식으로, 시(詩)에 비해 글자수가 불규칙하다. 사의 틀이 되는 음악에 여러 노랫말이 붙을 수 있으므로, 제목에는 <보허자 벽연농효>
와 같이 악곡명과 가사명을 나란히 붙였다.
고려에 송 사악이 처음 들어온 때는 문종 27년(1073)이다. 여러 당악 정재의 반주 음악으로 사악이 쓰였으며, 보허자의 경우 《오양선(五羊仙)》 정재 때 창사로 불렸다. 송 사악은 고려를 거쳐 조선 조까지 궁중 음악으로 수용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40곡이 넘는 송사악이 있었으나 점차 악곡 수가 줄어들어 현재 보허자와 〈낙양춘〉 두 곡만 전승된다.
조선 시대에 보허자는 연향(宴享)에서 술을 올릴 때, 왕세자 출궁 때 연주되었으며 정재 반주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 보허자는 향악과 대비되는 개념인 당악(唐樂)의 범주에 속하는 음악으로서 조선 전기까지는 중국 음악의 요소가 분명했고, 악기 편성도 향악과 차이가 있었다. 조선 후기 무렵에는 당악곡 보허자와
<낙양춘>
이 모두 노랫말 없는 기악곡으로 변하였으며, 본래의 환두환입형식(換頭還入形式)을 잃고, 1음 1박의 규칙적인 리듬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이 당악이 점차 향악화되면서 보허자를 당악 정재 외에 향악 정재 반주곡으로도 쓰는 변화가 생겼다.
현재 보허자는 〈관악보허자〉와 〈현악보허자〉로 나뉘는데, 흔히 관악보허자를 보허자(아명: 장춘불로지곡)로 일컫고, 현악보허자(아명:황하청)는 보허사라 부른다.
낙양춘>
보허자>
관악보허자는 궁중 음악 보허자를 계승한 악곡이고, <보허사> 는 민간의 풍류방(風流房)에서 전승된 것이다. 본래 궁중 음악이었던 보허자가 16세기 무렵부터 민간에 전파되었고, 그 악보가 『금합자보(琴合字譜)』(1572)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곡명이 〈보허사〉로 정착되어 현재에 이른다. 보허사>
민간에서 〈보허사〉는 풍류방이라는 소규모 공간의 실내악 형태로 연주되는 것이 보통이었고, 오늘날과 같이 거문고ㆍ가야금ㆍ양금 세 악기로만 연주하는 형태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정기연주회라 할 수 있는 이습회(肄習會)의 연주 방식 중 한 가지가 오늘까지 정착한 것에 해당한다.
한편 민간에서는 원 보허자의 환입(還入), 즉 ‘도드리’ 부분에 환두 가락을 넣은 선율을 변주한 〈밑도드리〉·〈웃도드리〉·〈계면가락도드리〉·〈양청도드리〉 등의 파생곡도 생겨났다. 같은 궁중음악으로서 민간 풍류로 전파된 〈여민락〉이 다른 변주곡을 파생하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데, 민간에서 〈여민락〉보다 〈보허사〉를 더 즐겨 연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노랫말
| 미전사 (전단) |
벽연농효해파한(碧煙籠曉海波閑), 강상수봉한(江上數峰寒). 패환성리이향표락인간(珮環聲裏異香飄落人間), 미강절오운단(弭絳節五雲端). |
푸른 안개 새벽하늘에 자욱하고 바다 물결 한가로운데 강가의 두어 봉우리 차갑도다 패옥 소리 은은히 울리고 신비한 향내 인간세상에 나부끼며 신선이 탄 양수레 오색구름 끝에 멈추는도다. |
| 미후사 (후단) |
완연공지가화서(宛然共指嘉禾瑞), 미일소파주안(微一笑破朱顔). 구중요궐망중삼축고천(九重嶢闕望中三祝高天), 만만재대남산(萬萬載對南山). |
풍성하게 잘 여문 벼이삭의 상서를 가리키며 한 차례 웃어 붉은 얼굴에 웃음 띠도다 구중의 높은 궁궐 바라보며 높은 하늘 향해 세 차례 축원하기를 만만년 두고두고 남산처럼 장수하소서. |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