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매화전(江陵梅花傳), 매화가라(梅花歌라), 골생원젼이라(骨生員傳이라), 매화골로가(梅花骨老歌)
책방(冊房) 골생원(骨生員)이 강릉 기생 매화(梅花)의 미색에 빠져 망신당한 일을 노래한 실창(失唱) 판소리 작품
《강릉매화타령》은 비록 단편적인 기록이긴 하나,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나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 외에 이학규(李學逵, 1770~1835)의 『낙하생고(洛下生稿)』,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단가 〈오섬가(烏蟾歌)〉 등 19세기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여러 문헌에 언급된 데서 19세기 내내 연행이 지속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실창 판소리 작품이다. 비교적 근래에 사설 정착본으로서의 소설본이 발굴되면서 서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는데, 지방 관아를 배경으로, 수령과 관련된 인물이 기생의 미색에 빠져 망신을 당한다는 구도면에서는 또 다른 실창 판소리 작품인 《배비장타령》과의 유사성이 인정되며, 소리 대목의 구성면에서는 전승 판소리 작품인 《춘향가》로부터의 영향이 확인된다. 후대에 창극이나 음악극으로 재탄생된 사례는 있으나, 실창 판소리로서의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릉매화타령》의 형성에는 일명 ‘홍장고사(紅粧故事)’라고 불리는 강원도 안렴사 박신(朴信)과 강릉 기생 홍장의 이야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각편으로 지목된 이야기는 『동인시화(東人詩話)』의 「박신일화(朴信逸話)」, 『기문(奇聞)』의 「혹기위귀(惑妓爲鬼)」, 이혜구(李惠求)가 보고한 「강릉홍장설화」 등이다. 기생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다음 가짜 무덤을 만들고, 기생을 귀신으로 가장시켜 주인공으로 하여금 기생의 죽음을 믿게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후반부에는 주인공이 벌거벗은 몸으로 망신당하는 장면이 포함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음악적으로는 19세기 후반에 이미 판소리 창의 전승이 단절된 관계로, 형성 과정이나 유래를 파악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
○ 역사적 변천 판소리 《강릉매화타령》의 존재가 확인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기록은 『낙하생고(洛下生稿)』(1821)에 수록된 이학규(李學逵, 1770~1835)의 시, “비 내린 서릉에 사람의 발자취 어지러운데(過雨西陵履跡多), 보리밭 두둑 밟고서 앞 언덕에 이르니(麥畦平踏到前坡), 곽씨네 문밖에는 시장마냥 사람들이 모여(郭家門會人如市: 규장각 소장본/郭家門外人如市: 일본 천리대본), 노인들이 《매화골로가》를 즐겨 듣네(去聽梅花骨老歌: 규장각 소장본/老聽梅花骨老歌: 일본 천리대본).”이다. 이학규는 여기에 ‘이 시기 창우들의 가곡에 골생원 매화기타령이 있었다(時世倡優歌曲 有骨生員梅花妓打令).’라는 기록을 덧붙여 두었으며, ‘매화골로가’라는 이칭은 바로 이 시를 출처로 한다. 다음,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1843) 중 “매화와 이별한 후 눈물자국(一別梅花尙淚痕), 되돌아오니 소소(蘇小, 매화를 지칭)는 무덤만 남겼네(歸來蘇小只孤墳). 어리석은 정 때문에 점차 속임수에 빠져(癡情轉墮迷人圈), 황혼에 매화의 넋이 되살아왔나 착각하네(錯認黃昏返情魂)”라는 시를 통해서는, 현전하는 《강릉매화타령》 사설 정착본과 매우 유사한 서사 전개를 확인할 수 있다.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의 『송남잡지(松南雜識)』(1855)는 ‘매화타령’이라는 《강릉매화타령》의 이칭이 기록된 문헌으로, 《배비장타령》과 《강릉매화타령》을 유사한 작품으로 보았던 당대의 인식이 나타난다. 그 외에 신재효(申在孝, 1812~1884)는 단가 〈오섬가(烏蟾歌)〉에서 “또 한 가지 웃을 일이 강릉책방 골생원을 매화가 속이랴고 백주(白晝)에 산 사람을 거짓되이 죽었다고 훨씬 벗겨 앞세우고 상여 뒤를 따라가며, 이 사람도 건드리고 저 사람도 건드리며, 자지에 방울 차고 달랑달랑 노는 것이 그도 또한 굿일레라.”라는 사설을 통해 골생원의 인물 형상과 주요 사건을, “세상의 음양정욕(陰陽情慾) 여천지무궁(如天地無窮)이라, 금할 수는 없거니와 이 사랑 이 설움을 억제하자 할 양이면 부동심(不動心)이 제일이라. 이 사설 지은 것이 비유한 말이로다.”라는 교훈적 주제를 남겼다.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의 『교방가요(敎坊歌謠)』(1872)에서는 “매화타령은 기생에게 빠져 몸가짐을 잃은 것이니(梅花打令 惑妓忘軀), 이는 음란함을 징계한 것이다(此懲淫也).”라고 하여, 작품이 전하는 주제를 짧게 서술하였다. 다만 『매화가라』의 결말 부분에도 “세상 사람들아, 골생원(骨生員)으로 볼지라도 주색(酒色) 탐(貪)을 부디 마소.”라는 직접적인 언술이 있지만, 이를 표면적 의미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골생원을 속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 자체의 재미’에 주목하는 것이 오히려 실상에 근접한 이해 또는 감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894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수록』에서는 “평양 기생 의양이가 무숙이를 놀린 일과 강릉 기생 매화가 골생원을 골려준 일”이라고 하여, 실창 판소리에 속하는 《강릉매화타령》과 《무숙이타령》을 견주어 거론하였다. 