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가(卞강쇠歌)
변강쇠와 옹녀가 만나 부부로 살다가 변강쇠가 장승 동티로 죽은 후 치상 과정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일을 다룬 실창(失唱) 판소리 작품
《변강쇠타령》은 비교적 근래에 해당하는 19세기 말까지 전승된 작품으로, 실창 판소리로서는 유일하게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사설에 포함되었다. 『조선창극사』에서는 송흥록과 장재백을 그 명창으로 거론하였으며, 1970년에 판소리 《변강쇠타령》을 복원한 박동진은 이후 공연 및 음반 취입을 통해 전승을 지속하였다. 한편, 《변강쇠타령》은 판소리 외에 창극, 마당놀이 등으로도 활발히 재탄생되었으며, 동명의 서도잡가도 존재한다.
《변강쇠타령》의 형성에는 음담(淫談)의 성격을 지니는 각종 설화 및 다양한 무가, 민요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가에서 제의성이 이탈되며 판소리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마을 공동체의 무속제의 절차인 장승신화와 그 뒷전을 수용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또한, 서도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창우 집단이 《변강쇠타령》의 형성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서도창 〈변강쇠타령〉이나 가면극의 영향을 지적한 연구도 있다. 다만, 서도창 〈변강쇠타령〉에 대해서는 오히려 판소리 《변강쇠타령》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므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한편 ‘가루지기타령’, ‘횡부가(橫負歌)’ 등의 이칭은 강쇠의 사후, 그의 시체를 가로로 뉘어 등에 지고 가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 역사적 변천 판소리 《변강쇠타령》의 존재가 확인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기록은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 중 “길가의 이정표를 패서 땔감 삼으니(官道松堠斫作薪) 모진 상판 부라린 눈으로 꿈속에서 성내네(頑皮嘑眼夢中嗔). 고운 여인네가 어찌할 바 몰라 산에서 우니(紅顔無奈靑山哭) 오이밭에서 어리석게 달라붙은 사람 몇이던가(瓜圃癡舔有幾人).”,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관극팔령(觀劇八令)」 중 “우습기도 하구나, 길가에 선 나무 장승 하나(堪笑路傍一木人), 온갖 신에게 저주해 병 옮길 수 있었다니(可能呪疰百千神). 주인 마누라 인연이야 기박하지만(莫非主媼緣奇薄) 말은 혹 그렇다고 해도 진실은 아니라네(辭或是之不是眞).”의 시구이다. 두 시 모두 변강쇠가 장승을 함부로 패어 장작으로 때었다가 장승 동티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되는 사건을 주요하게 포착했다. 송만재는 그 외에 ‘오이밭에서 어리석게 달라붙은 사람’들의 존재를 언급했고, 이유원 시의 마지막 구는 판소리 공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는 성악가의 잠시 웃자는 재담이지, 그랬을 리가 있으리오?” 하는 아니리를 연상하게 한다. 한편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의 『조선창극사』에 따르면, 송흥록과 장재백이 《변강쇠타령》을 뛰어나게 잘 부르는 명창이었다고 한다. 송흥록(宋興祿, 1780?~1983?)이 이른바 전기팔명창에 속하는 점을 고려하면, 《변강쇠타령》은 판소리사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연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장재백(張在伯, 1852?