마지막으로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서는 《강릉매화타령》을 판소리 열두 마당에 포함시켰으며, 여기에 ‘강릉매화전’이라는 이칭이 사용되었다. 다만, 일부 실창 판소리 작품에 대해서는 해당 작품을 장기(長技)로 하였던 명창에 관한 기록이 없다. 한편, 창의 전승이 끊긴 판소리 《강릉매화타령》의 사설 정착본은 1990년대 이후 발굴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김헌선이 『매화가라(梅花歌-)』를, 2002년에는 김석배가 『골생원젼이라(骨生員傳--)』를 학계에 처음 보고하였으며, 이 2종이 현재까지 발굴된 《강릉매화타령》의 이본이다. 그 외에 유사한 내용의 소설본으로 목태림(睦台林, 1782~1840)의 『종옥전(鍾玉傳)』, 작자 미상의 『오유란전(烏有蘭傳)』이 지목된 바 있다. 우선 전주 전일여자중학교 교사였던 이영규(李永圭)가 소장하고 있던 『매화가라(梅花歌-)』는 겉표지 없이 속 첫 장에 ‘梅花歌라’라는 제명(題名)이 적힌 19장 분량, 가로 21.7㎝×세로 23.6㎝ 크기의 국한문 혼용 필사본이었다. 소장자 이영규의 어머니 최판임(崔判任)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본래 시집올 때 친정에서 이 책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2년에 김석배가 대구의 고서수집상에서 구입된 『골생원전』을 입수하여 학계에 보고하였다. 7언절구 한시를 모아서 엮고 일부를 번역한 22장 분량, 가로 12,2㎝×세로 24.5㎝ 크기의 책으로, 역시 표지는 없으나 작품이 시작되는 곳에 ‘골ᄉᆡᆼ원젼이라’라는 제명이 적혀 있었다. 1978년에는 국립창극단이 창극 〈강릉매화전〉을 공연하였으며, 박동진, 박초월, 김소희, 박귀희가 도창으로 참여했고, 매화 역은 김동애, 이생 역은 조상현, 김생 역은 김종엽이 맡았다. 2022년에는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강릉매화타령》의 후반부 서사를 새롭게 창작한 〈강릉서캐타령〉이 발표되었고, 그 외에 아트컴퍼니 해랑도 창작음악극 〈매화뎐〉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강릉매화타령》의 경우, 판소리 창의 단절이 일찍이 이루어진 작품이므로 창극이나 음악극 역시 음악적 측면에서 전통을 계승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 구성 및 세부 내용 《강릉매화타령》의 서사는 크게 골생원과 매화의 만남, 사랑, 이별, 그리고 골생원의 수난으로 구성된다. 전체 서사를 살펴보면, 전반부에 해당하는 골생원과 매화의 만남과 사랑 대목은 비교적 간략한 반면, 후반부에 해당하는 이별과 골생원의 수난 대목은 확장되어 있다. 실창 판소리 《강릉매화타령》의 사설 정착본에 해당하는 『매화가라』는 가사체의 성격이 짙고 소박하며, 『골생원전이라』는 판소리체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보다 세련된 특징을 보인다. 골생원의 희화화를 목적으로 일부 장면을 극대화하였으며, 매화가 골생원에게 과거 보러 가지 말라고 하는 장면, 골생원이 매화에게 훼절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장면, 정표를 교환하는 장면, 달랑쇠가 골생원을 조롱하는 장면, 골생원이 부친에게 꾸중듣는 장면 등 『매화가라』에는 없는 새로운 사건과 삽화의 첨가가 나타나기도 한다. 판소리적 성격이 조금 더 풍부하게 나타나는 『매화가라』를 기준으로 보면, 〈골생원, 인물 치레〉, 〈화초타령〉, 〈사랑가〉, 〈달강가〉, 〈이별가〉, 〈매화, 가마 치레〉, 〈비단타령〉, 〈시전 기물타령〉, 〈언문뒤풀이〉, 〈애고타령〉, 〈골생원, 설움타령〉 등이 확인되며, 독경(讀經)이나 상여소리(喪輿--)의 활용 양상도 볼 수 있다.
《강릉매화타령》은 19세기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에 관련 기록이 산재한다는 점에서, 19세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향유된 작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조선창극사』에 그 명창이 명확히 거론되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 19세기 후반 이후 판소리 창의 전승이 급격히 단절되었는데, 관련하여 작품의 미감이 골계미에 치우쳐 있는 점, 풍자나 비판은 나타나나 핵심적인 인물을 통한 일정한 방향성이 제시되지 않은 점 등이 실창의 배경으로 지적되었다. 판소리로서의 온전한 전승이 근래까지 지속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창극이나 음악극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에서도 기존의 음악적 전통을 계승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창작이 위주가 되었다. 한편, 《강릉매화타령》의 판소리 사설 정착본으로는 『매화가라』와 『골생원전이라』 2종이 보고되었으며, 이중 『골생원전이라』는 문체나 구성면에서 판소리적 성격이 농후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음악사적으로도 주목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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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宋美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