~1907)의 생몰년을 고려하면, 판소리 《변강쇠타령》이 적어도 19세기 후반까지는 창과 사설이 온전하게 전하였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재효가 1881년~1884년 사이에 정리한 사설본에 《변강쇠타령》이 여타의 전승 판소리 다섯 마당과 함께 선택된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재효 정리본은 실창 판소리 복원에 관심이 많았던 명창 박동진(朴東鎭, 1916~2003)이 1970년대에 《변강쇠타령》를 복원할 때 저본의 역할을 했다. 비록 장단을 비롯한 음악적 기호의 표기는 없으나, 판소리 연행을 염두에 둔 사설본이었기에 일반의 소설본보다 복원 작업에 적합했을 것이다. 박동진은 1970년 판소리 《변강쇠타령》의 첫 복원 발표 후에도 여러 차례 완창 공연을 지속하였으며, 동아방송이 1976년 1월 1일부터 1977년 3월 1일까지 방송한 10편의 판소리 드라마 가운데 하나인 〈변강쇠전〉도 그의 《변강쇠타령》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변강쇠타령》은 국립창극단의 허규 극본ㆍ연출 창극 〈가로지기〉(1979), 고선웅 극본ㆍ연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 그리고 극단 미추의 김지일 극본·손진책 연출 마당놀이 〈변강쇠전〉(2001) 등으로 무대화되기도 했다. ○ 구성 및 세부 내용 《변강쇠타령》은 강쇠와 옹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근거지를 잃고 떠도는 조선 후기 유랑민의 비극적 생활상을 골계적으로 형상화한 실창 판소리 작품이다. 남도의 음남 변강쇠와 황해도의 음녀 옹녀가 우연히 만나 지리산으로 들어가 살던 중, 변강쇠가 길가의 장승을 패어 땔감으로 때었다가 동티로 죽게 된다. 옹녀는 강쇠의 치상을 위해 뭇 남성들을 유인하는데, 강쇠의 저주로 인해 모두 죽음을 당하고 시체가 땅에 붙는 기괴한 일까지 벌어진다. 옹 좌수의 의견에 따라 씻김굿을 하자 시체가 떨어지고, 뎁득이는 등에 붙은 강쇠의 시신을 갈이질로 떼어낸 후 떠난다. 송만재나 이유원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창을 잃기 전 판소리 《변강쇠타령》에서도 강쇠의 비극적 죽음과 그 이후의 기괴한 사건이 주요 내용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동진의 《변강쇠타령》은 이국자의 『판소리 연구』(정음사, 1988)에 그 사설이 수록되어 있다. 창본은 아니리와 창(唱)으로 구분되며, 장단은 ‘진양, 중몰이, 중중몰이, 엇중몰이, 잦은몰이, 엇몰이, 성음’ 등으로 표기해 두었다. 여기서는 ‘옹녀 상부 이력’, ‘사랑가’, ‘나무타령’, ‘약성가’ 등의 소리 대목명과 ‘흘림목(음악기법) 사용’, ‘호령조’ 등의 음악적 표현에 관한 설명을 부기함으로써 음악적 성격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1990년 8월에 녹음한 〈박동진 창 〈변강쇠가〉(가루지기전)/광대가〉(3CD)가 신나라레코드에서 1993년에 발매되었다.
판소리 《변강쇠타령》은 실창 판소리 일곱 마당 가운데 가장 최근까지 판소리로 연행되었던 작품으로, 송만재의 「관우희」, 이유원의 「관극팔령」에 관련 기록이 전할 뿐 아니라 신재효의 사설 정리본에도 포함되어 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도 열두 마당의 한 작품으로 《변강쇠타령》을 언급하는 한편, 그 명창으로 송흥록과 장재백을 들었다. 이로부터 판소리사에서 차지하는 《변강쇠타령》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변강쇠타령》과 관련해서는, 1970년대 이후 박동진에 의해 이루어진 복원 작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동진이 복원한 실창 판소리 작품 가운데서도 《변강쇠타령》은 공연, 음반 등을 통해 전승이 지속되었다는 음악사적 의의가 인정된다.
김종철, 『판소리의 정서와 미학』, 역사비평사, 1996. 이국자, 『판소리연구』, 정음사, 1987. 강윤정, 「박동진 창본 〈변강쇠가〉 연구」, 『판소리연구』 25, 2008. 서종문, 「〈변강쇠가〉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5. 박동진, 〈박동진 창 〈변강쇠가〉(가루지기전)/광대가〉(3CD), 신나라, 1993.
송미경(宋美敬)